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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 굽던 마을    도코나메(常滑) 2

  

나고야(名古屋)시가 속해있는 아이치(愛知)현 앞바다인 이세(伊勢)만에는 남쪽으로 삐죽내려온 치타(知多)반도가 있다.  이 치타반도의 중간쯤에 옛날부터 도기의 생산지로 유명한 常滑(도코나메)시가 있다.   일본에는 備前(비젠), 信樂(시가라키), 丹波(탄바), 瀨戶(세토), 越前(에츠젠)과 常滑(도코나메)라는 오래된 도기 산지가 있었다.   이를 “日本六古窯”라고 부르는데, 이중 도코나메는 12세기말부터 이미 도기의 산지로 성립된 지역으로  6개의 도기 생산지중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곳이었다고 한다.   

도코나메는 해변가에 위치해 있어 여기서 생산된 도기가 해상운송을 통해 일본 전국으로 팔려나갔다.  도코나메의 도기는 “山土”라고 불리는 점토를 사용해 만들어졌고, 연료로 사용된 장작의 재가 표면에 녹아 붙어 짙은 녹색의 광택을 띄고 있었는데,  특히 12세기에서 13세기에 만들어진 대형 옹기나 三筋壺(산산코)라고 불리운 소형 항아리는 도코나메를 대표하는 제품으로 일본 전국의 종교유적에서 출토되고 있다고 한다.   가마쿠라(鎌倉)시대부터 무로마치(室町)시대(13세기~15세기)에 걸쳐 도코나메는 최전성기를 맞이했다.   이 시기에는, 주변의 猿投(사나게)窯나 渥美(아츠미)窯가 쇠퇴하고 常滑(도코나메)窯가 현저하게 발달한 시기로  치타 반도에는 구릉지의 경사면을 이용해 쌓아 올려진 수천기의 가마가 있었다고 한다.  

도코나메는 크고 튼튼한 항아리나 옹기 등 실용적인 생활용기 생산지로써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도코나메와 유사하게 중세시대부터 도자기 산지로써 발전해 온 備前燒, 丹波燒, 信樂燒 등의 도자기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차도구(茶道에서 사용되는 찻잔, 주전자)로의 생산전환이 늦어졌다.  이때문에 도코나메의 도자기는 고대부터 전해져온 일본 조형의 전통을 에도(江戶)시대(17세기~19세기초)에 이르기까지 유지해왔기 때문에 현대 일본도예에 강한 영향을 미친 반면 근세의 다양한 도예활동의 전개가 늦어졌다. 

 

도코나베의 대표적인 풍경의 하나인 벽돌 굴뚝.  높은 것은 25 m, 낮은 것은 13 m 정도이다.  사진의 굴뚝은 잘려져 있는데, 지진이나 태풍에 무너질까봐 미리 잘라놓은 것이다.  

도코나메에서는 토관, 옹기, 항아리 등 비교적 큰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기에,  가마가 매우 컷고 이에 따라 이러한 형태의 커다란 굴뚝이 생겨나게 되었다고한다.  최전성기에는 이러한 벽돌 굴뚝이 300~400개나 있었다고 한다.  1950년대에는 매일 수많은 굴뚝에서 새까만 연기가 뿜어져 올라와 햇빛을 가릴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가마에 쓰이는 연료는, 석탄에서 중유로, 그리고 가스로 변해갔다.  가스 가마로 바뀌자  큰 굴뚝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게 되었고, 낡아서 무너질 위험이 있는 벽돌 굴뚝은 차례차례로 해체되어 갔다.  현재는 90개 정도 남아 있다고 하는데,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은 50~60개 정도라고 한다.  


공장은 없어지고 굴뚝만 남아있다.


이동네 담배자판기


뒷골목 여기저기 공방에서는 작품들은 전시 판매한다.


허름한 전시장. 사가는 사람이 있을까?

버려진 불량품 도기 - 작가가 쌓아 놓았나 보다


뒷골목 도자기 가게


커다란 개구리 항아리


창가를 장식한 너구리

도코나메에서 공예품이 만들어지게 된 것은, 에도시대의 후반(19세기)부터이다.   이 시대가 되자 名工이라고 불리우는 장인들이 나타나게 되고, 도예가 새로운 형태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식 자기인 朱泥燒(슈데야키)라는 茶器의 생산은 명치시대 초기,  중국인 장인의 기술지도에 힘입어 크게 발전하면서 도코나메의 대표적인 제품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전반에 걸쳐, 도코나메의 도자기 생산은 양산체제가 확립되면서 본격적인 도자기 생산에 접어들게 되었다.  토관·타일·위생도기·화분 등의 생산이 본격화 되어  당시 帝國호텔의 외장재로 도코나메의 타일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도예분야에서 도코나메의 현대 도예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72년 프랑스의 바로리스로 개최된  “국제도예전”에 20명의 도코나메 도예작가가 명예 최고대상을 받았을 때로부터이다.   이를 계기로, 도코나메의 도예는, 전통공예 작가와 수공예품 작가가 융합하면서 새로운 도예가 활발히 전개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타일, 변기 등 건축용 도자기를 비롯하여, 식기, 꽃병 장식물로부터 도예 작가의 예술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도자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한편,  이지역의 도자기산업을 계승발전시켜 현대적인 세라믹 산업으로 성공한 기업으로는 자동차 엔진 플러그를 만드는 日本特殊陶業과 전력용 애자를 만드는 日本碍子가 있다.  그리고 위생도기로 우리나라에 잘 알려진 TOTO에 이어  2번째 회사인 INAX사에서 세운 세계타일전시장이 이곳 도코나메에 있다.


마을입구에서 행사주최측(마을 청년회)에게서 받은 기념품
朱泥燒(슈데야키) - 뭐에 쓰는 물건인고?  이쑤시개 통인가?


다기(茶器) - 붉은 것이 슈데야키                                         


어느집 담벼락을 장식한 도자기 조각품.  동물과 물고기


빈터에는 억새가 자라고


커다란 공장건물은 이제는 도예작가의 공방으로 바뀌었다.


눌러붙은 유약으로 번쩍이는 가마 내부는 작품전시장


생산된 세면대가 잔뜩 쌓여있다.


더 이상 쓰지않는 변소옆에 붙어있는 세면대

 
겨울날 다시한번 찾아갔다.   잔설이 남아있는 공장지붕 뒤편에는 벽돌굴뚝이 여기저기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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