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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산(富士山)에 오르다 (1)

 

일본에서 제일 높은 산, 표고 3776m의 후지산(富士山)...  언젠가 TV의 한 프로에서 우체국 직원들의 일과 생활에 대해 소개를 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후지산 정상에서 근무하는 우체국 직원들이었다. 어! 후지산에도 우체국이 있다니... 직원들이야 힘들겠지만 누가 고안해냈는지 참 칭찬 받을 만하다. 이들 덕분에 등산객들이 일본에서 가장 높은 산 위까지 열심히 올라가서, 아는 사람들에게 기념 엽서를 보낼 수 있다니... 다들 보니 우체국 앞에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며 들뜬 표정들... 이 것을 위해 올라온 것 같다. 이런 장면이 무척이나 신기했는지 후지산 이야기만 나오면 꼭 기억이 났다. 그리고 어느 새 나도 한 번 올라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누군가는 '그저 산이 거기 있어서 오른다'라고 했는데, 나는 좀 우습게도 '우체국이 거기 있어서 오른다'라고나 할까.

생각이 이럴 뿐, 막상 가려고 하니 쉽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동네 뒷산도 안 가본 내가 그런 높은 곳에 갈 수 있을런지... 예전에 사 둔 여행 안내책, "루루부 정보판 후지산(るるぶ情報版 富士山)"을 읽어보니 장난이 아니다. 책에는, 가져갈 짐들이며 어떻게 올라가야 몸이 표고차를 견디는 지에 대해, 그리고 등산로를 어떤 쪽으로 택해야 하는지 등... 자세히 잘 쓰여있어서 더욱 걱정이 앞섰다.

후지산은 북쪽으로는 야마나시현(山梨縣)으로 반, 남쪽으로는 시즈오카현(靜岡縣)으로 반, 이렇게 걸쳐있다. 그리고 정식으로는 후지하코네이즈국립공원(富士箱根伊豆國立公園)의 일부이다. 그리고 주위의 다른 자잘한 산(그래도 표고가 1,500m는 넘는다)들을 제치고 불뚝 솟아있는 후지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정해진 때와 등산로를 이용해야 한다.

여름인 7월1일~ 8월31일까지가 등산하기에 최적인 기온, 기후이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는 아직 정상 부근에 쌓인 눈이 녹지를 않아 위험하다고 한다. 또한 9월 정도 되면 벌써 눈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고. 그래서 후지산의 등산로에 있는 51군데의 야마고야(山小屋, 숙박 가능한 산장)들은 이 기간에만 영업을 한다. 일부러 묵을 계획을 갖고 있지 않아도 산의 기후가 어떻게 갑자기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이런 기간 중에 오르는 것이 안전하다.  

그리고 등산로는 대표적으로 네 군데가 있다. 카와구치코구치(河口湖口), 스바시리구치(須走口), 고텐 바구치(御殿場口), 후지노미야구치(富士宮口)라는 입구에서 출발하는 길이다. 이 중에서 초보자가 그래도 가장 쉽게 오를 수 있는 곳은 남쪽의 시즈오카현 후지노미야시(富士宮市)에서 들어가는 후지노미야구치가 좋다고 하니, 가라는 대로 가기로 했다.

 


후지산스카이라인으로 이 정도쯤에는 이렇게 나무들이 우거져있다. 저 앞에 후지산이 있지만 안개로 보이지 않는다.

책에는 다른 곳에 비해 시간이 짧다고, 올라가는 데 4시간30분, 내려오는 데 2시간30분 걸린다고 쓰여있었다. 이렇게 빨리 될까 싶지만, 워낙이 배낭 메고 진짜 등산을 시작하는 곳이 표고 2,400m에 있는 고고메(五合目, 合은 등산길에서 입구부터 정상까지의 거리를 10등분 한  단위표시인데, 실제는 좀 다르다 )부터이니, 정상까지 표고차로 보면 1,376m, 올라가는 실제 거리로 따지면 5,200m 정도이니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東名고속도로의 富士I.C에서 내려 후지노미야市를 거쳐 후지산 쪽으로 열심히 달리다 보니 영 산을 가는 기분이 안난다. 생각 같아서는 평지가 있고 바로 험난한 산길이 있을 것 같은데, 거의 경사가 없는 길을 14Km 정도 평탄하게 올라갔다.


고고메 휴게소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후지산스카이라인'이라는 13Km 정도의 길을 좀 산길처럼 꼬불대며 올라가니 거기가 고고메(五合目)이다. 올라오는 길에서부터 안개가 껴 있어서 후지산을 볼 수가 없었는데, 여기서도 배낭을 메고 올려다 보니 도대체 산이 어느 정도 높은 지 실감이 안 되었다.

시간은 낮 12시. 책에 쓰여져 있는 대로라면 지금부터 열심히 올라가 정상에서 후다닥 기념 사진 찍고, 거의 해 질 무렵에 내려올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런 계획을 가지고 처음부터 급하게 서두르니, 한 200m 걸었나, 숨이 콱 막힌다. 고고메가 표고 2,400m인데 여기서부터의 등산로를 평지처럼 가뿐하게 걸으려고 했으니 몸이 따라오지 않는 것이었다.


고고메 부근의 길이다. 그래도 아직은 풀도 좀 보이고, 길에도 돌이 그리 많지 않다. 산에 달리 나무가 없으니 산 자체의 경사가 다 보인다.

좀 쉬면서 숨을 크게 들이쉬고 싶은데 쉴 장소도 마땅치가 않다. 쫘~악 경사진 돌밭에 먼지는 풀풀 날리고, 등산로를 따라 사람들이 줄 지어 올라가니, 길 막는 것 같아 어디 서기도 불편하다. 하늘에는 드문드문 파란 하늘이 보일 만 하면 다시 구름이 다시 몰리고 안개도 같이 싸~악 왔다 갔다 한다. 기온은 한 18-20도 정도이니 그리 덥지는 않지만, 안개 때문인지 숨 쉴 때마다 목이 콱콱 막히고 얼굴이 달아올라 뜨거운 증기를 쐰 수건을 두른 것 같다. 얼마 오르지도 않아서 벌써 후회된다. 왜 오자고 했는지...

그래도 어여어여 표고 2,780m의 신시치고메(新七合目) 야마고야(山小屋, 220명 정도 숙박)까지 오니, 숨 때문에 몸은 힘들지만 아~ 상쾌하다.


신시치고메에 있는 이정표.

드디어 구름들이 발 아래에... 신선이 된 기분으로 저 산 아래의 24시간 편의점에서 사 온 주먹밥을 점심으로 먹는다. 먹으면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표고 2,400m의 고고메 주차장이 보인다. 거기서부터 여기까지 그냥 나무 한 그루 없이 펼쳐진 돌 경사이니 보이는 것은 당연.

왠지 좀 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다른 산이라면 자기가 어느 정도 올라왔는지 정상에 올라야만 알 수 있지 않은가. 도중에는 나무에 가려서 계곡도 잘 안보이고, 올라온 거리와 앞으로 갈 거리를 알 수 없으니 그냥 한 걸음 한 걸음만을 생각하며 눈에 보이는 꽃과 나무를 즐길 수 있는데... 여기서는 빤히 다 보인다.

그래서 괴롭다. 아래를 보아도 위를 보아도 내가 걸어갈 길이 빤하다. 지그재그의 돌이 구르는 길. 발 아래 구름을 보는 것은 즐겁지만, 다른 길도 없이 주~욱 이어진 안전 줄을 따라, 모르는 사람들끼리 줄 서서 가야 하는 오직 한 길. 이 순간이 인생의 어느 한 때이기 망정이지 사람 사는 것이 이런 것이라면 답답... 모르고 사는 것이 편하다.


구름을 보면서 오르는 돌이 구르는 길.

한 열 걸음 걷고 크게 한 숨 쉬고 또 열 걸음... 산소 부족으로 머리는 어질어질, 가슴은 콱 막히고, 심할 때는 토할 것 같아 정말 괴롭다. 이런 것이 고산병(高山病)인가 보다.

나는 이렇게 괴로운데, 앞을 지나쳐 가는 어떤 아저씨를 보니, 딱 동네 아저씨가 담배 사러 나온 폼으로 사뿐사뿐 올라간다. 헐렁한 셔츠에 낡은 츄리닝 바지, 그리고 밤색의 고무로 만든 슬리퍼를 신은 채... 등산로 자체는 험한 길이 아니니 차림새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가뿐한 발놀림이 많이 다녀 본 것 같다. 누구는 멀리서 잔뜩 짐 짊어지고 긴장해서 오는데, 누구에게는 후지산이 언제든지 오를 수 있는 동네 뒷산이구나.

그저 헉 헉 거리는 내 숨 소리만 듣고 올라가다 보니, 벌써 내려오는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힘 내세요' '조심하세요' 뭐 대충 이 정도의 말들을 눈만 마주치면 하는데... 친절한 사람들이긴 하지만, 지금은 얄밉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들은 정상에 갔다 왔다고 자랑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애써 상대가 인사를 하니 나도 하긴 해야 하는데, 지금 숨 쉬기도 힘든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저 발 밑만 보고 걷기.


하치고메의 야마고야에서 올려다 본 산. 아래에서 볼 때는 이 야마고야까지만 보였기 때문에 정상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또 산이 계속된다.
중간의 봉우리를 넘어 더 올라가면 큐고메, 그리고 파란 하늘과 붙은 곳이 정상이다.
올라가는 길에는 토리이(鳥居)가 서 있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으로 "영험한 정상"을 향해 가는 길이기 때문에 깨끗한 마음으로...

쉬면서 가야 할 길을 올려다 보니 멀리 꼭대기처럼 무언가 반짝이며 보이는 곳이 보인다. 그 위로는 그냥 파란 하늘이고. 저기 쯤일까... 좀 기운이 나는 듯... 내려오는 어떤 아저씨에게 저기가 정상이냐고 물으니, 안 되었다는(불쌍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하치고메(八合目)란다. 그리고 정상까지의 길에는 큐고메(九合目)와 큐텐고고메(九.五合目)가 있단다.

아~ 주저 앉고 싶다.  차라리 안 보이면 속이나 편하지. 헉 헉 씩 씩 대며 하치고메의 야마고야 앞에까지 오니 거의 오후 4시 쯤. 정상까지 4시간30분 정도면 다 올라간다고 책에는 쓰여 있었는데, 이 정도의 진도로는 해 떨어져야 도착할 것 같았다. 아니, 그러기도 전에 뻗어 버릴  것 같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그만두고 내려갈 수도 없고... 고민 끝에 큐고메의 야마고야에서 자기로 했다.하치고메에서 자기에는 아직 너무 이른 것 같고, 야마고야에서 할 일이 없으니 큐고메까지 가면 저녁 먹고 자기에 시간이 대충 맞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토리이를 지나면 이런 고목이 나오는데,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안전을 비는 마음으로 동전을 틈새마다 꽉 껴 놓았다. 보면 주로 1엔, 5엔, 10엔 짜리들이다.

거의 기다시피 해서 표고 3460m에 있는 큐고메의 야마고야에 도착해 묵을 수 있냐고 물으니 된다고 한다. 그리고는 주인 아줌마가 내 모습이 너무 불쌍해 보였는지 앉으라고 의자와 뜨거운 녹차 한잔을 내 준다. 이제야 쉬는구나. 후~~ 여기서 하룻밤 묵는 데는 1인당 7,000엔이다. 그냥 자기만 하면 5,000엔이지만 어차피 밥은 먹어야 하니 그 돈이 그 돈.

잘 곳이라며 안내 받은 곳으로 가니, 1, 2층으로 만든 다락방 비슷한 곳으로 사람이 많을 때는 한 칸에 7명씩 재운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2층을 쓰라고 해서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가 보니 할 말을 잃었다. 한 몇 십년 동안 한 번도 세탁하지 않은 듯한 두꺼운 솜 이불에 때가 꼬질꼬질하게 껴있는데... 손으로 만지기도 왠지 꺼림칙하다. 일 년에 두 달 동안만 사용하고 나머지 10개월은 그냥 여기서 습기가 팍팍 차게 놓아둔 이불. 이 산에 먹을 물도 없는데 깨끗한 이불을 바라는 것이 잘못이지... 그래도 우리는 이 공간을 두 사람만 사용하지만, 다른 단체로 온 사람들은 한 칸에 일곱 명이 꽉 차게 배정되었다. 새우잠이 따로 없다.

무겁던 배낭을 내려놓으니 그래도 숨 쉬기가 편해져서 밖에 나가 보았다.


큐고메의 만년설 산장.

여기 큐고메의 야마고야 이름이 '만년설 산장(萬年雪 山莊)'인데, 집 뒤를 돌아보니, 산이 좀 뭉턱 깍인 듯한데 눈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 눈이 다 녹기도 전에 다시 눈이 내린다고 하니 이름 그대로이다. 그래도 이 집은 눈이 있어서 눈 녹인 물로 식수를 하는 것 같으니 자리를 잘 잡았다.

이제 서서히 해가 지는지 어두워져 간다. 여기서는 해가 지는 것이 안 보이고, 끝없는 구름 바다가 서서히 빛깔을 바꾸며 여러 모양을 만들어 보이는데... 그래도 올라온 보람이 있다. 언제 이런 광경을 또 볼 수 있을까. 멍청히 구름 속으로 빨려들어가듯 보고 있자니 주인 아줌마가 부른다. 밥 먹으라고.


저녁 식사인 카레라이스와 녹차 한 잔. 산이기 때문에 설거지 등이 안 되어서 일회용 식기를 사용한다. 이 한 끼가 1000엔이다. 그냥 사 먹는 음식들도 거의 이 가격이다.

저녁 8시면 불을 끄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아침은 대개 사람들이 새벽 2-3시 정도에 일어나 여기서 주는 도시락을 들고 정상으로 올라가 일출(日出)을 보면서 먹는다고 한다. 우리는 어쩔까 싶어, 여기서도 일출이 보이냐고 물으니 정상에서 보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한다. 그렇다면 좀 편히 쉬어야지. 저녁 식사로 카레라이스를 먹고 다락방으로 돌아오니 7시쯤이지만 피로가 풀려 졸립다. 찝찝한 이불을 덮고 자야하나 말아야 하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숨이 또 막혀서 잘 수가 없다. 다른 이들은 코까지 골며 잘 자는 것 같은데, 난 누워있기도 불편하다. 창문을 열고 찬 바람을 쐬며 크게 숨 쉬기. 그런데 이것도 왠지 눈치가 보여서... 야마고야 밖에는 새벽 1시 정도인데 이제서야 산을 올라온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다.

밤 늦게 출발해서 여기까지 일단 와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일출을 보러 정상까지 곧장 올라가는 계획인 것 같다. 다들 바람이 세게 불고 추우니 웅크리고 앉아 쉬는데, 내가 창문을 열고 있으면 야마고야에서 묵는다고 자랑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생각이 드니...
머리는 깨질 듯이 아프고 비몽사몽... 아~ 아침이 기다려진다.


잠을 자는 다락방


야마고야에서 식사를 하는 공간


고고메의 휴게소에서 이런 나무 지팡이를 1,500엔에 파는데,
등산하면서 들르게 되는 야마고야에서 이런 도장을 공짜로 받아 후지산 등반 증거를 확실하게 남긴다.


야마고야에서 보니 저 멀리 보름달이 둥실 떠 있다.
왠지 달과 나의 거리가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
 


멀리서 찍은 큐고메의 야마고야. 이런 경사진 중턱에
자리잡았다. 집 위로 희끗하게 보이는
것은 녹지 않는 만년설이다.


야마고야 앞에 세워진 깃발.
작은 일본 국기가 일본인들이 보기에
뿌듯하게 느껴지도록 나부낀다.


 해 지는 모습은 볼 수 없지만 이 구름 바다가 서서히 물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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