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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조사(慶弔事)  비용

 

외국에서의 생활을  처음 하게 된 나에게  매일 매일  주머니에서 빠져나가는 "일본 돈"이 스트레스의 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화폐 단위는 우리와 비슷하지만(1만엔 5천엔 2천엔 1천엔 지폐, 5백엔 1백엔 50엔 10엔 5엔 1엔 주화),  물가가 다르고,  돈을 지불할 적마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해 보는 습관이 생기게 되니... 처음 1천엔 짜리 물건의 가격표를 보고,   순간적으로 우리나라의 '1천원 짜리'라는 착각이 들어서 얼른 샀지만, 사고 나서 실제로 '1만원 짜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 무척이나 후회된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는 무조건 한국 돈으로 계산을 하다보니 1백엔 짜리 동전을 내도 왠지 아까워서 손이 떨리는 느낌이었다.  전반적인 사회의 물가를 전혀 모르다 보니 가져다 준 월급을 아무 생각 없이 다 써 버릴 수도 있고,  아니면 손이 떨려서 과자 한 봉지 사기도 꺼려질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가계부에 실린 관혼상제의 비용 내역

그래서 시작한 것이 동네 슈퍼는 모조리 돌아다니며 상품들의 가격 조사와 비교를 하였고, 마침 때가 연말이라 그 다음 새해에 사용할 가계부가 서점에 나와 있어서 거금(약 1만원)을 주고 한 권 장만하였다.   우리나라에서 가계부를 쓰려면 대개 여성지의 부록으로 나온 것을 택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가계부만의 출판이 별로 없다. 혹시 있다해도 막상 펼쳐 보면 무언가 조잡하고 실제 사용할 사람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허술하다.

그런데 일본 서점에는 가계부만의 단독 출판이 많았고 그 내용들도 다양하고 깔끔하게 쓰기 편하게 되어 있어서 별로 망설이지 않고 산 것이다.    3년 동안 '쇼가쿠칸(小學館)'이란 출판사에서 나온 것을 사용하였는데 여러모로 내가 모르는 것을 많이 알게 되었다. 일주일 단위로 기입할 수 있는 두 페이지에는 간단한 요리의 조리법이 칼라 사진과 더불어 실려있고, 책 뒤편으로 가면 살아가면서 필요한 정보들이 생생하게 작은 그림과 함께 적혀있다.

그런 정보들 중에는 '관혼상제(冠婚喪祭)에 대한 예법(禮法)'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젊은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유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개의 사람들이, 어릴 적에는 부모님이 중심이 되어 여러 일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신이 성년이 되고 결혼을 하기 전까지는 집안의 대소사(大小事)에 대한 예법을 잘 모르고 지낸다.   결혼을 해서 막상 그런 일들이 벌어지면 당황스럽고, 때때마다 어르신들에게 여쭤보기도 민망하고... 이런 사람들을 위해 예법을 정리해 놓은 것이다. 물론 나는 일본인이 아니니 일본 땅에서 그들의 예법을 배우고 행할 필요는 없지만, 아는 사람들이 있으니 언제가 혹시...하는 마음에 자세히 읽어보게 되었다.

예법과 더불어 가장 실질적인 내용이 있었는데, 관혼상제 때마다 들어가는 비용에 대해서 적어놓은 것이다.   예전에는 어찌 하였는 지 모르지만 지금 세상에서 돈이야말로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윤활유라는 생각이 든다.   일일이 자기 몸으로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얼마만큼의 돈으로 자신의 마음을 대신하여 상대방을 기쁘게 하는 것.

여기에 적힌 금액은  1998년 3월에 상와은행(三和銀行)에서 간토오(關東, 토쿄 중심)와 간사이(關西, 오사카 중심) 지방을 조사한 것인데, 소비자 물가의 변동이 별로 없는 일본에서는 대개 이 금액 안에서 비용을 지불한다.    얼핏 보기에는 별로 커 보이지 않지만, 이런 금액이 샐러리맨들의 주머니를 어느 정도로 쥐어짜는지 비교해 보면...   점심 시간에 먹는 식사가 대개 6-8백엔(약6-8천원) 정도고,  유부 한 장 달랑 들어있는 '유부우동'이 5-6백엔 하는 물가에서 지불되는 돈이다.

결혼(結婚) 축하금

대개 결혼식은 소수의 사람들만(2-30명 내외) 초대해서 피로연까지 하게 되는데, 먼저 초대장을 보내면 올 수 있는 사람은 평균적으로 3만엔(약30만원)을 노시가미(のし紙)봉투에 넣어서 낸다.  이 정도를 내면 피로연에서 식사를 하고 돌아올 때는 '히키데모노(引出物)'라고 해서 선물을 받아가지고 온다.  그러나 참석을 못하는 경우는 1만엔을 보낸다. 좀 더 자세히는 회사 사람의 경우 참석 시 3만엔, 참석하지 않을 시는 5천엔.  형제 자매 조카의 경우는 10만엔.  종형제(從兄弟)의 경우는 3만엔, 1만엔을 낸다.

상가(喪家) 조의금(弔意金)

나이 대별 , 거주지별로 좀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5천엔(약5만원)을 낸다.   이웃, 친구, 회사 사람의 경우가 5천엔. 업무상 관계가 있는 다른 회사 사람의 경우 1만엔.   조부모, 숙부모는 1만엔.  형제자매는 3만엔.  부모는 10만엔을 낸다.

오츄우겐(御中元) 오세에보(御歲暮)

오츄우겐은 한여름인 7월초부터 20일 정도의 기간에  직장 상사나 거래처, 친척, 친구, 선생님에게 보내는 선물(이 때만큼은 주로 돈보다는 선물)이다.  더운 여름을 어떻게 보내시냐는 안부 인사를 대신해서 잠시나마 더위를 잊게 하는 상품들을 보내는 것이다. 6월 중순부터 백화점에 가 보면 특별 전시대에 이 때를 겨냥한 물건이 많이 나와 있는데, 대개 1천엔에서 5천엔까지만 있다.  기존 매장에는 더 비싼 물건도 많이 있지만 가격이 커지면, 감사나 안부의 선물이 아니라 뇌물로 보일 가능성이 커지고  보내는 사람의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지니 이 정도의 가격대에서 선물용 상품이 제작되는 것이다.

 많이 보내는 선물의 품목은 시원하게 먹을 수 있는 맥주, 쥬스, 과일이 들어간 젤리, 소면(국수), 커피, 젤리 같은 와가시(和菓子) 그리고 상품권 등이다. 금액은 거의 5천엔 정도로 하고 있다.  오세에보는 연말에 하는 선물로 거의 같은 형식인데, 상품의 품목만 조금 다르다.  햄소세지, 맥주, 양과자(洋菓子), 김(海苔), 청주(淸酒), 츠케모노(漬物, 장아찌), 상품권 등이다.

이런 관습에서 특이한 것이, 우리나라의 추석이나 연말의 경우 대개 다른 이들에게 많이 보내는데, 일본에서는 형제자매 지간에도 보낸다. 일본어 선생님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어느 집에 갓 결혼한 며느리에게 시부모가 이런 때에 친척들과 형제들에게 어느 정도의 선물을 하라고 일일이 금액이 적힌 종이 한 장을 건네더라고...  물론 자기 사는 형편에 맞추어서 선물을 보내기도 하고 생략하기도 하는 가정도 있다.

병문안(病氣見舞い)의 경우, 부모나 친척은 1만엔, 직장, 친구, 이웃은 5천엔을 낸다.   멀리 떠나는 사람에게 주는 전별금(お餞別)은 형제자매가 2만엔. 친척이 1만엔, 직장, 친구등에게 5천엔을 낸다. 그 외에도 한 살배기 아이의 생일에는 대개 1만엔. 졸업이나 취직의 경우 1만엔 정도가 든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신축 축하(新築祝賀)라는 것으로 융자를 받아서 작지만  자기 집을 새로 세운 사람에게 축하하며 주는 돈인데, 형제자매나 친척은 3만엔, 그 외의 사람은 5천엔 정도로 돈이나 물건을 선물한다.  일본인들은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도 많지만 언젠가는 작아도 주택을 보유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으며,   이미 가진 사람은 융자 빚을 갚기 위해 정년(停年)까지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이런 일은 축하를 해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상치 못하고 갑자기 내야하는 경조사 비용이 어느 정도 사람들  머릿속에 경우에 따라 정해져 있는데,  그것을 다시 이렇게 가계부에 실어서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하니, 은연중에 상대에게 '실례가 되지 않는 정도의 기준'이란 것을 나타낸 것이다.  돈을 어느 정도 내야 할까 망설이지 않고 이 기준에 맞춘다면 주는 사람도 주머니 사정이 편해지고, 받는 사람도 작은 성의로 받고 다시 무엇인가로 답례를 할 때도 부담이 되지 않는다.

'서로간에 고맙게 생각하며 주고, 감사하게 받는' 그 마음이 빠지거나, 마음보다 커지면 부담이 되어 상대와의 관계를 소홀히 하고 싶은 생각이 드니,   돈이 윤활유가 아니라 '실례(失禮)'의 원인이 된다.        

편안한 마음으로 기쁘게 상대를 대할 수 있을 때가 '예(禮)'를 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2001. 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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