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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가시(和菓子)    

 

오사카에 도착하고 어느 정도 짐 정리도 끝난 시점에 백화점 구경을 나갔다. 일본의 백화점에서는 어떤 상품들을 팔고 있을지 꽤나 궁금했기 때문에,   백화점이 세 군데가 몰려있는 우메다(梅田)를 선택해서 하루 종일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백화점의 각층마다 진열된 상품들은 물론 종류와 수량이 훨씬 많긴 하지만, 별로 우리나라와 다를 바가 없어서 흥미를 못 느꼈다.

그런데 지하층으로 내려와서는   눈은 휘둥그래지고 입안에는 침이 가득 고인 채 여기저기 둘러보게 되었다.   '역시 먹거리가 최고야!'라는 생각으로 각 진열대 앞에서 사지도 않으면서 상품들을 하나씩 자세히 살펴가며 구경을 하니  판매원들이 이상한 시선으로 자꾸만 쳐다보는데...그런 시선에도 불구하고 나는 특히 어떤 진열대 앞에서는 떠날 수가 없었다.  말로만 듣던 여러 종류의 와가시(和菓子, 일본의 떡, 과자, 사탕류의 총칭)가 너무나 얄미울 정도로 정갈하게 종류별로 한 개씩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 옆에 있는 세트 포장도 정성스럽게 싸여 있는데, 이런 가게들이 한 두 집이 아니고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러나 그 날은, 하나쯤 사 먹어보아도 되는데도 왠지 가격이 비싸게 느껴져서 결국 구경만 실컷 하고 돌아왔다. 그 이후로 백화점만 가면 와가시 가게 앞에서, 그 시점에 새로 나온 제품을 구경하는 것이 하나의 취미가 되었다.   가끔은 사 먹어보기도 하고, 그리고 아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자연스레 선물도 하게 되고 받기도 하면서 그 맛을 서서히 느끼는데...

와가시를 그냥 처음 한 입 먹으면 너무 달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리고는  다 먹고 나면 단맛에 질려서 한 동안은 쳐다보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은은한 향기의 녹차를 마시면서 같이 먹으면 그제서야 맛의 균형을 느끼게 된다.   녹차의 떫고 쓴맛을 와가시의 단맛이 부드럽게 해준다. 또  와가시의 단맛을 녹차로 인해 덜 느끼게 되어  와가시가 가진 향기를 어렴풋이 느끼니,   전혀 다른 두 가지가 입안에서 부드럽게 융화되는 것이다.  

서로 각각의 것들만 먹으면 몸과 마음이 괴롭지만, 이 조화로움으로 인해 다 먹고 나면 참으로 편안하다.  이런 저런 세상사에 시달리다가 이제서야  고향을 찾아 돌아온 듯한  그런 여유로움과 작은 즐거움이 가슴 속 깊이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녹차 이외에도 커피와 홍차를 같이 마셔본 적이 있는데 영 어울리지가 않았다.   녹차보다도 커피나 홍차의 향이 짙어서인지  와가시의 맛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는 것이다.

두 가지의 맛이 서로 때문에 죽어버리지 않고,   오히려 서로의 맛을 더욱 살려주는 것이 녹차와 와가시의 궁합인 것 같다.    이런 맛을 느끼며 내 앞에 놓인 어떤 종류의 와가시를 바라보노라면 빙긋이 웃게 된다. 왜냐하면 그 작은 크기 안에 그 시점의 계절(季節), 자연(自然)이 보이기 때문이다.  아니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계절의 분위기를 상상할 수 있다. 같은 재료이지만 사계절마다의 아름다움이 정갈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이어서  왠지 먹기에 황송하다.   그 누군가가 정성을 들여서 만든 예술 작품이란 생각이 들어서 이다.

이런 아름다움이 내재된 와가시의 종류를 보면 조금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서 카스테라나  월병 그리고 젤리 류들...   분명히 중국이나 서양에서 들어온 것 같은데 어째서 자신들의 전통적인 과자라고 우기는지...  그러나 와가시의 역사를 살펴보면 조금은 수긍이 되는 면이 있다.   www.ilboniyagi.com

주식(主食) 이외에 부식(副食)으로 빵, 과자와 같은 음식류가  일본에 처음 들어온 것은   나라시대(奈良,710-784)와 헤이안 시대(平安,794-1192)에 걸쳐서 중국에서 온 토오가시(唐菓子)가 원조이다.   그리고 카마쿠라시대(鎌倉,1192-1333)와 무로마치시대(室町,1336-1573)에 중국에서 선종(禪宗)과 함께 점심(點心)이 들어왔는데   이를 계기로 요오캉(羊羹)과 만쥬(饅頭)의 원형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또한 무로마치시대 말기부터는   포루투갈과의 교류로 카스테라(pao de Castella)가 들어오고, 동남아시아나 중국의 남부로부터 난반가시(南蠻菓子)가 들어와 그 제작 기법을 배우게 되었다.   이렇게 여러 곳에서 받아들인 것이, 쇄국정치를 하던  에도시대(江戶,1603-1867)에 차 문화(茶文化)의 발달과 함께   색, 형태, 이름, 소재 등 독자적인 개발로 더욱 꽃을 피운 것이다.    그 이후의 메이지시대(明治,1868-1912)에 들어서는 개방과 함께 서양의 과자류들이 들어와 그 영향을 더욱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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