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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

 

정성이 가득 담긴 벼 이야기

 

오사카에서 3년간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어디로 여행을 한 것이나   일본어를 공부한 것보다도 더 잊혀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우연하게 시작된 "벼 키우기".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정말 우리는 어린 아이 하나 키우는 정성으로 6개월간을 보살폈다.
도시에 사는 우리네에게 벼와 쌀에 대한 느낌은 그냥 단순하다.  언제든지 농촌으로 나가 보면 논이 있고,   때가 되면 모내기를 하며,  그러다 또 때가 되면 황금 빛 물결을 이루다가  수확을 하고,   사람들은 돈을 주고 그 쌀을 사서 밥을 해 먹고...

양푼에 빛이 반사되어서 잘 안보이지만 오른편에 흰 싹이 올라와 있고 뿌리도 길게 자라있다.

어릴 때부터 이렇게 간단하게 농사에 대해 들어왔을 뿐 실제로 그 과정을 자세히 지켜본 적은 없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힘든 시간들이고, 땀을 흘린 만큼 보람을 얻는 과정들인데,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벼나 쌀에 대한 소중함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밥을 먹는 행위를 그저 무감각한 일상의 한 행위로 여긴다.
나 역시도 그러해서,  밥을 짓기 위해서 쌀을 씻을 때면   버리는 물에 쌀 몇 톨쯤 흘러 내려가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이런 무감각한 일상의 되풀이 속에서 정말 기적이라고 말하고 싶은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쌀을 씻을 때 사용하는 스테인레스 양푼이 있는데,  크고 작은 것 세 개가 한 셋트이지만 언제나 제일 큰 양푼을 사용하고 작은 것들은 늘 싱크대 속에 넣어 두고 있었다.  큰 양푼으로 쌀을 씻고 난 후에는 양푼에 물기가 조금 있어도 그대로 싱크대 속의 작은 양푼 위에 얹어놓아 두었다. 양푼을 넣어둔 칸은  쌀을 씻을 때 외에는 별로 열어보지 않았는데, 6월 어느 날 작은 양푼을 사용할 일이 있어서 큰 양푼 밑에 있던 것을 꺼내 보니,  이런 놀라운 일이...

보름쯤 지나서 자란 모습.

언제인가 쌀을 씻을 때,  양푼 바깥으로 떨어진 검은 쌀 한 톨이 그대로 하수구로 떠내려가지 않고,  큰 양푼의 밑바닥에 붙어 있다가 싱크대에 넣어 둘 때 작은 양푼으로 떨어진 것이다.  여기까지는 다른 쌀로도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인데, 이 검은 쌀은 현미라서 쌀눈이 그대로 보존된 것으로, 그 이후에 큰 양푼을 싱크대 속에 넣어둘 때마다 조금씩 떨어지는 물을 양분 삼아 싹이 튼 것이다.  그 컴컴한 싱크대 속에서 신선한 공기도 없고, 비옥한 흙도 없는데 아주 우연하게 생명이 자란 것이다.
이 소중하고 신기한 생명을 그냥 버릴 수가 없어서 유리 화병에 흙과 배양토를 넣고 옮겨 심어보았다.   이것이 계속해서 자라 줄 것인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런 바람과 믿음으로 지켜 볼 수밖에...     보름쯤 지나서 제법 잎새도 제대로 올라오고 뿌리도 잘 뻗는 것 같았다.  그 후에는 배양토의 영양이 좋아서 그런 것인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컸다. 매일 그 신기한 모습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하루하루의 내 삶이 즐거웠고 외로움도 느낄 수 없었다.  늘 같은 일만 반복되던 따분함에서  어느 사이엔가 슬며시 빠져 나와, 어떤 새로운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내가 가고 있는 느낌이 든 것이다. 나의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간직한 벼...

휴가를 가기 전 길게 벼잎이 자란 모습

8월이 되어서 휴가를 가려고 하니 조금 난감했다.   누가 우리의 이 벼를 돌보아 줄 수 있는 여건도 안 되는데,    쨍쨍 내려 쬐는 햇빛 아래 그냥 내버려두고 가면 금새  말라 죽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물을 충분히 주고 간다고 해도 워낙이 작은 화병이어서 며칠 씩 버티기도 힘들고... 하는 수 없이 화병 옆에 양동이를 놓고 물이 적셔지도록 양동이와 화병의 안쪽으로 수건을 걸어놓았다.  그렇게 하고도 혹시 물이 마를까 걱정되어서 수건과 양동이를 호일로 감싸놓기까지 하며 제발 잘 버텨주기를 빌었다.
휴가를 갔다 와서 보니 그대로이긴 하지만 조금 기운이 없어 보여서 비료를 주었는데, 그 양이 너무 많아서 인지 잎새들이 누렇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런 안타까운 일이... 휴가 때도 잘 버텨주었는데 지금 와서 죽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흙도 조금 새 흙으로 갈아주고,  매일 몇 번씩 물을 갈아주며  그 상태를 계속 지켜보니 조금씩 원래대로 회복해 갔다.    9월 들어서는, 처음의 가녀린 한 줄기에서 부쩍 자라 화병의 주둥이가 꽉 차있었고,  뿌리도 화병이 터질 것 같게 길게 뻗었다.

9월 들어서 화병 가득 자란 모습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잎새들 사이에서 올라온 한 대공에서 갑자기 벼 알갱이 같은 것이 빠져 나오더니 하얀 꽃을 피웠다.  이게 벼꽃이구나.  우습게도 그 때까지 벼에도 꽃이 있다는 사실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인데... 그렇게 꽃이 피고 난 후 벼가 여물어 갔다.    정말 여물은 벼가 고개를 숙이며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10월 말 어느 일요일, 드디어 첫 수확의 기쁨을 맛보았다.  먼저 여물은 몇 대공을 가위로 잘라서 해가 잘 드는 쪽 벽에 걸어서 말리니   지난 여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흐뭇했다.  오사카는 한국보다 따뜻해서 그런지 벼가 12월이 되어도 계속 여물어 가고 새로운 대공이 올라오기까지 했다.

한 대공에서 빠져 나오는 벼 알갱이

그렇게 조금씩 수확해서  말린 벼의 껍질을 벗길 다른 방법이 없어서  손톱으로 하나씩 벗겨내니 그 속에서 처음과 같은 검은 쌀이 나왔다.    처음의 한 톨에서 최종적으로 약500여 톨의 쌀이 생산된 것이다. 그냥 무시하고  버릴 수도 있었던   그 작은 생명에서 이런 결과를 얻다니...  사람의 생명도 중요하지만  정말 이런 말없는 식물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것을  약 6개월에 걸쳐서 처음으로 절실하게 깨닫게 된 것이다.

하얀 벼 꽃이 피었다

서서히 여물어 가는 모습

벼 말리기

벼 껍질을 벗겨내니 검은 현미가...

맛있는 밥을 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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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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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이 가득 담긴 벼 이야기

 

오사카에서 3년간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어디로 여행을 한 것이나   일본어를 공부한 것보다도 더 잊혀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우연하게 시작된 "벼 키우기".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정말 우리는 어린 아이 하나 키우는 정성으로 6개월간을 보살폈다.
도시에 사는 우리네에게 벼와 쌀에 대한 느낌은 그냥 단순하다.  언제든지 농촌으로 나가 보면 논이 있고,   때가 되면 모내기를 하며,  그러다 또 때가 되면 황금 빛 물결을 이루다가  수확을 하고,   사람들은 돈을 주고 그 쌀을 사서 밥을 해 먹고...

양푼에 빛이 반사되어서 잘 안보이지만 오른편에 흰 싹이 올라와 있고 뿌리도 길게 자라있다.

어릴 때부터 이렇게 간단하게 농사에 대해 들어왔을 뿐 실제로 그 과정을 자세히 지켜본 적은 없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힘든 시간들이고, 땀을 흘린 만큼 보람을 얻는 과정들인데,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벼나 쌀에 대한 소중함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밥을 먹는 행위를 그저 무감각한 일상의 한 행위로 여긴다.
나 역시도 그러해서,  밥을 짓기 위해서 쌀을 씻을 때면   버리는 물에 쌀 몇 톨쯤 흘러 내려가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이런 무감각한 일상의 되풀이 속에서 정말 기적이라고 말하고 싶은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쌀을 씻을 때 사용하는 스테인레스 양푼이 있는데,  크고 작은 것 세 개가 한 셋트이지만 언제나 제일 큰 양푼을 사용하고 작은 것들은 늘 싱크대 속에 넣어 두고 있었다.  큰 양푼으로 쌀을 씻고 난 후에는 양푼에 물기가 조금 있어도 그대로 싱크대 속의 작은 양푼 위에 얹어놓아 두었다. 양푼을 넣어둔 칸은  쌀을 씻을 때 외에는 별로 열어보지 않았는데, 6월 어느 날 작은 양푼을 사용할 일이 있어서 큰 양푼 밑에 있던 것을 꺼내 보니,  이런 놀라운 일이...

보름쯤 지나서 자란 모습.

언제인가 쌀을 씻을 때,  양푼 바깥으로 떨어진 검은 쌀 한 톨이 그대로 하수구로 떠내려가지 않고,  큰 양푼의 밑바닥에 붙어 있다가 싱크대에 넣어 둘 때 작은 양푼으로 떨어진 것이다.  여기까지는 다른 쌀로도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인데, 이 검은 쌀은 현미라서 쌀눈이 그대로 보존된 것으로, 그 이후에 큰 양푼을 싱크대 속에 넣어둘 때마다 조금씩 떨어지는 물을 양분 삼아 싹이 튼 것이다.  그 컴컴한 싱크대 속에서 신선한 공기도 없고, 비옥한 흙도 없는데 아주 우연하게 생명이 자란 것이다.
이 소중하고 신기한 생명을 그냥 버릴 수가 없어서 유리 화병에 흙과 배양토를 넣고 옮겨 심어보았다.   이것이 계속해서 자라 줄 것인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런 바람과 믿음으로 지켜 볼 수밖에...     보름쯤 지나서 제법 잎새도 제대로 올라오고 뿌리도 잘 뻗는 것 같았다.  그 후에는 배양토의 영양이 좋아서 그런 것인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컸다. 매일 그 신기한 모습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하루하루의 내 삶이 즐거웠고 외로움도 느낄 수 없었다.  늘 같은 일만 반복되던 따분함에서  어느 사이엔가 슬며시 빠져 나와, 어떤 새로운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내가 가고 있는 느낌이 든 것이다. 나의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간직한 벼...

휴가를 가기 전 길게 벼잎이 자란 모습

8월이 되어서 휴가를 가려고 하니 조금 난감했다.   누가 우리의 이 벼를 돌보아 줄 수 있는 여건도 안 되는데,    쨍쨍 내려 쬐는 햇빛 아래 그냥 내버려두고 가면 금새  말라 죽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물을 충분히 주고 간다고 해도 워낙이 작은 화병이어서 며칠 씩 버티기도 힘들고... 하는 수 없이 화병 옆에 양동이를 놓고 물이 적셔지도록 양동이와 화병의 안쪽으로 수건을 걸어놓았다.  그렇게 하고도 혹시 물이 마를까 걱정되어서 수건과 양동이를 호일로 감싸놓기까지 하며 제발 잘 버텨주기를 빌었다.
휴가를 갔다 와서 보니 그대로이긴 하지만 조금 기운이 없어 보여서 비료를 주었는데, 그 양이 너무 많아서 인지 잎새들이 누렇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런 안타까운 일이... 휴가 때도 잘 버텨주었는데 지금 와서 죽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흙도 조금 새 흙으로 갈아주고,  매일 몇 번씩 물을 갈아주며  그 상태를 계속 지켜보니 조금씩 원래대로 회복해 갔다.    9월 들어서는, 처음의 가녀린 한 줄기에서 부쩍 자라 화병의 주둥이가 꽉 차있었고,  뿌리도 화병이 터질 것 같게 길게 뻗었다.

9월 들어서 화병 가득 자란 모습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잎새들 사이에서 올라온 한 대공에서 갑자기 벼 알갱이 같은 것이 빠져 나오더니 하얀 꽃을 피웠다.  이게 벼꽃이구나.  우습게도 그 때까지 벼에도 꽃이 있다는 사실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인데... 그렇게 꽃이 피고 난 후 벼가 여물어 갔다.    정말 여물은 벼가 고개를 숙이며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10월 말 어느 일요일, 드디어 첫 수확의 기쁨을 맛보았다.  먼저 여물은 몇 대공을 가위로 잘라서 해가 잘 드는 쪽 벽에 걸어서 말리니   지난 여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흐뭇했다.  오사카는 한국보다 따뜻해서 그런지 벼가 12월이 되어도 계속 여물어 가고 새로운 대공이 올라오기까지 했다.

한 대공에서 빠져 나오는 벼 알갱이

그렇게 조금씩 수확해서  말린 벼의 껍질을 벗길 다른 방법이 없어서  손톱으로 하나씩 벗겨내니 그 속에서 처음과 같은 검은 쌀이 나왔다.    처음의 한 톨에서 최종적으로 약500여 톨의 쌀이 생산된 것이다. 그냥 무시하고  버릴 수도 있었던   그 작은 생명에서 이런 결과를 얻다니...  사람의 생명도 중요하지만  정말 이런 말없는 식물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것을  약 6개월에 걸쳐서 처음으로 절실하게 깨닫게 된 것이다.

하얀 벼 꽃이 피었다

서서히 여물어 가는 모습

벼 말리기

벼 껍질을 벗겨내니 검은 현미가...

맛있는 밥을 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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