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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나고야 상인들의 거리 시케미찌(四間道)

 

 

나고야성으로 연결되는 호리카와 운하의 서편에 자리잡은 근세 상인의 거리 시케미찌(四間道).   

우리로 치면 "한옥마을"쯤 되는 이곳은 벽에 하얀칠을 한 창고건물이 신기해서 관심을 갖게 된 지역이다.   회사 근처에서 가깝기 때문에  날씨가 좋으면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산보겸 한 바퀴 둘러보기도 하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내친김에 사진도 찍고 자료도 찾아보고....
이 시케미찌는 시라카베(白壁, 主, ?木), 아리마츠(有松), 나카오타이(中小田井)와 함께 나고야시에서 정한 4개의 전통거리보전지구(町竝み保存地區) 중 하나이다.   

나고야에 성시(城下町; 죠카마치)가 생기기 전까지는,  오와리(尾張: 나고야를 포함한 아이치현 부근의 옛이름)의 중심지는 오다노부나(織田信長)의 본거지인 키요스(淸洲)였다.  그러나 전국시대를 끝내고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쓰(德川家康)는 오와리 지역을 다스리기 위하여 1610년 새로이 나고야성을 지으면서,  나고야 성시도 동시에 건설하였다.  그리고 새로 건설한 성시에는 키요스(淸洲) 성시에 있던 마을사람들을 통째로 이주시켰다 [이를 키요스고시(淸洲越)라고한다.].  

성시의 호리카와(堀川) 강변에는 아츠다(熱田)의 항구와 나고야성을 잇는 수운을 이용하는 상가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상가의 현관은 물자를 싣고내리는 호리카와 운하쪽으로 냈고,  상가 뒷편에는 창고들이 들어섰다. 이후  이 마을은 호리카와의 수운을 이용해  미곡, 소금, 된장, 술, 연료 등을 성시에 공급하거나  술, 된장 등에 가공하는 상가가 늘어선 상업지구로 번영해 왔다. 


 시케미찌의 서편에는 예전 상인들의 상가가 늘어서 있다.

상가로 번성한 이 거리는 1700년 1,649채의 집과 15개의 사원이 불에 타 버리는 대화재가 발생하였다.   이후, 오와리한(尾張藩; 이전 나고야지역의 지방행정부)의 4대 영주(藩主)  德川吉通(도쿠카와 요시미치)는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 줄지어 늘어선 창고 뒷길을 1~2間을 깍아 4간(약 7m)으로 확장하여,  도로를 넓혔다.   이렇게 하여 지금의 시케미찌(四間道)로 불리우게 된 길이 생겨나게 되었다.

1740년경에는 시케미찌의 동측에는 창고가, 서측에는 상가가 줄지어 늘어선 거리가 완성되었으며,  도로의 남북으로는 1천개를 헤아릴 정도의 창고들이 늘어서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시케미찌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으로 넓은 도로로 사람 말 짐수레의 왕래로 활기에 넘쳐 있었지만, 지금은 보도도 없는 좁은 골목길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호리카와로부터 짐을 부린 돌층계(石疊)나 지붕신(屋根神樣) 등  서민마을의 정서가 지금도 도심에 남아있는 지역으로,  나고야시에서는 1986년,  이곳을  "거리보존지구(町竝み保存地區)"으로 지정하였다. 


 
시케미찌의 동쪽에 늘어선 창고들(塗籠造りの土藏)

 

 화분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예전 상가건물앞

돌 축대위의 창고들.  축대는 돌 모양을 살려 정교하게 쌓았다.

새로 지은 창고사이의 예전 창고

지금은 카페로 바뀐 창고건물

지붕신사(屋根神; 야네가미사마)

시케미찌에서 볼 수 있는 지붕신사(屋根神; 지붕 한편에 세워진 조그만 사당)은 역병, 화재 등의 공포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는 서민 신앙으로써 지금도 살아 있는 신앙이다.  지붕신사의 기원은 확실치 않지만,  토지의 여유가 없는 곳에서 궁리 끝에 생겨났을 것으로 생각되고 있으며, 나고야지역(일본 중부지역)의 독특한 신앙 형태라고 한다.  이러한 지붕신사는 시케미찌에 한정되지 않고, 나고야 지역의 낡은 민가의 처마끝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는 시타마치(下町:서민의 마을) 정서를 나타내 주는 풍경이다.   


예전 상가건물 지붕위에 세워진 지붕신

 

 


어느 집 지붕위에 있었을 屋根神, 지금은 다리옆 주차장 모퉁이로 옮겨져 쓰러질 듯 서있다.


전에는 창고가 있었을 자리들이 공터나 주차장으로 바뀌었다.


길 위에 박아놓은 타일로 만들어진 관광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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