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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뷔통 가방과 쟈포니즘(Japonism)

 


TV화면 속의 루이 뷔통 가방과 프로의 제목이다.

저녁에 TV를 보다가 정말 기분 좋을 때가 있는데, 마땅하게 재미있는 것이 없어서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괜찮아 보이는, 무엇인가 일본에 대해 새로운 것을 알 수 있는 내용의 프로가 막 시작할 때를 운 좋게 포착!! 후다닥 종이와 볼펜을 준비해서 보는 즐거움...

토쿄TV에서 방송하는 "예술을 사랑하며(원제목의 번역이 좀 어색하지만.. 藝術に戀して!)"라는 프로를 보게 되었다. 그 전부터 보면, 동서양의 여러 예술가들과 단순히 그들의 천재적인 작품을 소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사회적 배경, 문화, 생활상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람과의 만남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그런 작품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서 '예술'이란 것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한다.

이번 방송의 내용은 19세기 후반 유럽(특히 프랑스)에서 유행한 "쟈포니즘(Japonism)"과 그 영향을 받은 미술계와 루이 뷔통 가방에 대한 이야기였다. 실제 어느 정도로 영향을 끼쳤는지는 모르지만 이 프로를 만든 사람들이 일본인 시청자들에게, '유럽의 문물에 기 죽지 말고 자부심을 느끼자'라고 말하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1878년 파리만국박람회장과 하야시타다마사의 사진.


프랑스에서 출판된 책으로 일본의 우키요에(풍속화)를 설명하고 있다.


고호 작품 "Portrait of PereTangury(1887

장기불황이라는 말이 일본 사회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상황인데도 일본인들 중 1/3 이 "루이 뷔통(Louis Vuitton, 1885년 창립)"의 가방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파리의 루이 뷔통 가게의 손님 60%가 일본인. 많은 유명 브랜드 중에서 하필이면 일본인들이 이토록 이 회사의 가방을 가지지 못해 안달인지... 그 이유를 찾다보니...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게 들리는 말, 유럽에서 일어난 "일본 붐(boom), 쟈포니즘"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1867, 1878년의 프랑스 파리 만국박람회에는 일본의 칠기(漆器) 도기(陶器) 등 일상 용품이 전시 되었고, 이런 물건들이 운반 되는 도중에 깨지지 않도록 상자 속에 쿠션 역할을 하는 종이를 넣었는데 그것이 일본 붐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한다. "우키요에(浮世繪, 江戶時代의 서민 풍속화 1603-1867)"라고 하는 풍속화로 당시의 일본에서는 서민 여자나 어린이들의 장난감 정도로 취급되었는데, 이 그림을 본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그려온 그 때까지의 그림과는 다른 대담한 묘사와 구도의 신선함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신비로운 일본을 더욱 널리 알린 사람은 1889년의 만국박람회에 일본에서 온 통역 담당 "하야시타다마사(林 忠正)"라는 젊은이었다. 그는 프랑스에서 일본 붐을 겪게 되고, 어느 소설가로부터 우키요에의 해설을 부탁받아 공동으로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 그 후 파리에 일본 미술품 가게를 열어 일본의 여러 물건들을 계속적으로 유럽에 소개하였다. 우키요에만도 15만점에 달할 정도로 많은 양이 유럽인들의 소장품이 되었는데, 그 중에는 유명한 예술가들도 있어 그들의 작품(인상파)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위의 그림을 그린 고호(Vincent van Gogh, 1853-1890)는 배경 그림으로 우키요에에서 많이 보이는 머리 장식을 화려하게 한 여자와 눈이 내려 하얗게 된 후지산 등을 그려넣었다.


클로드 모네가 그린 자기 집의 정원 연못에 걸린 다리 그림인데, 일본의 다리를 본땄다.
 


"파리 에펠탑의 36 景(경치)"라는 그림

 


우키요에의 대표적인 화가 카츠시카 호쿠사이의 작품인 "후지산 36 경치"라는 작품 중의 하나.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경우는 파리 교외의 자기 집에 일본식 정원과 다리(太鼓橋)를 만들어 그림의 소재로 삼았고, 집 안에도 많은 우키요에를 벽에 걸어놓고 신비로운 동양, 일본을 감상하며 자신의 그림 분위기를 조금씩 바꿔 나갔다고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인상파(印象派)"라는 화법의 그림이 나온 것이 아니라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눈 떠간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중고등학교 때 아무 생각없이 너무 단순하게 서양의 미술사를 배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을 위해 무슨 派, 무슨 파 하며 달달 이름만 외우고 그림 한 점 제대로 감상한 것이 없다. 그 당시의 사회 분위기도 전혀 몰랐다. 간단하게 몇 글자로 쓰여진 "예술..미술". 생각해 보면 그것도 사회상을 반영한 대단한 작품(?)이다.

유럽의 화가들에게 일본이 더욱 신선하고 신비스럽게 보인 이유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이던 그대로 그리던 상황에서, 우키요에는 어떤 형태를 좀 강하게 강조하거나 간략하게 그리는 화법으로 대상을 추상적인 기호처럼 느끼게 하기 때문이었다. 우키요에는 대상을 보고 상상하며 떠오르는 느낌을 그릴 수 있도록 그들에게 새로운 문을 열어준 것이다. 또한 한 대상을 두고, 그와 관련된 여러 장의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 사물을 이해하기에 쉽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위의 "에펠탑 36경"은 후지산(富士山) 주변을 그린 36장의 그림에서 그런 특징을 본 딴 것이라고 한다.


우키요에는 생각해 보면 일본의 심볼을 그린 것이 많다.


대표적으로 그려진 대상들은 하나의 기호처럼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자리잡았다.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일본 가구.
 

일본인들에게 후지산을 그려보라고 하면 거의 비슷하게 그려낸다.물론 실제로도 복잡하지 않은 모양이긴 하지만, 우키요에에서 본 강렬한 인상의 그 후지산을 무의식적으로 기억해 놓고 그 모습이 후지산을 대표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키요에 화가들이 일본의 유명한 곳을 간략하게 강조해서 그린 그림이 하나의 기호처럼 머리 속에 자리잡은 것이다.


일본 가문의 문장이 그려진 책.


유럽의 가문 문장.


루이 뷔통의 초창기 트렁크, 레이에 캔버스.

일본인들의 이런 특성은 그들 집안의 세력을 나타내는 여러 무늬에서도 볼 수 있다. 이 가문(家紋)은 아즈치모모야마시대(安土挑山時代, 1568-1600)에 귀족들 소유의 소가 끄는 수레 천막 장식에 주인이 누군인지를 나타내기 위해 그려 넣은 것이 시작이었다. 그 때부터 만들어진 가문은 현재까지 약 2만종이 있어 가구(家具)나 기모노(着物, 전통의상)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일본의 가문이 간단한 것에 비해 유럽의 가문은 결혼을 통해 세력을 확고히 할수록 계속 덧붙여지기 때문에 위의 그림에서 보이는 개별 문장도 좀 복잡한 면이 있는데 이런 것들이 더 많이 합쳐지면 그리기도 힘들 정도로 복잡해진다.


유럽으로 건너간 일본의 기모노를 담는 상자로 가문의 문장이 그려져 있다.


루이 뷔통의 고유 모노그램.
 


모노그램 캔버스 트렁크와 일본의 기모노 상자를 합쳐서 본 그림.

그런 복잡한 가문만을 본 유럽인들에게 일본에서 들어온 그릇이나 가구들에 작고 간단하게 그려져 있는 가문을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루이 뷔통이 가방 가게를 열었을 때는 유럽 전역에 여행 붐이 불었고, 그 덕분에 이전의 가방과는 다른 몇 개씩도 쌓아놓을 수 있는 상자 모양의 레이에 캔버스 트렁크를 만들어 팔았다고 한다. 그러나 인기가 좋으면 누군가가 모방을 하기 마련... 다른 제품과 좀 더 다른 차별화를 위해 고민하던 중 일본의 가문이 그려진 물건을 보았다면... 이 가게의 2代인 죠르쥬 뷔통이 아버지인 루이의 이름과 꽃 모양을 적절히 조합해서 만든 모노그램(monogram)으로 가방을 만드니, 1896년 모노그램 캔버스 트렁크가 처음 선을 보인 후 백 년을 넘게 이 브랜드의 얼굴이 되었다.

이런 일본의 가문과 어딘지 비슷한 분위기에 일본인들이 친숙함을 느껴 다른 브랜드 보다도 더 선호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고... 100년 전 프랑스로 건너간 선조들의 작품의 영향으로 현재 만들어진 가방을 사면서 자긍심을 느껴보자고...

이렇게 끝나는 프로를 보면서 루이 뷔통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모노그램이 일본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발표한 것은 아니니 어디까지나 추측이긴하지만, 그 당시의 분위기로 보아 어쩌면 맞는 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조금은 든다.

*** 참고

2002년 9월1일, 일본 매스컴에서 좀 법석을 떨 일이 생겼다. 토쿄의 오모테산도(表參道)라는 곳에 세계에서 가장 큰 루이뷔통 직영점이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패션잡지에서도 미리 선전을 해 주었기 때문에 이 날을 기다려온 사람들이 며칠 전부터 건물 앞에서 진을 치고 기다렸다. 천여명이 넘게... 개점을 기념하는 한정 수량의 상품을 사려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그런 모습과 함께 TV화면에 자신감 넘치게 웃는 루이뷔통 사장의 얼굴이 크게 잡혔다. 브랜드를 특히나, 루이뷔통을 너무나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있기 때문에 루이뷔통 브랜드가 번성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2001년 뤼이뷔통의 전세계 매출액의 30% 정도를 일본 국내에서 올린 실적이라고 한다. 그러니 해외여행에서 일본인들이 사 들이는 건수를 합치면 아마 50%는 차지할 것이다. 이 날도 약 2800명 정도가 매장에 들어왔으며, 매출은 12억5천만원 정도라고 한다. 참으로 엄청난 기세로 몰려들었다.... 이 직영점에서 가장 비싼 상품은 구두만 20켤레 정도 넣는 커다란 사각의 가방인데, 약 3800만원. 그리고 가장 싼 것은 여행하면서 무언가 적으라고 스프링으로 묶은 B5정도의 노트로 70,000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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