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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韓流)를 보며

 

일본에서 살면서, 가끔씩 우리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TV에서 보게 되면, 하던 일도 놓고 도대체 뭐라고 해설을 할까 하는 생각에 유심히
보아왔다. 정식 뉴스에서는 정치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지만, 평일 낮 시간대에 하는 "와이드쇼"라 부르는 아줌마 대상의 프로들에서는 연예, 사건, 생활 정보 등을 다루는데, 우리나라를 언급하는 일이 사는 동안 점점 많아져 볼적마다 뿌듯했다.


2004년 12월 어느 날 아침 우연히 본 어린이 프로(
おかあさんといっしょ, NHK) 의 한 장면이다. 욘사마의 그림을 들고 나의 욘사마는 어디 있나 하며 찾고 있고, 한쪽에서는 눈사람을 만들고 있다.
아이들 프로에까지 이런 장면을 넣는다는 것이 너무나 놀라웠다.
일본 방송에서는 뭔가를 띄워줄 때는 정말 확실하게 한다.

처음 오사카에서 살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한국에 대해, 거기가 어디 붙은 나라인가 하는 식의 무관심 내지는 좀 내리깍으려는 반응을 보여서 기분이 나빴는데, 시간과 더불어 "한국"이란 말이 자주 들리고, 이제는 "한류"라는 표현을 써가며 관심을 나타내니 좋은 일이다.
오죽하면 처음보는 아줌마들도 비록 인사치레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면 "어머~ 나 무슨 드라마 봤어, 한국말 좀 가르쳐 줘"라고 해 준다. 예전 같으면 서양의 백인들에게만
그 나라 말을 배워야지 하며 말을 꺼내던 사람들이다.
동네에 있는 유명한 전국 체인의 영어학원에서도 4년 전에는
영어, 불어, 중국어, 프랑스어 정도만 가르쳤는데 이제는 한국어란 말도 간판에 쓰여있다.


주인공의 머플러와 눈사람, 어디서 많이 보았다...

이 모든 것들이 정말 TV가 없다면 과연 이루어졌을까 싶다.
한국 드라마의 방영, 와이드쇼에서 호들갑을 떨며 한국의 어느 배우 이야기며, 두드러지게 편집되어서 보여지는 아줌마 부대들의 열광, 그에 맞추어서 한국 관광 붐, 쇼핑센타에서 더 자주 볼 수 있게 된 한국 상품들, 다시 와이드쇼에서 소개하며 또 호들갑. 얼핏 한 두 번 보면 정말 일본인들, 일본 아줌마들이 다 한국에 미쳐 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처럼 긍정적인 면만을 더 도드라지게 보여주는 프로가 있는가 하면, 한국인들이 느끼기에는 "시샘을 해서 딴지 거는" 것처럼 보이는 프로들도 가끔씩 나오고 있다.

그런 프로들의 전체적인 느낌은, 우리나라가, 마치, 
그 옛날 일본에 여러 선진 문화를 전수하였지만, 일본인들이 그걸 고맙게 여기지도 않고, 그렇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도 않고 아닌
척하며 주로 중국에서 건너왔다고 하는 태도들을, 왜 진실을 외면하냐며 비웃고 가소롭게 여기는 것과 같다. 이런 프로의 주제는 고대 문화는 그렇다고 쳐도, 현대의 문화는 절대적으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흘러들어갔다는 것을 나타내는 뿌리 찾기이다.

도대체 무슨 증거를 대며 그러나 싶어 보다 보면, 안타깝게도 말이 되는 부분들이 나타난다.
1998년 정식으로 이루어진 일본대중문화 개방 이전부터, 우리가 즐겨 보던 영화나 TV 프로들이 얼마나 일본을 베껴왔는지 조목조목 비교 설명을 하고, 심하게는 한국 제작진들의 고백까지 담아 보여주었다.

한 예로, 우리나라의 맨발의 청춘(1964년 작품)이라는 영화는 그 당시 영화계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이것은 일본의 "泥だらけの純情(1963년 작품)"이라는 작품을 그대로 베낀 것이다. 주연을 한 여배우에게 일본의 영화도 같이 보여주며
장면 장면을 비교하게끔 하니, 자기는 이토록 똑같이 베낀 줄은 몰랐다고 혀를 찬다. 주인공 남자의 의상도 똑같고, 소품이 조금 달라도
전체 내용이나 장면들이 너무 같기 때문에 놀란 것이다.

그 외, 제목을 잊었지만 경비행기 조종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일본 영화가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어느 제작사가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을
아예 초청을 해서 대사만 한국어로 바꾸어서 다시 만들었다는 이야기, 영화나 드라마의 각본들이 만들어지기 전에 일본의 어느 작품들을 다 보고 나서 조금씩 베끼기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며 어느 유명한 사극 각본가가 인터뷰를 하고,

한류붐의 도화선이 된 어느 드라마의 제작자가 일본의 유명한 드라마 시리즈(TBS에서 만든 赤い란 말이 들어가는 시리즈로 1974-1980년까지 10 작품, 우리가 아는 드라마 주인공들의 전형적인 모델이 그려져 있다)를 다 보고 참고했다며 이야기를 하기도 하였다.

쉽게 이야기 하면, 우리 시청자들에게는 신선한 소재로 느껴져 인기를 얻었던 과거의 드라마나 영화는, 포장은 한국 것이지만,
내용은 일제 강점기의 기억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자발적으로 몰래 몰래 받아들인 것으로 대부분 일본인들의 의식이나
문화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캔디 캔디 일본에서는 1975년 만화책이 나와, 1976년부터 TV에서 방송을 시작했고, 1년 뒤 우리나라에서도 "들장미 소녀 캔디"가 선보였다. 이 웃는 얼굴은 너무나 신선했다. 현재는 저작권 문제로 일본에서 만화가 출간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일부이긴 하지만 내 어린 시절의 상상이나 꿈은 TV에서 본 만화영화가 기본이 되었는데, 그 만화들이 다 일본인들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아톰, 요술 공주 세리, 마징가 Z...
조금 더 커서는 "캔디"가 멋있는 남자의 이미지를 보여주며 사랑이 뭔지 느끼게
하고, 있거나 말거나 이루어지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첫사랑의 추억"이란 이런 것이어야 한다 라고 이상적인 원형틀을 만들어서 머릿속에 콱 박아 놓았다.
그 이후에 수업시간에 몰래 보던 순정 만화들도 더 그런 꿈을 키워주었다.

만약 우리나라 옆에 일본이 없었다면 우리의 문화는 어떤 모습으로 자라고, 내 기억들은 상상력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너무 오래전 이야기이긴 하지만 "춘향전"을 읽으며 사랑을 느낀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싶다.

결국 일본인과 사는 곳이 다르고 풍습과 말이 달라도 기본적인 상상력의 세계에서는 동질감을 느낀다는 것인데, 이것이 정말 예리한 묘사로 드러난 인간의 본능이나
정서가 다 비슷하기 때문에, 굳이 일본 때문이 아니어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긴 시간 동안의 일방적인 세뇌때문이라고 해야 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마도 두 가지 면을 다 지니겠지만, 모르고 있을 때는 아무렇지 않지만 알고 나면 왠지 속이 답답해진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일본의 아줌마들이 "한류"에 열광하는 이유를 보면,
열광, 동경은 일본 내에서 몇 번 걸러져서 나타난 "西洋 지향"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예전부터 일본인은 "서양의 것"을 거부감없이,
고맙게 받아들였고, 먼저 그 것을 누려본 귀족계급을 부러워하며 서민도 일종의 지위 향상의 수단으로 "서양"을 경험하였다.

역사상 서양에 대한 쇄국정책도 있기는 했지만, 에도바쿠후(江戶幕府1603-1867)가 끝나갈 무렵인 특히 1853년 浦賀港(神奈川縣 橫須賀市)에 나타난 미국의 군함(페리 제독의 黑船)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부터 시작해서 1854년 친선조약을 맺으면서 開國이 이루어졌다.
찬성 반대 여러 의견이 있었겠지만 그 대처 방법은 전체적으로 일본 자국의 힘을 키우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시기가 좋았던 것이, 바쿠후는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메이지천황이 등장(1867, 연호로는 1868-1912)하면서 새롭게 권력을 재정비하고 서양의 열강들에 못지 않은 나라로 키우겠다는 정책이 세워졌기 때문에, 서양의 문화 문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배우게 되었다. 청일전쟁(1894-1895)과 러일전쟁(1904-1905)에서 승리하여 그동안 서양식 군대 제도로 훈련한 성과를 보았고,
교육 등 다른 면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메이지 시대가 끝나고 다이쇼시대(大正, 1912-1926)에 들어서는, 지금까지의 서양문화가 주로 귀족 중심의 일부 계층을 통해 들어온 것이 이제는 "대중문화(大衆文化)"로 발전하게 되었다. 아마도 현재 일본 문화의 기본이 여기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의 발전으로 노동자와 샐러리맨을 중심으로 하는 시민층이 형성되고, 여성의 지위도 높아지고, 비지니즈 건물의 건설, 소비문화의
대명사인 백화점의 출현(三越,1914), 교외전차의 발전, 응접실이 있는 서양식과 일본식의 절충된 문화주택이 세워지고, 洋服, 洋食, 수도의 보급이 널리 이루어지고, 라디오 방송도 시작하고(1925), 야구(1915)를 비롯한 스포츠가 시작되었다.
또한 정치적으로는 세계1차대전(1914-1918)이 끝나고 1920년에 설립된 국제연맹에 상임이사국으로 참가(1933년 탈퇴)할 정도로,
좋게 이야기 하면 나라의 힘이 커졌다고, 달리 보면 비뚤어지고 오만한 제국주의가 시작하였다.

어찌 되었건 자발적으로 받아들인 서양의 문화 중, 음악도 메이지시대부터 들어왔는데, 특히나 군대를 중시해서 그런지 군악대의 연주가 많았고 시민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여기에 소비 문화가 생겨나면서 사람들을 끌어모을 상술의 한 방법으로, 1909년 미츠코시백회점(日本橋三越吳服店)에서는 남자 어린이만으로 조직된 三越少年音樂隊라는 취주악단을 창설하였다. 당시로서는 어린이를 전면에 내세워 무슨 행사를 한다는 그 자체도 획기적인 발상이고, 더구나 연주까지 한다니, 어른들이 몰려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른 도시의 백화점들까지도 유사한 어린이 음악단을 만들어 갔다.

이런 유행은 당시 오사카(大阪)를 기점으로 주위로 뻗어나가는 전철 회사에서도 따라하게 되는데, 한큐토호그룹(阪急東寶, 1907년 설립된 阪急電鐵에서 시작)이라는 회사에서는 교외선을 운영하면서 그 선로 옆으로 주택지도 같이 넓혀나가 점점 도시로 유입되는 인구 덕분에 성장하고 있었다. 그 중 한 노선의 종점인 타카라즈카(寶塚, 兵庫縣)가 작은 온천 마을이었는데 이곳에 지역 활성화와 전철 이용을 늘리기 위해 遊園地를 만들고, 역시 사람들을 끌기 위해 1913년 寶塚唱歌隊라는 소녀들만의 합창단을 만들었다.



타카라즈카 극단의 레뷰의 한 장면

여기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1919년에는 아예 음악과는 무관한 소녀들을 뽑아 전문적으로 키우는 음악학교(寶塚音樂歌劇?校)를 세우고, 이곳의 졸업생만이 입단할 수 있는 가극단(寶塚少女歌劇團)마저 만들었다.
1924년에는 이 가극단의 전용 극장이 세워지고, 이후 각 組(현재는 5組, 花 月 雪 星 宙)에서 1개월마다 교대로 공연을 하게 되었다. 이후 1927년 당시 서양(예로 프랑스의 1889년 시작한 Moulin Rouge)에서 유행하던 "레뷰(revue)"라는 화려한 춤과 노래, 그리고 시사풍자의 대사가 어울린 종합무대예술을 처음으로 도입하여 공연함으로써, 보통 사람들이
이제까지 실생활에서 조금씩 접하던 "서양"을 더욱 환상적인 이상향으로 느껴지게 하였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타카라즈카극단을 아는 사람들은 공연이 이루어지는 대도시 몇군데의, 전체 인구에 비하면 소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극단 역사로도 중간에 전쟁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비약적으로 빠르게 발전했다고도 볼 수 없지만,  어쨌건 타카라즈카 지역을 기반으로 여자들만이 출연하고, 극중에서의 남자역도 여자가 맡고, 서양식 화려한 무대의상과 극 내용들로 무척이나 신선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며 긴 시간 서서히 이름이 널리 퍼져갔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관객들을 열광하게 만든 극이 공연되고 입소문으로 퍼져 전국적으로 팬을 모으게 되었다. 그것은 만화를 원작으로 한 "베르사이유의 장미(
ベルサイユのばら)"였다.

우리나라에서 "순정만화"라고 부르는 만화의 원조는 일본의 "쇼죠만가(小女漫畵)"이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만화의 형식 체계를 갖춘 사람은 테즈카오사무(手塚治蟲 1928-1989)이다.
그가 1947년 발표한 "신타카라지마(新寶島)"라는 작품은 영화적 표현을 도입하여 이후의 작품들에 큰 영향을 주었고, 또한 1963년 일본 최초의 TV애니메이션 영화 "아톰(鐵腕アトム)"을 제작하였다. 한편 "만화의 신"이라고 불리는 그가 소녀들이 좋아할 만한 만화를 만들어 내었고, 대부분은 귀엽고 아기자기한 이미지의 주인공들의 활약상을 그렸는데, 어릴 때 보았던 "리본 기사(リボンの騎士, 1967-8년 방영)"가 생각난다.

소녀만화 초창기의 작품들은 주로 이렇게 남성작가들이 그렸고, 본격적으로 소녀들을 위한 만화잡지(少女コミック, 1968년 小學館)가
나오면서 여성작가들도 배출되었다. 70년대 들어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동경하고 또한 그 실태를 그린 만화들이 등장하였고, 한편으로는 외국에 대한 무한한 동경을 그린 작품들이 인기를 얻어 비약적인 소녀만화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베르사이유의 장미(ベルサイユのばら)"는 이케다리요코(池田理代子 1947- )라는 작자에 의해 1972년부터 잡지에 연재되어 1500만부
이상 팔려 당시의 만화업계에서 특이한 사회현상이라고 평할 정도였다. 그러한 인기와 주인공이 "남장여자"라는 점에 주목하여 1974년 타카라즈카극단에서 노래와 춤이 들어간 연극으로 공연을 하였고, 이를 계기로 극단의 인기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남자역 여자 배우였던 시즈키아사토(姿月あさと) 1998년 새롭게 만들어진 소라구미(宙組)에서 2년간 남자역 제1인자였다. 외모와 노래와 춤 모두 다른 조의 배우보다 멋있었기에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배우이다.

만화잡지라는 종이에서나 보던 멋진 주인공을, 실제 남자가 보면 도대체 어디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얄밉게,  여성인 배우가 너무나 이상적인 남자(수려한 외모, 예의바르면서 용기있고 박력있는 말투와 행동, 여성에게 자상하게 배려하고, 주위 사람들을 통솔하는 카리스마가 있다)역으로 멋들어지게 해내니, 이를 관람한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많아지면서 이성인 남성에게 요구하는 것도 많아지고 실망하는 것도 많아져서 "그런 멋있는 남성"을 만나고 싶은 바램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쩌면 여성 자신속의 점점 강하게 커지는 자아를 극의 주인공처럼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에는 너무 많은 화살이 꽂히기 쉽기 때문에 숨겨두었다가 연극을 보면서 조금씩 들쳐보며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 젊은 시절의 순정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자신을 위하여 뭔가 이루어놓지 못한 후회스러움에 "젊은 활기"에 더 빠져든다는 생각이 극을 보면 볼수록 든다.

만화와 연극이 접목된 "베르사이유의 장미(ベルサイユのばら)" 이후 양자는 미묘한 여자의 마음을 빨아들일 수 있는 내용과 주인공들로
성장을 하였다. (
베르사이유의 장미 만화는 1976년에 아예 프랑스에서 일본의 자본으로 영화가 만들어지고, 1979년에는 TV애니메이션이 제작되어 세계각국에서 방영되었다)  

짧게 잡아도 30여년간 만화에서 그려지고 연극에서 실제 노래하고 춤추며 움직이는 "너무나 전형적인 주인공"이 일본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는데, 한류의 시작이 된 한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나타난 남자 주인공은, 그들에게 남장 여자에게서 뭔가 부족하게 여겼던 것을
다 채워주는 "이상 실현"이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그 배우가 짧은 머리에 우락부락한 외모, 예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면 "절대" 일본에서 한류의 열풍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부분 드라마 자체의 내용은 이미 일본에서 7-80년대 지나간 것이어서 진부하다고 말하지만, 빛을 발하는 주인공은 그 진부함마저도
참아가며 볼 수 있게 만들었다고 한다.

다시 생각해 보면 일본에서의 한류는 타카라즈카극이나 만화 문화가 번성했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거기다 TV의 자유로운 다양성까지 합쳐져서. 수십년 몸에 익은 습관의 한 연장선으로 그들은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 관광을 오는 것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는 것처럼 뒤집어 보면, 하루 아침에 별 관심도 없던 나라, 문화에 대해 애써 모은 돈 써가면서 무작정 열광할 수는 절대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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