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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봄, 벚꽃은...

 

 

2004년의 봄은 햇살이 짧아지면서 시작되었다. 겨우내 거실 가운데까지 햇살이 길게 들어와, 불기 없는 차디찬 바닥(온돌이 아니니 그냥 시멘트 위에 장판을 깔은 바닥이다)을 그나마 따뜻하게 여기며 보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슬금슬금 짧아지더니 발코니 창문 근처에서 맴돌고 있다. 방안 가득 환하게 비추던 햇빛을 느낄 수 없어서 왠지 안타깝지만, 그 반면 서서히 아파트 건물 전체가 따뜻해지며 맨발로 느끼는 바닥이 그리 차갑지 않다. 이제 봄인가 보다.

3월 들어서부터는 TV의 뉴스 시간에 벚꽃에 관해 하나 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언제가 개화(開花)가 될 지, 만개(滿開)는 언제... 어디 어디의 벚꽃이 예쁘다는... 벚꽃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은 어떤 것이 있고, 벚꽃 구경을 하며 들어갈 수 있는 온천은 어디라는 둥... 하여간 대중 매체의 힘이 커서 그런지, 일본에서 봄에 벚꽃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뭔가 유행에 뒤진 사람처럼 느끼게 한다.

3월22일쯤이던가, 나고야에도 드디어 벚꽃이 개화를 하였다고 뉴스의 기상예보 시간에 크게 떠들어댄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벚꽃 구경을 하기에 좋은 날은 3월30-4월2일까지라고. 그 이후에는 날씨도 안좋고 꽃잎도 떨어진다고. 이런 말을 매일 들으니 괜히 어딘가로 꼭 가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던 중 4월1일 아침 뉴스에 나고야 근처의 어느 지역이 소개되었다. "일본 벚꽃 100명소"의 한 군데라나... 파란 하늘 아래 물이 맑아 보이는 작은 하천을 따라 몇 Km 정도 길게 벚꽃이 너무나 환하게 피어있는... 그 하천 가운데서 손으로 그린 원색의 알록달록한 코이노보리 천을 씻는 어떤 아저씨... 뭔가 "그림"이 될 만한, 사진이 멋있게 잘 나올 만한 장면이었다. 그래! 저기를 가 보자!

이와쿠라시(岩倉市)의 고죠가와(五條川)

아침부터 서둘러 지도를 보며 나고야시의 북쪽에 있는 이와쿠라시를 찾아갔다. 국도 41번 도로를 따라 가는 길에 저 멀리 벚나무가 잔뜩 줄지어 분홍색으로 화사하게 빛나는 곳이 보인다. 지도를 보니 고죠가와가, 서울시의 한 구(區) 정도의 크기인 이와쿠라시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하천 주위로는 이마저 없었으면 별로 볼거리가 없는 논밭이나 약간의 창고 건물과 공장들과 주택이 있는 그저 평범한 주변 도시의 모습이다. 이런 곳에 고죠가와가 흐르지 않고, 벚나무도 없고, 400년의 전통을 자랑한다는 노보리야(のぼり屋, 깃발 만드는 가게)가 이 하천 옆에 없었다면, 누가 이 市의 이름을 기억할까.

그냥 동네의, 비만 오면 자주 범람을 하던 조그만 하천에 제방을 쌓아 보기좋게 다듬어 놓고, 1953년에는 그 기념으로 벚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나무가 자라고 굵어지면서 흐뭇하게 바라볼 정도로 꽃이 피어 동네가 밝아지니 조금 더 하천 주변을 다듬고, 흐르는 물이 맑아지도록 노력하고, 드디어는 커다란 잉어가 노니는 하천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50년 정도 잘 자란 벚나무에 꽃이 만개하는 4월 첫째 토일요일부터 대략 일주일간 "사쿠라마츠리(櫻まつり)"라고 하여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주택가 사이로 흐르는 고죠가와, 제방의 벚나무. 하천 다리에 사람들이 몰려 내려다 보며 기념 사진을 찍는다.

이런 곳을 가려니 좀 걱정이 된다. 과연 내 생각대로의 "그림"을 볼 수 있을지... 아니나 달라, 주요 행사가 열리는 다리(橋) 근처의 도로는 자동차가 줄지어 섰고, 주변의 주택가에 차를 세우려고 들어가 몇 번을 빙빙 돌다가 겨우 주차를 하였다. 보아하니 사람이 많이 모이는 행사라 임시 주차장도 어딘가 만들어 놓고 자원봉사자가 길 안내를 하고 있지만, 일부분의 사람들은 덜 걷겠다는 생각에 주택가에서 눈치를 보며 세우고 있다.

조금 걸어서 고죠가와로 나가니, 휴~~ 그럼 그렇지. 다리 건너편의 행사장에서는 무슨 노래가 신나게 울려퍼지고, 제방 가득 앉아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 어디선가의 타는 듯한 음식 냄새... 왁자지껄 떠들며 서성이는 사람들의 발 먼지로 공기가 뿌옇게 느껴진다. 어디 벚꽃이 있나... 제방에 줄 지어 벚나무가 있긴 있는데 눈에 들어오지가 않는다.


카메라 부대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을 눈여겨 보는 것도 아니고, 벚꽃잎 하나 하나 찬찬히 보는 것도 아니고, 나 혼자 뭔가 생각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머리속이 멍해진다. 몸에서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듯 붕 뜬 느낌... 사는게 일장춘몽이라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나도 정신이 없지만, 왠지 벚나무가 불쌍하다. 낮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시끌벅적, 밤에는 예쁘게 보이게 한다고 조명을 비춰대니 잠 한 숨 못 잘 것 같다. 사람들은 즐기는 기간이지만, 벚나무에게 있어서는 인내의 기간인가...
어디 좀 쉬었다가 걸었으면 좋겠는데 앉을 자리도 마땅치 않다.

어쩔 수 없이 사람들 뒤를 따라 걸어가니, TV에서 본 코이노보리 천을 씻는다는(のんぼり洗い) 豊國다리가 나왔다.
다들 나처럼 TV를 보고 "그림"을 기대하며 왔겠지만, 사진 찍기에 좋은 장소는 이미 멋진 대포(커다란 망원렌즈를 달은 카메라)든 할아버지 부대가 아침부터 와서 진을 치고 있다. 그 외의 장소도 구경꾼들로 빼곡히 차고... 벚꽃 아래서 이 기간 동안 하루에 세 번 한다는 のんぼり洗い實演을 보기위해, 찍기위해 다들 멍청히 기다리고 있다.
실제 눈 앞에 있는 벚꽃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보는 것이 아니라, 사진에 그려질 벚꽃을 상상하며 "벚꽃 구경"을 하는 것 같다.

손으로 그린 코이노보리 천에서 물감이 잘 먹으라고 바른 풀을 씻어내는 곳이다.

이런 행사에 빠지지 않고 나타나는 야타이(屋臺, 포장마차)

 긴교스쿠이(금붕어를 종이로 된 둥근 채로 잡아 올리기)

 한번쯤 사먹고 싶은 솜사탕

 타코야키(문어 다리 조각이 들어간 둥근 풀빵)

 통오징어 철판 구이

 바나나쵸코(껍질을 벗긴 바나나에 쵸코렛을 입혔다)

 링고아메(사과를 설탕시럽에 넣었다가 굳힌 것)

 도테니와 쿠시카츠(나고야 음식)

 야키토리(닭꼬치)

 별사탕

 고구마 튀김(큰 컵이 500엔)

오구치쬬(大口町)의 고죠가와

더 이상 이와쿠라시의 고죠가와에서는 기대할  것이 없다는 생각에, 근처 조금 더 북쪽에 있는 이누야마성(犬山城)에 가 보기로 했다. 이 곳도 산 정상에 천수각(天守閣)만 달랑 남은 작은 성이지만, 그 아래로 벚나무가 무지 많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가는 도중에 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벌써 춘곤증인가... 차를 잠시 세우고 잘 데를 찾아보니 41번 국도 안쪽으로 조금 들어간 곳에 역시 벚나무가 보인다.

왠지 이 동네에 의외로 벚나무가 많네... 하며 차에서 내려 보니... 잠은 달아나고, 이제 제대로 "봄"을 찾아온 느낌이 들었다. 간간히 보이는 사람들도 벚꽃 그늘에 가려 조용히 사라지고, 흐르는 물에서 먹이를 찾는 오리들만이 분주한 적막함에 더 이상 벚꽃에 대해 할 말을 잊었다. 가슴 한편이 뭉클해지며 차지 않게 부는 바람에 왠지 눈물이 날 듯 눈이 시립다. 그냥 뭔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고맙다.

이곳도 역시 고죠가와의 제방을 따라 벚나무가 마음껏 자랐다. 고죠가와는 아이치현(愛知縣)의 서북쪽에서 남북으로 흐르는 하천이다. 이 중에서 이누야먀(犬山)시에서 오구치(大口)쬬를 지나 이와쿠라(岩倉)시까지의 약 27Km 길이의 제방을 잘 다듬어 1972년 "비호쿠자연보도(尾北自然步道)"라고 하는 하이킹 코스를 열었다. 제방 양 옆에는 약 4000그루의 벚나무들이 봄이면 흐드러지게 피어 추웠던 겨울의 기억을 떨쳐 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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