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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京都) G 아줌마의 집 이야기

 

어느 여름, N아줌마와 같이 교토(京都)에 살고 있는 아줌마의 친구, G아줌마 집에 놀러 가게 되었다.
평범한 현대식 아파트에 살고 있는 N아줌마가 전부터 나에게 작지만 오래된 옛날 일본식 집을 꼭 보여주고 싶다고 말해왔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G아줌마가 우리를 초대한 것이다.
신오사카역(新大阪驛)에서 JR을 타고 교토역(京都驛)까지 가서, 다시 지하철 카라스마루센(烏丸線)으로 바꿔 타고   키타야마역(北山驛)에서 내리니 아줌마가 마중을 나와있었다.
이전에 같이 교토 중심가의 뒷골목을 돌아다닌 적이 있어서 구면인데도 왠지 말을 걸기가 조심스러웠다. 왜냐하면 G아줌마는 사실 프랑스인이다.

30여년 전 오사카로 유학을 와서 공부하던 중 일본인 남편을 만나서 교토에 정착하고, 나이가 들면서 점점 "교토의 수다쟁이 할머니"(자신이 내게 소개한 바에 의하면)가 되었다.   생김새만 확실한 서양 사람이고, 진한 교토 사투리로 빠르게 말하는 것만 들으면 일본 사람이 다 되었는데... 나와 같은 외국인이면서 긴 세월을 일본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이 왠지 신기하게 느껴졌다.
아니 더욱 신기한 것은 어느 일본인보다도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고, 시대의 변화에 의해 옛 것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너무나 서글프게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나이대의 사람들이라면 어느 나라 사람이건 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G아줌마에게서는 그런 모습이 너무나 강하게 절절이 느껴졌다.


이런 집이 세 채가 나란히 있는 곳. 커다란 나무 옆이 대문이자 현관.

우리에게 보여 준 자신의 집도 그런 생각을 담고 있는 집이었다.
키타야마驛 주위는 얼핏 보기에 현대식의 부유한 주택가인데 아줌마가 살고 있는 집만이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겉보기에는 겨우 방 하나만 있을 것 같은 작은 2층집인데, 안으로 들어가 보니 긴 직사각형의 구조로 1층에는 방 두 개와 부엌, 화장실, 아주 작은 마당이 있고, 2층에는방 두 개와 좁은 베란다가 있다.
지은 지 70년이 넘어서 여기저기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나무로 만든 집이어도   방 내부의 벽은 진흙을 쓰고 흰색 칠을 했는데 삭아서 그런지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이것도 일종의 란마.

그리고 방과 복도 사이, 방과 방 사이의 문 틀 위에 "란마(欄間)"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가 어려운 것인데   일본의 집들은 전반적으로 통풍이 잘 되게 하려고 방과 방 사이의 문(문틀) 위에 그냥 벽을 만들지 않고, 바람 구멍을 만든 것이다. 부유한 집이라면 나무로 조각(투각)한 멋있는 모양의 란마로 장식하지만  아줌마의 집 같은 서민들의 집은 대충 대나무로 해 놓는다고 한다. 바람 구멍이라고 해도 겨울에는 추워서 유리 창문을 해 놓았다.


이것이 정식 란마. 중국의 어느 집 정원을 보는 듯 하다.

현관과 방 사이에 좁은 쪽마루가 있는데, 거기에도 유리창을 해 달았다. 그런데 그 유리가 대단히 특이했다. 이제는 어디에서고 볼 수 없는 70년 전의 수작업(手作業) 유리라는 것이다. 옆에서 보면 굴절이 나타난다.


어렴풋이 표면이 굴절되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깨진 부분을 처리한 곳을 N아줌마가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더욱 재미난 것은 유리가 깨졌을 경우의 처리 방법이다. 요새는 유리가 깨지면 그대로 떼어내고   새 유리로 갈아 낄 수 있을 정도로 유리가 흔하지만,  그 당시에는 귀한 물건이어서 그대로 보존하는 방법을 생각해 냈는데...    얇은 철판을 깨진 틈새로 넣고 약 5mm 간격으로 잘라  유리의 안쪽과 바깥쪽으로 번갈아 접어서  깨진 부분이 흔들리거나 떨어져 나가지 못하도록 고정을 한 것이다.   이런 식의 발상은 처음 보았다.
2층으로 올라가 보니 앞 글에 있는 것처럼 토코노마(床の間)가 있는 방이 있었다. 아줌마는 별로 비싼 물건으로 치장해 놓지 않았지만   그 앞에 앉아서  오른 쪽으로 난 방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며   공부를 하거나 사색에 잠기기에 좋은 곳이었다.

현대식 아파트에 살고있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좀 살기에 여러모로 불편한 곳이긴 하지만 아줌마한테는 긴 세월 정 붙이고 산 곳이라 그런지 우리에게 자랑스럽게 열심히 설명을 해 주었다.
아니 어쩌면 그 집에서 계속 살 수 있으면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줌마는 같은 모양의 집이 세 채가 나란히 있는 데서 그 한 집에 세 들어 살아온 것인데,  지금까지는 땅 주인과 집 주인의 의견이 달라서 재건축이 되지 않았는데   서너 달 전에 갑자기 집을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이런 분위기의 집으로 이사 가려고 여러 군데 돌아다녀 보았지만 이제는 구하기가 어려워 이사가 늦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주인들이 아줌마와 그 옆 집 사람을 내쫓기 위해 여러 가지로 방해공작을 편다고 한다.   이미 이사간 집에 야쿠자의 하수인쯤 되어 보이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들어와서 일본 국기를 내어 걸고,  음악을 크게 틀어 시끄럽게 하거나,   화단의 꽃을 파 버렸다고 한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그 정도가 심해져서  아줌마가 외출한 사이에 집안에 살림살이가 그대로 있는데도 불구하고 문을 막아버렸다고 한다. 너무 화가 나서 여기저기에 고발도 해 보았지만 모두들 나 몰라라...
겉으로는 친절하고 모든 일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나라처럼 일본이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구석도 찾아보면 수두룩하다.
결국 아줌마는 아쉬운 마음으로 이사를 했고, 그 땅에는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섰다고 한다.    (2000.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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