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밖에..

 

holland_back.gif

Home

여 행

생 활

 

시대극(時代劇)을 보면서(1)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여러 가지 면에서 취향이  바뀐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요즘 내가 딱 그렇다. 한창 때(?)는 식당에서 된장 찌개를 절대 사먹은 적이 없었는데, 요즘은 사흘 연달아 끓여 먹어도 질리지가 않고 어딘가 구수한 맛에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먹는 것이 이렇게 변하다 보니 다른 부분도 바뀌어 가서, 하여간 머리 복잡하게 하는 것은 일부러 피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살면서, 내 의지대로 싫은 것은 "피하고", 좋은 것만 "즐기며" 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있으랴... 단 한가지 있다면 TV채널 돌려가며 편안하게 볼 수 있는 프로를 고르는 정도일까...


"아바렌보쇼군"의 잘 생긴 쇼군이다. 사건 해결을 위해 부하에게 뭔가를 지시하는 장면이다. 지금은 쇼군이 에도성내에 있기 때문에 옷감에  토쿠가와 가문의 문장인 새겨진 옷을 입고 있다. 겨드랑이 부분의 원 그림이 문장이다. 그러나 시중에 나갈 때는 평범한 옷으로 신분을 감춘다.

어릴 적 동화책에서나 보던 것 같은 단순한 줄거리의 '권선징악(勸善懲惡)'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가 있다. 현대극보다는 주로 대개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7)의 무사(武士)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시대극(우리나라에서는 '사극'이라고 한다)이 거의 이런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내가 즐겨 보는 것은 "미토코몬(水戶黃門)"과 "아바렌보쇼군(暴れん坊將軍)"이다.
드라마 시작부터 선악의 구별이 확실하게 드러나고, 주인공들의 행동이 손바닥 보듯 훤하게 보여, 딴 생각않고 정신없이 보게 되는 내용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이치에 맞지 않는 현실의 삶 때문에, 어딘가 손해 본 듯하고 가슴이 답답하도록 꽉 막혀 제대로 하소연할 곳도 없을 때, 힘 없는 나 대신, 누군가가 소위 '정의(正義)'를 바로 세우고 '사람의 바른 도리(道理)'를 큰 소리로 외치며, 나쁜 짓 한 사람들을 벌하기 때문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볼 수 있다.


여기는 에도성(江戶城) 내에 있는 쇼군의 집무실이다. 죠단노마(上段 )라고 해서 쇼군이 앉아있는 부분의 타타미가 부하들이 있는 곳보다 한 단 위에 깔려있다. 쇼군 뒤에는 화려한 금박과 함께 무사들의 상징인 소나무 그림이 장식되어 있다.

이런 드라마에는 우선 핍박을 당하는 서민(주로 상인이나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이다)과 이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권력 남용의 관리나 지역 유지가 선악의 대결을 한다. 그리고  꼭 우연히 근처를 지나가다가 이 서민을 알게 되어 그 처지를 도우려고 나서는 절대 권력의 인물, 즉 미토코몬과 쇼군이 악을 징벌하는 주인공으로 나온다.

"아바렌보쇼군(暴れん坊將軍)"의 쇼군은, 에도시대의 8대 쇼군인 토쿠가와요시무네(德川吉宗1684-1751, 德川家康의 증손자)로, 실제 재직 기간(1716-1745)이 다른 쇼군이 다스리던 시대보다 정치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번성하였다고 한다.

꼭두각시같은 쇼군이 아니라 에도 바쿠후(江戶幕府)를 열은 토쿠가와이에야스(德川家康)처럼 강한 권력자로 군림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백성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었다.


서민을 괴롭히던 악인의 앞에 일단 이렇게 혼자 나타나서 죄를 낱낱이 밝힌다. 악인들은 대개 쇼군의 얼굴을 모르기 때문에 쇼군이 가지고 있는 칼자루의 문장이나 입고 있는 옷에 그려진 문징을 보고 쇼군이라고 알아챈다. 그리고는 얼른 바닥에  무릎을 꿇고 벌벌 기는 시늉을 한다. 그러나 사실 쇼군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없기 때문에 진짜 쇼군을, 마치 쇼군 흉내를 내는 가짜로 몰아쳐 부하들을 시켜 죽이려고 한다. 이 때 그동안 숨어있던 쇼군의 부하 몇 명이 나타나 악인을 징벌한다. 정의로운 쇼군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방법이다.

백성들의 편에 선 쇼군. 어느 무사가문의 아들로 신분을 속이고 평범한 서민 친구들과 약자를 괴롭히는 관리나 유지들을 징벌하는 쇼군. 이런 이미지로 드라마 속에서 쇼군은 종횡무진한다.
1978년1월부터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가 여지껏 시리즈를 이어간다는 것은 그 나름의 재미가 있고 시청자가 있다는 뜻이다. 물론 단순한 극 전개 때문에 젊은이들은 거의 시청하지 않고 나이 든 세대에서 많이 본다고 하는데, 아마 "마음이 풍요로왔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미토코몬(水戶黃門)"은 1969년8월부터 1부(각 부는 17-48편의 이야기로 구성) 시리즈가 시작되어 매년 시리즈를 거듭해, 2003년 12월까지 32부를 방영하였고, 편수로는 1000회를 달성하였다.

주인공인 미토코몬은 정식 이름이 토쿠가와미츠쿠니(德川光? 1628-1700)로 토쿠가와이에야스(德川家康)의 손자이다. 그리고 대대로 토쿠가와 집안(水戶德川家)의 자손이 다이묘(大名, 또는 藩主로 지역의 영주)를

 


미토코몬의 주인공들이다. 사실 이 연기자들은 22-28부까지 등장한 사람들로 한 낮에 하는 재방송을 통해 그 활약상을 재미있게 보았다. 가운데 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노인이 미토코몬이다. 나머지 세 명은 늘 같이 다니는 부하들로 둘은 칼싸움을 잘 하고, 오른쪽의 남자는 그냥 분위기를 살리는 재미있는 역을 맡았다. 이 외에도 중요 시점에만 등장하는 남녀 두 명의 닌자(忍者)가 있다.

물려받는 미토한(水戶藩, 현재 이바라키縣 水戶市 주변)의 2대 한슈(藩主)를 지냈다.

이름이 있으면서도 미토코몬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코몬(黃門)"이 원래 중국의 어느 官位名의 한 부분으로, 이 사람이 일본에서 받은 관위가 그에 비슷한 서열이고 중국을 높이 여기는 분위기 때문에 , 후세의 사람들이 "미토에 사는 코몬님"이란 의미로 "미토코몬"이라고 칭하였다고 한다.

이토록 후세 사람들에게까지 신망을 얻었던 것은, 한슈로 재직할 때나 물러나서도 여러 善行을 하거나 문화 사업을 펼치며, 역사편집 활동을 하였기 때문이다. 실제 여러 부하(史臣)들을 전국 각지로 보내 자료를 모아 책을 만들어 나가니, 후세에 결국 1906년 "大日本史"란 이름으로 완결된 책이 나오게 되었다.

이렇게 서민에게 존경받는 반슈로 그 이름과 행적이 줄곧 전해 내려와,

 

메이지 시대(明治 1868-1912)의 서민 상대의 이야기꾼(講釋師)이 "水戶黃門漫遊記"라는 제목으로 덧붙인 이야기를 지어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고 한다. 실제 미토코몬은 전국을 돌아다니지 않았지만 이야기에서는 한슈에서 물러난 후 전국을 돌며 선행을 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바탕이 되어 드라마까지 만들어지게 되었다.

사실 이런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무작정 드라마가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본다. 시대적으로 그 사회 분위기가 이런 드라마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지도 모른다. 1960년대 들어서 1964년의 토쿄올림픽을 치루기 위해 토카이도신칸센(東海道新幹線)이 개통되고,  여러 호텔 건설이 붐을 이루면서 국내 여행 산업의 인프라가 정비되는 기회를 맞이하였다. 이렇게 새로운 관광지와 특산품 개발이나 선전을 위해 많은 돈을 들여야 하는데, 전국 각 지역을 돌아다니는 미토코몬을 통해 자연스럽게 그 지역의 장인 정신이 투철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특산물이나 유명 지역이 소개되니, 시청자들은 여러 정보를 접하고 방송사는 시청률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으니 이래저래 사랑받는 드라마가 되었다.

한 지역에서만 유명한 인물이 아니라, 전국을 다니며 "정의"가 무엇인가를 일깨우는 역할이기 때문에 드라마에서도 "水戶黃門世直旅, 將軍のかわりで(쇼군 대신 미토코몬의 세상을 바로잡는 여행)"이라고 설명한다.
드라마는 30여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지만, 실제 시간적인 배경을 보면, 한슈에서 물러나고 생을 마치기 전까지10년간이며, 德川家康의 증손자인 토쿠가와츠나요시(德川綱吉, 5대 쇼군 재직기간 1680-1709)가 쇼군을 맡고 있을 때이다. 쇼군이 직접 나서서 백성들의 어려움을 풀어줄 수 없으니, 지혜롭고 어질며 신망이 두터운 미토코몬에게 부탁해서 이런 여행을 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어사 박문수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부하들이 악인들과 어느 정도  칼싸움을 해서 혼내 준 후, 미토코몬이 그만 되었다고 외치면, 부하 중의 한 사람이 품속에서 이렇게 인로를 꺼내면서 외친다. "미토코몬님이 납시었다. 모두 엎드려라"라고. 이 후 미토코몬이 악인들의 죄상을 밝히며 벌을 내린다. 도움을 받던 서민들은 놀라움과 감사.

박문수에게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는 마패와 경호원이 있듯이, 미토코몬에게도 쇼군에게서 직접 받은 "인로(印籠)"와 4-6명의 경호원들이 있다. 경호원들과는 늘 같이 다니는데 한번씩은 화려하게 칼싸움을 벌이는 장면을 보여준다.

"인로"는 휴대용 약통으로 그 표면에 쇼군케(將軍家)의 문장(紋章)이 그려져 있어서 누가 보아도 쇼군에게서 받았다는 것을 알게 한다. 당시 각 가문마다 문장을 만들어 그 표시만 보아도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었으니, 쇼군케의 문장은 쇼군과 동일시되어 문장이 새겨진 인로를 악인들 앞에 내 보인다는 것은 "쇼군이 바로 이 자리에 있다, 쇼군은 너희들의 악행을 다 알고 있다"는 의미여서, 그만큼 형벌에 있어서도 권위를 가질 수 있었다. 실제로도 그러했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드라마에서는 이 부분이 사건의 해결과 악인의 처벌로 이어지는 결말 부분이다.


이 회면은 드라마의 처음과 끝에 나오는 것으로, 제목과 함께 토쿠가와 가문의 문장인 "아오이"풀잎을 보여주고 있다. 원 안에 세 잎이 들어가 있으며, 이것만 보아도 사람들이 벌벌 떤다. 예전 드라마에서는 이렇게 좀 낡은 문장인데, 요즘 새로 하는 시리즈에는 금색으로 번쩍번쩍하게 나온다.

악인들을 칼싸움을 하며 좀 혼내준 다음에 도망가려고 우와좌왕하는 그들 앞에 갑자기 인로를 내 보이며 미토코몬의 정체를 밝힌다. 여지껏 신분을 숨기고 사건을 해결한 미토코몬의 정체가 드러나며 그 권위가 인로를 보여줌으로 해서 더욱 절대적으로 비쳐진다. 그리고 그저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고 용서를 비는 악인들. 고진감래인가, 핍박받던 서민의 얼굴에 웃음이 돈다. 그리고 내 얼굴에도....

대충 이렇게 드라마가 만들어졌는데, 흐뭇한 마음에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보면, "권선징악"의 주제 이외에도 사람 사는 모습이 보인다.

드라마에서 결말 부분에 미토코몬의 정체가 밝혀지기 전까지는 그는 자신이 누구라고 먼저 말하고 다니지 않는다. 혹여 도움을 받는 서민이 그래도 궁금해서 물어보면 그냥 "여행하는 이름없는 노인"이라고만 한다.

그리고는 사건 해결을 위해 서슴없이 서민들과 같이 농민의 모습으로 밭을 갈기도 하고, 나무를 자르기도 하고, 아궁이 앞에서 숯 검댕이를 얼굴에 묻혀가며 불을 지피기도 하며, 시장에서 구걸하는 거지가 되기도 하고... 그러나  관리나 어떤 부자 앞에 일부러 나서야 할 때는 "에치젠(越前)이라는 곳에서 비단 도매상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여, 그들과 맞대면하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정도의 신분은 된다는 듯이 자신을 소개한다. 그러나 그런 자리에서도 허세는 부리지 않는다. 또한 자신의 부하들을 대할 때도 그들의 이야기를 다 들은 후, 사건 해결을 위해 무리없이 일 분담을 어떻게 할 지 현명하게 관리를 한다.

이렇게 여러 신분의 사람들을 대하면서 보여주는 미토코몬의 기본 자세는 "조용히 남의 말을 들을 줄 아는 겸허함"이다. 겸허함은 단순히 말을 들으려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원하는 진심을 헤아려 살필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찬찬히 그 말들을 더듬어 보고는 따스하게 보듬어 주는 여유이다.  또한 어쩌면 신분이 높고 낮음을 떠나,  어느 환경에서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다른 이들을 칭찬해 주며 손을 잡아 줄 여유가 있는 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내가 다른 이에게 귀 기울이지 못하고 내 자랑을 하거나 누군가를 헐뜯고 욕하고 싶을 때는, 내가 그 사람보다 어딘가 우월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당장의 내 상황에 내가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감이 없을 때이다. 스스로 느껴지는 무능함과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기를 쓰며 남을 싸잡아 끌어내리려는 오만함. 나를 변호하기 위해 여러 포장을 하고 하고 또 하고... 그러나 홀로 조용한 화장실에 가서 앉아 있으면 더더욱 초라해지는 나를 보게 된다.

살면서 가끔씩 이런 나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 "정의의 사도" 미토코몬인 것이다. 미토코몬은 무슨 일이든지 잘 처리하는 너무 멀리있는 허구의 인물이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가슴 한 모퉁이에서 가장 가까이 그 자신의  솔직함을 늘 기다리고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지 정의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를 어찌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말없이 보여주기 때문에, 이 드라마를 보는 잠시만이라도 " 아~ 나도 저런 마음가짐으로 살자"라고 결심!! 그러나 돌아서면....

 

  Home   여 행   생 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