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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들 보셨나요?

 

3년간 살면서 바뀐 나의 모습, 거리나 전철에서 스쳐가며 보았던 사람들,  TV프로그램에 나온 사람들,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 물론 나의 경험이 한정된 것이라 해도  그들을 통해서 많은 선입관이 깨져 나갔고  내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가를 알게 되었다.

1996년9월28일 간사이공항(關西空港)에 도착한 나의 모습은 새로 산 깨끗한 정장에 폼 나는 핸드백을 들고 머리에는 무스를 바르고... 나로서는 소위 선진국인 일본에 와서 구질구질하게 보인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이었다. 물론 회사 사람이 마중을 나오기에 더욱 신경을 썼지만...   그리고 간사이공항의 깔끔함에 다소 놀라며 이것이 일본이구나 라는 생각에 바짝 긴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왠 일? 차를 타고 오사카 시내로 들어가면서 보이는 거리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들이 간사이공항의 분위기하고는 정반대였다.  건물들도 오래 전에 지은 것으로 지저분하고 사람들의 옷차림은 그저 수수했다.   '멋있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옷차림을 한 사람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여기가 도대체 일본이 맞나? 우리나라에서 보면 무슨 옷 디자인이 일본에서 왔다며 일본이 대단한 패션의 리더라고 부러운 듯이 쳐다보았는데...

차에서 내려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니  오히려 그들이 나를 동물원 원숭이 쳐다보듯 하니...   결국 나의 차림새가 '방금 외국에서 도착한 사람이요'라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간사이공항에 몇 번 갔을 때, 세관 검사대를 통과해서 나오는 사람들이 옷차림새만으로도 금방 한국에서 온 사람인지 다른 나라 사람인지 구별이 될 정도로 폼 나는 옷으로 신경들을 많이 썼다고 느껴졌다. 아마도 나와 똑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한 판에 일본에 대한 생각이 깨진 처음 얼마간 나는 외출할 때면 어떻게 옷을 입어야할까 조금 망설여졌지만 그것도 잠시...   아는 사람도 없는 이곳에서 체면치레할 일도 없으니 자연히 옷차림에 대한 긴장감이 풀어지게 되었다. 나갈 적마다 새 옷을 꺼내 입기가 싫어서 늘 똑같은 옷으로 한 철을 보내기도...   

이러다가 결정적으로 새 옷에 대해 집착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인가 하고 뒷통수를 맞은 듯이 느낀 적이 있었다. 일본어를 공부하러 가는 길에 국립순환기병원이 있는데,    豊中市 千里中央驛에서 버스를 탄 노인들이 대부분 여기서 내린다.   어느 날 앞문 근처(버스를 뒷문으로 타고 앞문으로 내리면서 돈을 낸다)에 서 있었는데    나보다도 작은 어떤 할머니가 내 앞에서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무심코 할머니의 행색을 보고  머리가 얻어맞은 듯이 디잉.....   흰색과 회색이 섞인 머리는 깔끔하게 빗어서 올리고 블라우스와 치마를 입고 손에는 깨끗한 그러나 별로 비싸 보이지 않는 천장갑을 끼었는데...  여기까지는 뭐 그런대로 깨끗한 할머니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겉에 입고 있는 옅은 베이지 색의 일자형 트렌치코트를 보니,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칼라의 접혀진 부분을 보니 몇 십 년은 입었던 것 같은...밴질밴질 닳아서 천이 부슬부슬해진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세탁은 깨끗하게 해서 전혀 검은 때가 묻어있지도 않고 옷 전체가 긴 시간 속에 어떠한 움직임도, 어떠한 혼란도 없이 그대로 낡아진 상태 같았다. 그 할머니가 가난해서 새 옷을 못 샀던 것일 수도 있고, 부자여도 자기 몸에 딱 맞는 이 옷에 애착을 느껴서 버리지 못하고 계속 입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른들이 하는 말로 늙을 수록 옷을 잘 입어야 한다고 한다.   그 말은 백화점에서 비싼 옷을 사 입어야 되는 것이라고들 느낀다고 생각하는데, 이 할머니를 보면 그런 생각이 얼마나 우스운 것인지...    오래된 옷이라도 단아하고 깔끔하게 입는다면  그 긴 시간의 지혜의 연륜이 그대로 자태에서 배어 나오기에   추하다거나 구질구질하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든다.(시간이 지나며 전철 속에서도 가끔 몇 십 년은 사용한 듯한 서류가방을 든 아저씨들을 보았다.   모서리는 다 낡아있고 손잡이 부분은 몇 번이고 손질한 자국이 있는... 돈이 없어 보이지는 않는데...)

도리어 몸에도 어울리지 않는 유행을 따르는 비싼 옷을 사 입고 자랑할 수록 '진짜自身'을 가다듬는 노력을 하지 않으며    자기에게서 점점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내가 다니던 일본어 교실의 선생님들 옷차림도 언제나 수수했다.    선생님으로서 학생에 대한 예의를 차릴 정도로만 치장을 하고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만 신경을 쓰는 모습들이었다. 일본어 교실에서, 일본인 선생님들은 하나라도 더 가르치는 행위와 마음 그 자체에만 집중하고,  일본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은 열심히 하려는 노력과 마음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 이외의 것은 너무 지나치면 일본인들에게 흉이 되기도 하였다.   

다른 지역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는 어떤 아줌마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언젠가 그 지역에 우리나라의 어느 회사 주재원들이 단체로 같이 살 때 일본어 공부도 단체로 하게 되었는데 맨 위 상사의 부인쯤 되는 사람이 언제나 화려한 옷과 짙은 화장, 그리고 온갖 액서서리를 하고 나와서  왜 그러냐고 물어 보았더니 자신은 '상사의 부인'이기에 '체면'이 중요하다고...여기까지 들으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일본인이 흉 비슷하게 이야기한 이유는 그렇게 겉치장에 신경을 썼으면 일본어 공부도 열심히 하면 좋은데 늘 게으름을 피우더라는 것이다.

자원봉사 선생님들의 보람이란 자신의 귀중한 시간을 들여서 가르치는 만큼   학생들의 성실함(빼어난 일본어 실력 향상 이전에)을 원하는 것이다. 일본인들의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 깔린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달리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저런 경험을 하면서 외적 치장보다는 내적인 성실함을 가진 외국인이 그들 사회에서 존경까지는 안가더라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일본인들 중에도 겉치레를 더욱 신경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과만 계속 만난다면 겉으로 별 문제는 없지만 돌아서면 서로의 태도에 대해서 입을 삐죽인다. 겉도는 만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 것도 모르는 외국에서 살아가야 할 외국인이(급한 쪽은 자신이다)  자신의 체면이나 겉치레의 허울을 과감히 벗어버리고 솔직한 모습으로 그들에게 다가가면 그들 중에서도 솔직하며 진심으로 대화가 가능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일본어를 잘 못해도 교분이 쌓이면서 외국에 대한 긴장감도 풀어지고 하나씩 하나씩 자신의 여러 편견이나 선입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일본인', '한국인'이라는 틀이 깨지고  '그냥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만남이 된다.

 

그래도 일본에 온지 얼마 안 되는 외국인의 눈에는 이상하게 화장하고 머리를 물들인 젊은이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래서 일본애들은 다 이런가 보다 하고 느끼는데...    

언젠가 어느 TV프로에서 어떤 주제를 놓고 두 그룹으로 나뉘어 인터뷰를 해서 결론을 내리는데,   사실 이미 결론은 나와 있었다. 내용이 '새우를 많이 먹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라는 것으로 후리타(フリ-タ,free arbeiter)와   코갸르(コ-ギャル,현대의 여자고교생으로  특히 머리를 물들이고,   교복 치마는 엄청 짧게 줄이고, loose socks를 신은 학생)의 한 그룹과   東京大에 다니며 식당에서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의 그룹에게 물어보았다.

새우를 좋아하냐고. 예상대로 동경대생들이 많이 먹는다고 하였다.  

이런 방송의 이면에는 머리 좋고, 일류 대학을 나온 사람이 최고며 일본을 이끌어간다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렇게 방송을 이끌어 나가는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한 가지 인정했던 것이 있다. 후리타와 코갸르의 얼굴에(물론 신경써서 진한 화장도 했지만)는 생기가 없고 눈이 풀어져 있었다.

그 반면 동경대생들은 눈이 반짝반짝거리며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가...

어쩌면 동경대생중에도 겉치레로 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방송의 위력이란 정말 대단하다. 한 사회의 이미지를 어떤 방향으로도 끌고 갈 수 있는 힘이 있으니...   자기 하고 싶은 대로 겉치장도 제대로 못하고 산다고 한국 사람들은 불만일지 모르지만 그 사회가 그런걸 어떻게 하나...

내가 살던 지역에서는 화장을 짙게 하고 나가면 밤에 일하는 여성이라는 오인을 받기 쉽다.   그들의 화장법은 '한 듯 안한 듯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특히 처음 이사온 주부가 짙은 화장을 하면 서로 알기 전이므로 前職을 의심받는다.   무슨 패션 잡지나 연예인들의 의상이나 화장법은 실제 살아가는 사람들과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의상의 경우는 그래도 유행이 있지만...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유행이 대개 일본에서 오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다 그렇다고, 또 엄청 개방적인 사회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살아보니 그리 만만한 사회가, 사람들이 아니다.  (2000. 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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