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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陶磁器) 그릇 사기

 

지난 5월4일 아침에 TV뉴스를 보니, 나고야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서 도자기를 싸게 파는 행사를 한단다.   싸게 판다는 소리에 귀가 솔깃해서 가볼까 어쩔까 망설이며 하늘을 보니, 꾸물꾸물 비가 올 듯 해서 가기로 결정을 했다.  뉴스에서 그러는데 3일간(2002년 5월3일-6일까지의 황금연휴 기간중) 하는 행사에 약37만명이 모인단다.  그래도 비가 오면 사람들이 별로 없겠지 하는 생각에 가기로 했다.  그러나 그것은 순전히 우리의 착각이었다.

연휴라 신나게(?) 막히는 19번 국도를 따라 겨우 도착한 곳은 "토키미노야키오로시단지(土岐美濃燒おろし團地)"이다. 좀 이름이 긴데, 기후현 토키시(岐阜縣 土岐市)의 북쪽에 도자기 도매 회사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회사 건물들 사이로 난 길 양 옆으로 천막들이 들어서고, 무지하게 많은 그릇들이 진열되어 있다.

 

일본에 처음 왔을 때는 일본 그릇(일본인들은 와숏키라고 한다, 和食器)들이 어딘가 촌스러워 보였다.   물론 내가 서울에서 사용하던 그릇들이 세련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릴 때 본 것은 스테인레스 그릇들이었고, 어느 때는 서양식 접시들, 그리고는 하얀 도자기 그릇, 또는 미국산 깨지지 않는다는 그릇들이 내가 접해본 식기들이다. 하나같이 거의 무늬가 화려하지 않은, 어쩌다 하나 그려있는 단순한 얇은 그릇들이 "나에게 있어서 식기"였다.   그런데 일본의 쇼핑센타에서 파는 그릇들은 어떤 것은 얇으면서도 알록달록 울긋불긋하거나, 흰 색 바탕에 파랗고 초록색으로 이런 저런 그림이 그려있어서 얼핏 보면 정신없어 보이는 것들, 뭐 하여간에 좀 적응이 안되었다.

여기는 주로 꽃꽂이용품을 판다.

그래서 오사카에서 유명한 타치키치(たち吉)라는 그릇회사 (京都燒를 주로 파는데, 알고 보니 어떤 그릇들은 이 미노지역에서 생산한 것도 있었다) 에서 일년에 두 번 세일을 할 때 갔었어도 별로 사지를 않았다.  아예 서양식 하얀 접시를 몇 개 사거나, 그림이 없는 단순한 것을 골랐을 뿐이다.   

그런데 계속 사용하다 보니 서양식 접시들은 처음 보기에는 깔끔하고 좋은데, 쓰면 쓸수록 단조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무늬가 그다지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두툼하고 무겁게 만들어진 접시는 마음에 편하고 바라볼수록 넉넉하였다.  이런 느낌이 일본인들이 말하는 "츠치노누쿠모리(土の溫もり, 흙에서 받는 따뜻한 느낌)"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하고 비싼 서양식 그릇들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나를 곤두세우지 않고 살그머니 쉴 수 있는 편안한 자연의 느낌...

기계로 찍은 것이 아닌 손으로 만든 것들은 좀 비싸다.

이런 느낌을 갖게 되다보니 어디를 가게되면 그 지역에서 생산한 그릇을 기념으로 하나씩 사게 되었다. 적은 돈 들여서 살 수 있는 정도의 작은 접시나 술잔들을 즐기는 맛. 이러한데 미노 행사장에서 그릇들을 싸게 판다고 하니 안 갈 수가 없었다.

꾸물꾸물한 날씨여도 올 사람은 다 온다고... 아줌마 아저씨들이 많이 와 본 경험으로 손에는 두꺼운 면장갑을 끼고 커다란 박스를 실은 끌개를 끌고 여기저기 진열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좀 비싼 그릇들은 깨끗하게 먼지를 닦아서 진열대에 모셔두었지만(?), 하나에 50엔에서 200엔 하는 그릇들은 큰 박스에 담아 바닥에 놓아두니 먼지를 헤치고 보물 찾기(?). 손이 더러워지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열심히 뒤지다 보니 참 그릇들도 많다.

끌개 끌고 두리번 두리번...

이거 다 누가 사는지...  4시간을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며 그릇만 보니 나중에는 눈이 아프다. 별로 사지도 않아지만 그릇 더미에 깔린 느낌이었다.

 

미노(美濃)는 일본의 유명한 도자기 생산지 중의 한 곳으로, 이 부근에서 생산되는 도자기를 흔히 "미노야키(美濃燒き)"라고 한다. "미노(美濃)"라는 말은 기후현의 남동부에 위치한 타지미(多治見), 토키(土岐), 미즈나미(みず浪), 카니(可兒)市 등을 중심으로 한 土岐川 주변지역이며,  미노야키는 미노 지역에서 구운 도자기란 말이다.   그러나 원래 이 지역 도자기의 원조는 서쪽 바로 옆에 위치한 아이치현의 세토시(瀨戶市)이다.  

기계로 찍어도 비품이 아닌 것들.

세토 부근에서는 아즈치모모야마시대(安土桃算時代 1568-1600) 때부터 도기(陶器, 1100-1200도에서 굽는 것) 를 구워 귀족이나 서민들에게 팔아 왔다.  
그런데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7) 중반에 들어서면서부터 귀족들의 그릇수요가 자기 (磁器, 우리나라에서 배운 기술로 1300도 이상에서 굽는 것)를 구울 수 있게된  아리타야키(佐賀縣 有田燒)나 교야키(京都燒)로 바뀌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세토에서는 비싼 도기를 작품처럼 굽는 가마는 줄어들고, 대부분은 서민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그릇들을 많이 굽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세토모노(瀨戶物, 세토에서 만든 물건, 그릇)"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서민용의 값싼 그릇들을 말한다.

여기는 주로 밥그릇.

 물론 다른 지역에서 싸게 만들어진 것도 세토모노라고 불러 마치 값싼 그릇의 대명사처럼 사용되게 되었다.  

미노야키가 세토에서 시작되서 그 옆 지역으로 퍼진 이유는 일설에 의하면, 세토에서 도기를 굽는 집안이 주로 장남에게만 가업을 잇게 하여, 나머지 자식들이 분가를 해서 자신의 도기 굽는 가마(窯)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뭐 어찌 되었건, 미노 지역에서 만드는 그릇들이 현재 일본 식기(食器)시장의 60%를 차지한다고 한다.  따라서 백화점에서 파는 아주 비싼 그릇들(유명 도자기 가마에서 구운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쇼핑센타에서 파는 것들은 거의 이 지역 물건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산 그릇들로 술잔과 술병, 찌개 그릇, 접시.

 

실제 이 행사장에 와서 보니, 다른 곳에서 본 적이 있는 그릇들도  많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런데 좀 기가 막힌 것은, 가끔 동네 쇼핑센타에서 아리타야키(佐賀縣 有田燒)라는 간판을 내걸고 그릇을 할인판매하는 특판매장에서 보던 그릇들도 있다는 것이다.   아리타야키를 몇 개 전시해 놓고, 나머지 대부분은 미노야키로 채워 놓은 후, 왠지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아리타야키라는 팻말을 세우니 사람들이 솔깃해서 들여다 볼 수 밖에.  하여간 사람 속이기는 어디나 마찬가지이다.

 

 

 

오른쪽은 이번에 산 그릇들 중에서 가장 비싼 녹차를 마시는 컵이다.  그리고 왼쪽은 예전에 생긴 술잔이다.  이 미노 지역에서 생산되는 도자기 종류 중에서 시노(志野)라는 것이 있는데, 유약을 표면에 두껍게 발라 흘러내리는 듯 하면서 그대로 굳어 마치 귤 껍질처럼 작은 구멍이 송송 뚫리게 표현한다.  좀 깔끔해 보이지는 않아도 그릇을 만져보면 편안한 느낌이 좋다. 왼쪽은 작아도 유명 작가의 작품이어서 오른쪽의 가격의 열 배 정도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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