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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건축으로 보는 교토(京都) (4)

 

"교토다움" 의 추구

다이쇼 시대부터 쇼와(昭和 1926-1989) 시대로 넘어가면서, 근대 도시로서의 변모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던 교토에서 "역사도시" 로서의
자부심은 사라지나 싶었는데, "경관(景觀)" 이라는 문제가 대두되면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맞는다.


히가시야마. 멀리 淸水寺의 지붕이 보인다.

1927년 교토시청의 토목국장이, 교토의 대표 산(山)인 히가시야마(東山, 이 산은 794년 교토가 수도로 정해지기 전보다 더 오랜 역사를 지닌 伏見稻荷大社와 淸水寺가 있어서  믿음의 모태인 곳이다)의 개발을 주장하고 나섰다.
관광지로 꾸미기 위해서 케이블카나 로프웨이를 만들자는 것이었는데, 이를 두고 나중에 교토 시장이 된 어느 법학자가  "히가시야마는 바라다 보는 산이어야 하지 내려다 보는 산이어서는 안된다" 라며 교토신문에 반론을 크게 제기하며 논쟁이 붙었다.

이는, 교토는 단순히 천황이 살았고 건물이 있어서 역사성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교토 분지를 둘러싸고 있으면서 신앙의 대상도 된
여러 산들의 풍경까지도 훼손시키지 않고 아름답게 보존해야, 긴 시간속 사람과 자연의 조화로 이루어진 교토의 진정한 역사성을
인정받는다는 생각이 서서히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생각들은 法으로 만들어졌는데,
토쿄나 오사카와 다르게 "風景美" 라는 것을 중시해서, 넓은 山地를 포함한 범위가 도시계획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이런 정책은 戰後에도 변하지 않고 계속 이어져, 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北 東 西의 三山을 보전하고 시가지의 남쪽을 개발하여,
淸水寺, 金閣寺 등 유명 관광 사원들이 지금까지도 잘 보존된 것이다.
또한 戰後에는 풍경미의 대상이 산뿐만 아니라 도심의 거리 경관으로 더 넓혀졌다. 즉, 전쟁 전에는 근대적인 건물들이 들어서는 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왔지만, 이 즈음부터 "역사 도시로서의 교토다움" 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淸水寺가 있는 히가시야마 산자락의 모습

시내 주위의 산 아래 보존 지정 지역으로 유명 관광지가 다 있다

토오지(東寺)의 유명한 五重塔.
교토의 모습이 찍히는 사진을 보면 이곳이 상징처럼 많이 나온다.
거리 보존 덕분에 왠만한 큰 대로변이 아니면 거의 다 기와집뿐이다.
東寺(?王護?寺) 五重塔


논란이 일었던 교토타워의 모습. 건물 옥상위에 세워져서
건축물이 아닌 구조물로 승인되어 지어질 수 있었다.

그 계기가, 1964년 교토타워의 건설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교토타워는 지금이야 교토의 상징이라고 여겨지지만, 당시에는 역사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구조물이라 해서 반대가 심했다.
사실 교토는 다른 도시와 비교해서, 예전부터의 수많은  1,2층짜리 목조 가옥들이 전쟁중에도 불타지 않고 남아 있기 때문에 이런 곳 한복판에 콘크리트로 된 삐죽한 모양새가 과연 어울리겠냐는 생각들이었다.
그러나 결국 건물 옥상 위에 만들어진 工作物로 인정받은 교토타워(1964년 개업, 건물 포함 전체 높이 131m, 당시의 교토 인구 숫자와 같다)는 高度 제한에도 걸리지 않고 세워졌고,

주위에는 시대의 흐름따라 다른 콘크리트 건물들이 들어섰다. 하지만, 이런 반대 운동은 역사도시 라고 불려지는 도시의 경관 문제를 정부에서 나서서 행정적으로 지도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나라(奈良市), 카마쿠라(鎌倉市)에서도 경관파괴의 개발사업이 문제가 되어서, 정부는 역사도시의 風土를 지키기 위해 1966년 교토, 나라, 카마쿠라를 대상으로 한 고도보존법(古都保存法)을 공시, 시행하였다. 이후 교토에서는 당연히 三山을 포함한 교외지역까지도 역사적풍토보존지구에 포함하였고, 도심 안에서도 풍토를 지키기 위한 여러 반대 운동들이 몇 년전까지도 일어났다.
유명 호텔과 JR 교토역 건물의 높이 문제로, 市長이 카모가와(鴨川)에 프랑스 파리의 예술적 다리를 세우겠다고 해서 반대 운동이 일었다.

*** 고도보존법  
원 명칭은 古都의 歷史的風土 保存에 관한 特別措置法 으로, 현재 京都府의 京都市,   滋賀縣의 大津市,   奈良縣의 奈良市, 天理市, 櫻井市, * 原市, 斑鳩町, 明日香村,    神奈川縣의 鎌倉市, 逗子市 등 10 곳이 이 법에 의해 "古都" 로 지정되어 개발이 제한 받는다.

*** JR 교토역 건물  
이 건물은 교토역이 1877년 개업한 이후로 4번째로 들어서는 것이며, 1997년 준공하였다. 국제 공모전을 통해서 뽑힌 건축가(原廣司)의
작품이다. 교토역 주변은 높이 120m까지의 건축물이 세워지도록 특별조치가 정해져있지만, 이런 완화는 古都의 경관을 훼손한다는 반대 의견이 강해서 결국 최대 높이를 60m까지로 내려 압박감을 덜한 지하 3층, 지상 16층으로 지어졌다.
그러나 아직도 주위와 어울리지 않고 번쩍이는 외장재에 대한 불만은 이어지고 있다.


새로 지어진 JR교토역과 그 앞에 선 교토 타워.
 


교토의 서쪽을 흐르는 카츠라가와(桂川)의 渡月橋로 전통 모습으로 보존되다.

그러나 실제 고도보존법을 잘 활용한 부분은 "마치나미 보존사업(町竝保存事業)" 이다.
한 예로, 교토 관광의 중심지인 키요미즈테라(淸水寺)에서
야사카진쟈(八坂神社)에 이르는 산네이자카(産寧坂) 지역의
정비 사업을 들 수 있다.  
키요미즈테라 주변은 교토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으로, 절로 올라가는 언덕의 도중에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1951년에 관광주차장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이로 인해 주위의
전통적인 가옥들은 가게들의 난립에 모양새가 바뀌어지고

현대식으로 재건축이 되기도 하여, 과연 이런 모습으로 역사도시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행정을 담당한 사람들은 위기감을 느꼈다. 단지 키요미즈테라 하나만으로 얼마나 더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을까.

메이지 다이쇼 시대의 키요미즈테라 근처의 모습

이 언덕길에 생긴 몰타르(mortar) 주택

그래서 "마치나미(町竝み, 전통 가옥 거리)" 의 역사적 경관도 중요한 遺産이라는 것을 깨닫고, 보전 정비를 위해 지역 주민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반대 운동도 일었지만, 역사도시로서의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불편함과 비용적인 면을 감수해야 했다.  이런 노력으로 1972년에 정식으로 시청에서는 京都市市街地景觀條例를 제정하고, 마치나미 정비를 特別保全修景地區 라는 독자적 제도로 행하여, 집 모양새나 담장의 종류, 창문 모양 하나 하나, 건축재까지도 시청에서 지정한 것으로 바꾸어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 갔다.
이후, 전국적으로 마치나미 보전 붐이 일어, 1975년에는 중앙 정부에서 문화재보호법을  개정해서 傳統的建造物群保存地區制度 를 창설하였고, 1976년에는 지금까지 特別保全修景地區 로 지정되어 있던 산네이자카(産寧坂) 지역이 지정되었다. 이 외에도 교토에서 세 군데가 더 추가되었다.

위 아래 사진들은 산네이자카의 모습으로
철저하고 섬세한 행정적 지도로 바뀌어갔다.

이렇게 경관보존을 실현하기 위해서, "교토시" 라는 지방자치단체에서 먼저 제도를 마련하여 제어하였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그리고 긴 시간 갈고 닦은 제도들은 중앙 정부의 법 제정에도 영향을 미쳐서, "景觀法" 이라는 법이 2004년 공포되어 2005년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또 다른 특징은, 단순하게 "보존" 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만듦" 이라는 것도 포함한다는 사실이다.
실제, 역사적 가옥이라는 것은 그 수에도 한계가 있고, 한 두 군데 보존만 한다면 그리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修景" 이라는 말처럼, 마을 전체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가옥의 외관을 전통 양식으로 맞춰나가면서 改修, 新築, 增築을 하도록 한 것이다.
이런 방법은 전국적으로 퍼져서 " 마치나미 보존사업" 에 영향을 미쳤고, 이렇게 바뀌어진 마을들은 관광명소로 톡톡히 한 몫을 하였다.

이러 이러한 전통 양식으로 다시 고쳐야 한다고 본보기를 만들어서 주민을 설득하였다.

교토시의 노력을 본받아 전국의 중요 전통 건축물이 있는 곳은 보존지구로 정해져서 주어진 분위기를 만들어야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전통 가옥들 사이에 이질적으로 서 있는 근대건축 유산들의 보존에도 적용되고 있다.
전통 가옥 형태도 전통으로서 의미가 있고, 근대 건축도 현재에서 보면 교토의 화려한 부활의 시기를 상징하기 때문에 그 의미가 새롭다.
어느 한쪽만을 고집하지 않고 유연하게 조화시키며 도시를 보존하자는 생각이 현재의 교토를 이룬다.
근대 건축물을 살리는 방법으로 "벽면보존(壁面保存)"을 고안해 내었다. 1902년 세워진 교토의 중앙우편국은 1978년 바깥 부분의 벽만
남기고 내부의 모든 것은 다 허물고 고쳐서, 밖에서 보면 여전히 1902년의 우아하고 장중한 모습 그대로의 사용하기 훨씬 편한
건물이 되었다.    "경관" 의 가치를 중시하는 생각이 강해서 그런가,
심하게는 1906년 지어졌던 건물이 낡아 부수고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새로 지었다는 건물도 있다.

벽면보존 방법은 말 그대로 벽채만 지지대로 남기고 그 내부는 현대식 공법으로  더 튼튼히 새로 짓는 것이다.

 

 

여러 건물들이 겉보기는 예전과 다르지 않게 바뀌었다.
기대하던 교토의 모습에 비교하면 색다르지만
어딘지 모르게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역사를 꿈꾸던 시대의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교토 사람들이 보기에 이런 건물들은 바라보기에도 흐뭇한 거리의 박물관들이다.

마지막 두 사진의 예전 전화국 건물은 완전히 벽채만 남기고 내부는 탁 트이게 하여 신세대들의 쇼핑 공간으로 변신하였다.

교토는 예전의 首都였다는 역사도시로서의 자부심을 단순히
자부심으로만 끝내지 않고,
고안해 낸 條例, 保存修景, 複製(replica) 라는 방법으로
경관 보존에 관해서는 전국 어느 도시보다도 더한 先進地 라는
자부심까지 갖추었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이 대부분 지역 주민이 나서서
이루어졌다기 보다는 행정적 추진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
오랜 세월 자치 조직을 이루고 살아온 주민들의 삶이 녹아들어간
역사도시가 되었냐고 묻는다면 아직은 부족한 면이 남아 있다.
앞으로 어떻게 이 부분을 채울 수 있을까 가
진정한 先進的 歷史都市가 되는 길일 것이다.

 

NHK 知るを樂し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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