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holland_back.gif

Home

여 행

그밖에..

 

N 아줌마 이야기

 


사진 동호회의 사람들과..

내가  3년간의 일본 생활에서  N 아줌마를 만나지 않았다면 무척이나 외롭고 긴 지루한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처음엔 우연히 시작되는데,   아무도 그 만남의 미래를 모르기에 대충 지나쳐 버리기도 하고  그 '처음'의 소중함을 일부러 무시하기도 한다.  나 역시 아줌마를 처음 만났을 때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자원봉사자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뿐.

1996년 10월부터 오사카(정확히는 오사카市 북쪽에 있는 스이타市)에서 살면서 일본어 공부를 두 곳에서 하게 되었다. 월,수요일은 미노市(箕面市), 화,목요일은 토요나카市(豊中市)에서.     

미노시에서는 공부 시간이 끝나면 다들 재빨리 집으로 돌아가기에 바빠서, 같은 반 학생이나 선생님과 같은 자원봉사자들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런데 토요나카시에서는 토요나카국제교류협회의 단독 건물에서 공부를 하는데 공부가 끝나면 재빨리 돌아가는 사람도 있으나,  2층의 사무실과 같이 사용하는 넓은 공간에 모여 커피 한 잔을 마시기도 하였다.  

한 쪽 편은 사무실이고 나머지 공간은 자료실과 회의실, 그리고 무엇인가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책상을 놓아둔 곳이다.  나처럼 일본어를 배우는 외국인들도 있지만 이 협회에 소속된 작은 봉사단체에서 일하는 일본인들도 여기서 자신들의 일을 보는데...  

어느 때인가 아줌마가 내게 먼저 말을 걸고 자신의 이름과 집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내게도 전화번호를 받아갔다. 이때만 해도 일본어도 제대로 모르는 나에게 왜 자신을 먼저 소개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이후로는 만나면 무엇인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도 일본어가 안되니 인사 정도만 하고 지나치게 되었다. 그러다 여기 일본어교실은 1997년4월까지만 다니고 미노市에서만 공부를 하였다.

일본에 온지 1년이 지나고 일본어에 대해서 조금은 알게 되었을 무렵, 1997년 12월 초순의 어느 날, 아줌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토요나카市의 어느 소학교(초등학교)에서 1998년 1월초, 1,2학년을 대상으로 외국인 강사를 초빙해서 그 나라의 음식을 만들며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마련하는데 나보고 해보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이런 뜻밖의 제안을 받다니 너무 기쁘면서도 걱정도 컸다. 내 일본어 실력으로 해낼 수 있을까...  나중에 보니 아줌마가 여러 명의 한국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는데 다들 이런 저런 이유로 거절을 해서 결국 나한테까지 차례가 온 것이었다. 어찌 되었건 나는 열심히 준비를 하였고, 당일에도 다른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가며 겨우 해냈다.(사례비로 1만엔도 받았다. 이런 큰돈을 받을 자격이 있나하며...)   

나의 일본어 실력이 빼어나지 못해서, 아마 그 학교의 선생님이나 나를 도와준 자원봉사자가 도리어 무척이나 당황했을 터이지만, 나는 여유있게 즐기며 아이들하고도 장난치며 재미있게 보냈다.  다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도 왠지 기쁜 마음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이 한 번의 기회로 그 동안 외로웠던 일본 생활이 싹 가시며 앞으로 무언가 새로운 생활이 시작될 것 같았다.

그래도 더 이상 토요나카센타(국제교류협회)에는 나가지 않아서 아줌마를 만날 수 없었다.  그저 미노시의 일본어 교실 사람들과 어울려 지낼 뿐. 그러던 어느 날, 1998년 5월초, 아줌마에게서 편지가 왔다. 1월초에 소학교에서 찍은 사진과 더불어 시간이 나면 한 번 센타에 나오지 않겠냐고...   

늦게나마 사진까지 챙겨 보내주시니 왠지 미안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그래서 한 번 아무 생각 없이 가 보았다.  아줌마도 나를 보고 진짜로 왔기 때문에 조금은 놀라며, 자신이 가입해 있는 사진 동호회에 들지 않겠냐고 제의를 하였다.  두 사람 사이에 개인적으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무엇인가 공통점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그 즈음에 나 역시 무언가 신기하고 처음 보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찍어대는 취미(?)가 있어서  조금은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입한 곳은 토요나카市 千里中央 公民館(지역 복지 회관)내의 'FEB'98'라는 여성들만의 사진 동호회였다. 다들 평범한 아줌마들로 그냥 자신이 카메라를 들고 무엇인가를 찍을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즐거운 상태로 전혀 부담 없이 같이 즐길 수 있었다.

또한 아줌마는 자신이 市의 보조를 받아 주관하는 작은 모임, '유유'(ゆうゆう)에도 내가 참석하기를 바랬다. 아줌마 자신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내게 일본인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내가 교과서적인 일본어가 아니라 실제 회화를 배우며, 일본 사람들이 살아가는 솔직한 모습들을 보기를 원해서였다.

두 모임을 아줌마와 함께 나가 다른 아줌마들과도 사귀며,  또 아줌마 집에서 같이 음식을 해 먹으며,  몇 시간씩 수다를 떨며 일본 사회에 대해 모르던 것들을 배울 수 있었고, 그들 속으로 조금씩 들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일본어도 잘 모르고 제대로 만나는 친구가 없으면 그 사회에 소속되어 있어도 겉돌다가 귀국하는 경우가 많다.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물건사기에 급급하고... 그러나 물건을 사러 돌아다닐 정도의 열정이 있으면 일본인들과 속마음을 드러내며 이야기할 용기도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이라는 사회 속에 사는 일본인이나 외국인이나 다 같이 외롭고 누군가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한다. 누가 먼저 손을 내밀고, 어떻게 그 손을 잡아당기느냐는 것에 따라 미래가 바뀌는 것이 아닐까.  (2000. 9.15)

 

  Home   여 행   그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