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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세츠분(節分)

 

일본에 가기 전부터 일본의 이런 저런 사정들에 대해서 알아보고 준비했지만 시험 공부하는 것처럼 빠삭하게 외우지는 않았다. 그저 여러 자료들을 한번 정도 훑어보고 가져간 것뿐. 살다가 이것이 무엇일까 하고 의문이 생길 때에만 들추어 보게 되었다.  그러니 실제로 어떤 年中行事에 대해서 처음으로 접하고 궁금증을 가지게 되는 경우는 대개 슈퍼마켓에 갔을 때이다.  일본에서는 무슨 행사만 있으면 그 행사에 필요한 재료들만 모아서 눈에 잘 뜨이는 곳에 전시를 하기 때문에 나는 그런 전시물만 보면  왠지 호기심이 발동하였다.

이번에는 무슨 행사가 있기에 이렇게 많은 콩을 파는 것인가라고 생각한 때가 1월말경.   깨끗하게 잘 볶은 누런 콩을  남편의 술안주로 사오긴 했지만...   이러 저러 궁금하던 차에 지역 신문을 보게 되었다.  신문의 한 면을 전부 이 행사에 대해서 썼는데 제목이 " 2월3일은 節分,  나쁜 액을 쫓고 행복을 부르자! "라고 쓰여 있었다. 무언가 기복신앙같은 느낌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람 사는 세상이 다 똑같구나 라는 생각에 친근감이 느껴졌다.자신의 가정을 지키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소박한 생각은 물질 문명이 발달하면 할 수록 더욱 강하게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질의 풍요로움 속에서 느끼는 어디 의지할 데 없는 외로움을 '전통의 보존, 계승'이라는 명목하에 당당히 표면화해서 외로움도 줄이고 돈도 벌고...

유명한 신사(神社)에서 스모 선수나 배우들이 와서 됫박에다 콩을 담아 사람들에게 뿌리고 있다.(2002년2월3일)

節分은 立春(2월3,4일)의 하루 전날이다. (일본은 현재 음력을 전혀 사용하자 않으나 예전부터 농경국가이기에 있었던 행사만큼은 계속 유지하고 있다.) 이때쯤이 음력으로 정월, 그래서 新年을 맞이하는 행사를 하는 것으로, 일반 서민의 집에서도 할 수 있는 대표적인 행사가  마메마키(豆まき)이다.   이는 그 해의 干支에 태어난 남자, 또는 一家의 주인이 "福은 안으로, 鬼는 밖으로"라고 말하며 집의 네 귀퉁이에서 뿌린다.  그리고 가족 모두 자기의 나이에 맞는 수량의 콩을 먹으면 1년간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임산부가 있는 집에서는 이 콩을 安産을 위한 부적처럼 여기기도 한다.
대충 여기까지 보면 우리나라에서 정월 대보름에 부럼을 하는 것과 의미가 비슷하다.

이 시기에 파는 콩으로 비싼 와가시(和菓子) 가게에서 파는 상품.

 

일본이 특별하다면 神社나 절에서 대중을 상대로 콩을 뿌리는 행사를 갖는다는 것이다. 거기서 받는 콩은 신성하며 복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너도 나도 받으려고 손을 뻗어 생난리이다.     이런 행사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느냐에 따라 神社의 수입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름있는 곳에서는 유명한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특히 스모선수)를 불러서 TV에 나올 정도로 떠들썩하게 행사를 치른다. 나도 집 옆에 있는 神社에 가서 콩을 받아왔다. 정말 복이 들어 왔으면 좋겠고 맛있는 콩을 공짜로 먹으니 좋고...
그리고 이 날 백화점에 가 보면 식품 코너에서 엄청나게 두꺼운 김밥(卷きずし)을 팔고 있다.

일반 상점이나 슈퍼마켓에서 파는 헬로우 키티 제품의 콩이다. 왼쪽 상자 안에 든 것은 누런 콩 그대로이고,   오른 쪽은 설탕으로 겉을 씌운 것이다.

이런 김밥은 江戶時代부터 明治 초기에 오사카(大阪)의 센바(船場)라는 곳에서 시작되었다. 상업지역이기에 장사가 잘 되고, 병에 걸리지 않으며, 집안이 평안하기를 기원하며 먹었다고 한다. 김밥을 썰지 않고 둥글고 긴 그대로 먹는 이유는 옛날부터 긴 것이 吉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두꺼운 김밥을 두 손으로 부여잡고 꾸역꾸역 먹는 모습이란...  물론 일본인 중에서도 이런 날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사람도 많다. 열리는 모든 행사에 악착같이 좇아가는 사람은 열에 두 세 명일까.  (대부분은 중년 이상의 사람들) 나머지는 그냥 슈퍼에서 파니까 재미 삼아 콩과 김밥을 산다고 생각한다

2002년 세츠분을 위한 콩을 1월 중순부터 판매.

그리고 나야 외국인이니까 신기해서 여기저기 神社에 콩을 받으러 돌아다녔던 것이고...
이렇게 해서 2월이 또 후딱 지나갔다.  (2000. 5.22)

 

 

2002년 2월3일의 세츠분을 앞두고 슈퍼마켓의 스시를 파는 곳에서 붙여놓은, 귀신의 얼굴과 긴 김밥 그림이 있는 포스터이다. 집에서 김밥을 만들지 않는 사람은 가게에서 사라고... 두꺼운 김밥을 먹을 때는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 그 해(年)에 가장 좋은 방향을 찾아내 그 쪽을 보고 말없이 먹어야 한다고 포스터에 쓰여있다. 올해(2002년)의 좋은 방향은 북북서(北北西)이다.

사실 어떤 대단한 존재가 모든 풍습과 행하는 방법을 한 번에 딱 정해놓은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그 때를 지키려고 하다보니, 여러 가지 생각들이 자꾸 쌓여서 새로운 방법들을 찾아낸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일본인들이 이런 두꺼운 김밥을 먹는 것이 어찌보면 긴 세월을 두고 즐긴 "좋은 의미의 말 장난" 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두꺼운 김밥을 "마키즈시(卷きずし, 우리말로 바꿔보면 대충 '말은 김밥'이라고나 할까...)"라고 하고, 콩을 뿌리면서 귀신이나 나쁜 액(厄)은 멀리 가 버리고,복(福)이 들어오기를 원하면서 "후쿠오마키코무(福を卷きこむ, 우리말로 하면 자기 쪽으로 '복을 휘말아넣다'라고...)"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여기서 "마키(卷)" 라는 한자를 서로 같이 쓰이기 때문에, 여러 종류의 스시(すし,ずし,壽司) 중에서 이 것을 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김밥을 자르지 않고 먹는 이유도 "엔오키라나이( 緣を切らない, 우리말로 하면 '인연, 관계를 끊지 않다"라고...)"라는 의미 때문에 그런 것이다.  "굴러들어온 복을 내치지 않기위해 자르는(切) 행동"을 삼가며, 묵묵히 먹어야 복이 달아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츠분 행사로 누런 콩(豆, 마메,まめ)을 뿌리게 된 것도, "마오멧스르( ま(魔)をめっ(滅)する, 마를 멸하다 )"라는 표현에서 "마(ま)"와 "메(め)" 두 글자를 따와서 "마메"라고 발음하는 "누런 콩"을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슈퍼마켓의 다른 편에서는 말린 생선인 "이와시(いわし, 정어리)"를 파는데, 정어리의 머리를 히이라기라는 나뭇가지에 끼워, 현관 문에 걸어두면 귀신이 왔다가도 냄새가 너무 지독해 들어오지 못하고 도망간다고 한다. 참 재미있는 상상이다.

정어리와 히이라기라는 나뭇가지

찹쌀떡과 귀신의 얼굴 모양을 한 생과자

찹쌀떡은 한자 그대로 자기를 향해 "웃는 복"을 받아들이기 위해 먹는다고나 할까... 또는 "웃으면 복이 와요!!!"

福, 福 하면서 끊임없이 구하는 마음으로 여러 가지를 사서 모으지만, 그럴수록 더욱 허전해지고 자신없는 자기의 모습을 보는 때가 이런 절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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