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holland_back.gif

Home

여 행

그밖에..

 

와시츠(和室)와 토코노마(床間)

 

일본에서 3년을 살았어도   일본의 옛 가옥 양식으로 지은 일반 주택은 별로 가보지 못했다.  대부분 TV나 잡지의  사진을 통해서   조금씩 알게 된 지식만 가지고 있을 뿐.
일본도 아파트 천국으로   내부를 서양식 인테리어로 치장하는데,    요새 짓는 아파트에는 큰 평수라면 방 하나 정도는 타타미(疊, 풀을 엮어서 만든 바닥 깔개)를 깐 소위
"와시츠(和室, 일본 전통 형식의 방)"를 거실 바로 옆에 둔다. 그러나 작은 평수의 아파트라면 편리함을 내세워 마루방이나 카펫트를 깐 방만 있다. 아는 일본 사람의 집을 찾아가 보아도 대부분 그러했다.그런데 어느 여름, N아줌마와 함께   교토(京都)에 사는 아줌마의 친구 집에 구경을 가게 되었다.     

겉보기에는 무척이나 작게 보였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긴 직사각형의 집으로 1층에는 방 두 개와 부엌, 화장실이 있고, 2층에 방 두 개만 있는 구조였다. 지은 지 70년이 넘은 집이라 여기저기 금도 많이 갔고, 타타미도 새로 갈지 않고 몇 년이고 그냥 사용해서 지푸라기가 나올 정도로 낡아있었다. 얼핏 생각하면 뭐 이런 집을 보자고 여기까지 왔을까 할 수 있지만, 구석구석 살펴보니 흥미로운 점이 많았다.
그 중의 하나가
"토코노마(床の間)"였다.  토코노마는 와시츠(和室)의 한 부분에 만든 조금 특별한 곳이다.   예전의 일본 가옥의 모든 방은 마루바닥이었고, 잠자는 곳에만 타타미를 깔아서 침구(寢具)로 사용하였다. 그러던 것이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1336-1573)에 들어서면서 소위 서재(書齋) 겸 방인 "쇼인(書院)"만들면서 방 전체에 타타미를 깔고, 토코노마를 갖추게 된 것이다. 깨달음을 얻기 위한 공부방인 쇼인의 한편 벽에는  神, 부처의 그림이나, 경전을 적은 카케지쿠(掛軸, 족자)를 걸고 약간의 공양 음식도 차려놓았다고 한다.  이런 특별한 장소를 방의 다른 부분과는 다르게 장식하게 되었다.

교토의 어느 집안에 있는 토코노마. 별로 비싼 물건으로 가꾸어 놓지 않았다. 밤색의 나무 기둥이 토코바시라.

방바닥에서 조금 올라간 단을 만들어 타타미를 깔고, 좋은 나무로 장식적인 치장을 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공부와 깨달음을 얻기 위한 곳에서 무사나 귀족의 권위를 상징하고, 비싼 그림이나 도자기를 놓아두고 감상하며 마음을 쉬는 곳으로 그 의미가 바뀌게 되었다. 그렇지만 처음의 의미가 아직도 남아있어서 함부로 토코노마에 올라가서는 안된다고 한다.

토코노마의 종류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혼도코(本床)와 랴쿠시키도코(略式床)이다.
혼도코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들어갈 네 가지의 조건이 있다. 토코바시라(床柱, 토코노마에 특별히 사용하는 나무 기둥), 토코카마치(床*, 방바닥에서 조금 올라간 단에 쓰이는 나무), 토코다타미(床疊, 단 위에 까는 타타미), 오토시가케(落掛, 토코노마 위의 천장 부근의 벽을 지탱하는 나무)가 반드시 들어간다. 혼도코(本床)라고 해도 그 재료가 되는 나무의 종류와 형식에 따라 "眞, 行, 草" 세 가지로 나뉜다.
랴쿠시키도코에는 이 네 가지 조건 중에서 무언가 생략된 것이 있다.

혼도코(本床) 중에서 "眞" 형식의 토코노마.

교토의 그 집에 있는 토코노마도 위의 형식을 그대로 갖추고 있는데, 토코바시라(床柱)가 너무나 특이했다. 나무의 표면은 전체적으로 반지르르하지만 패이고 올라온 부분이 물결처럼 다듬어져 있었다. 너무 신기해서 계속 만지고 있으니까 N아줌마 말이, 이 집이 가까운 시일 내에 헐리게 되는데 이 기둥을 사러 사람들이 온다고 한다. 70년의 세월이 녹아 든 고풍스러운 기둥을 조금 손질해서 다른 집에 판다는 것이다. 새로 만든 기둥보다 훨씬 기품이 있어서 집 전체의 분위기를 더욱 좋게 한다고...

이런 이야기를 듣고 다시 한 번 집안을 둘러보니 우리와는 다르게 방안에 이렇게 자연스러운 느낌의 나무를 많이 사용해서 집을 지은 것을 알게 되었다.  바닥은 풀을 엮어서 만든 타타미를 깔고,   벽면은 진흙 벽을 와시(和紙, 우리의 韓紙)로  도배를 하고, 토코노마에는 이런 특별한 나무로 장식을 해서 전체적으로 인위적이긴 하지만,   전혀 인위적으로 보이지 않는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물론 살기에는 조금 불편하다. 특히 한국인에게는. 일단 난방 시설이 없으니 추운 겨울에 찬 바닥에 누워야 한다는 것이 고역이다. 그리고 풀로 만든 타타미라서 벌레들이 생긴다. 그렇지만 일본인은 이렇게 토코노마가 있는 타타미 방이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고향"과도 같다고 여긴다.   그래서 조금 여유가 있는 집이라면 토코노마(床の間)가 있는 와시츠(和室)를 일부러 만들어 손님들에게 자랑을 하기도 한다.

일본 가옥을 지으면서 곳곳에 이렇게 잘 다듬어진 나무로 장식을 하는데 그런 나무를 "메이보쿠(銘木)"라고 한다. 아주 오래 전 나라시대(奈良時代, 710-784)에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나무를 다듬어 쓰는 방법이 전해졌다고 한다. 그 기술이 그대로 전수되어 하나의 독특한 일본 문화를 이룬 것이다. 실제 언젠가 TV에서 토코바시라(床柱)를 만드는 것을 보았는데 여간 대단한 정성이 아니었다.   스기(杉木, 삼나무)의 겉껍질을 살짝 벗겨서 나무 그 자체의 흰색이 나올 때까지 맨손으로 모래를 가지고 계속 비비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조금 우둘투둘한 면 자체는 남아있어도 반지르르하게 광택을 가진다. 이런 정성으로 만드는 기둥이니 그 가격도 만만치가 않다. 물론 저렴한 가격에 살 수도 있으나 정성이 들어간 만큼 가격도 비싸진다고 봐야 한다.
지금 교토의 그 집은 헐려서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마 그 기둥만은 다른 어느 집의 토코노마(床の間)에서 우아한 자태로 빛나고 있을 것이다.  (2000. 11.9)

삼나무를 다듬은 것이다.

 

  Home   여 행   그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