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메이지무라(明治村) (1)

 

2004년 5월 중순, 더 덥기 전에 다녀오자며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나고야시(名古屋市) 북부에 있는 메이지무라를 찾았다.
그저 많이 걸어다녀야 한다는 말을 듣고 와서,
기타구치(北口)에서 입장료를 어른 1인당 1600엔 내고 들어서며 비싸다 싶고, 뭐 볼거리가 있을까 싶은 생각뿐이었다.
기타구치 건물은 기차역(SL東京驛)이라며 간판을 달아놓았고, 진짜 증기기관차가 철로에 서 있다.
잠시 구경을 하고 옛 건물들이 있는 곳으로 빠져나와 본격적인 구경을 시작하며 어느 한 건물에 무심코 들어갔다가,
한 마디로 "쏘~옥" 빠져서 결국 이 곳을 보러 6월에 다시 오게 되었다.

메이지무라는,
초대관장이었던 谷口吉郞 과 나고야철도(名古屋鐵道)주식회사회장이었던 土川元夫 의 의지에 의해 시작되어 1965년 開村을 하였다.
일본 전국에 있던, 메이지 시대(1867-1911)부터 세워진 유명 서양식 건물과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 건물들을 그대로 옮겨와서
공원을 만들어 초기에는 15건이었는데, 현재는 67건의 건물들이 산과 호수와 어우러져 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메이지시대의 특징은,
중앙집권제가 강화되면서 이전까지의 쇄국정치에서 벗어나, 富國强兵 과 殖産興業 이라는 목표를 향해 근대화정책이 추진되었다.
서양인들을 초빙하여 앞서간 문물을 배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생활습관, 학문, 산업 기술 등 모든 분야에서 역동적인 동시진행형으로
세상을 뒤바꾸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또한 토쿄의 일부 지역에서 일어난 화재로 기존의 목조주택들이 다 타 버리고 그 거리에
서양인 건축가가 세운 서양식 건물군이 생기니 변화된 세상을 더 실감하며 서양은 확실히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이후, 정부청사나 학교, 상업시설, 종교건물 등이 서양식으로 바뀌면서, 일본 내에도 그런 건물을 지을 수 있는 자재를 생산하는 공장이
생기며, 근대 건축 기술은 빠르게 성장하였다.

www.meijimura.com



***  메이지 --->  원호(元號) 또는 연호(年號)
일본에는 아직도 천황 제도가 있기 때문에 예전부터 사용하던 원호 제도를 서력 대신에 쓰고 있어서 외국인들은 헷갈리기 쉽다.
현재 원호는 천황의 재위기간에 하나만 사용하고 있다 (원호를 정하는 방법에 따라 재위 기간과 원호 기간이 꼭 일치하지는 않는 경우도 있다) 에도(江戶 1603-1867) 시대까지만 해도 여러 개가 사용되어 좀 복잡...
에도 시대가 끝나고, 메이지(明治) 시대라고 부르는 시기는 1868년 1월25일 - 1912년 7월30일까지이다.
그 다음인 다이쇼(大正) 시대는 1912년 7월30일 - 1926년 12월25일까지이다.
다음인 쇼와(昭和) 시대는 1926년 12월25일 - 1989년 1월7일까지이다.
현재 헤이세이(平成) 시대는 1989년 1월8일부터 계속 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2007년은 平成 19년이다.

천황의 호칭은 재위기간에는 정식으로 "킨죠(今上)천황" 이라고 불리며,
사후에 원호를 따서 "메이지천황(1852-1912), 다이쇼천황(1879-1926), 쇼와천황(1901-1989)" 이라고 추대되어 부른다.
지금의 125대 천황 사후에는 "헤이세이천황(1933- ?)" 이라고 정해진다.
그리고 에도시대까지만 해도 그 시기의  현 천황을 부르는 명칭은 미카도(帝), 킨리(禁裏), 킨츄(禁中) 등으로 여러 개였다.
현재는 공식적인 방송에서는 "텐노헤이카(天皇陛下)" 라 하기도 하지만, 일반 사람들은 "텐노(天皇)" 라고만 한다.
그리고 여러 천황을 들어서 이야기 할 때에 현 천황을 가리켜서는 "이마노텐노(今の天皇), 이마노텐노헤이카(今の天皇陛下)" 라고 한다.
또는 이름을 붙여서 부르기도 하는데, 현 천황은 "아키히토 텐노(明仁 天皇)" 라 한다.

메이지무라의 안내지에 나온 지도이다.
왼쪽의 끝 부분이 기타구치(北口)이며, 오른쪽에 정문이 있다.
기타구치에서부터 가운데 부분까지의 검은 점선은 SL기관차가 다니는 선로이고,
분홍색 선은 전차가 다니는 길, 하늘색 선은 버스가 다니는 길을 나타낸다.
호수를 돌며 있는 산자락에 옛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찬찬히 보자면 하루도 부족하다.

제국(帝國)호텔의 중앙 현관

토쿄에 있는 제국호텔 옛 건물의 일부로, 미국의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하고 4년 정도 공사를 하여 1923년에 완성되었다.
皇居를 마주보고 세워진 건물이어서 그런가, 첫 인상이 장중하다.
그러면서도 그 당시에 이런 설계를 하였을까 싶을 정도로 좀 기괴한 느낌도 든다.

왼쪽은 제국호텔 로비이다. 당시에도 후키누키( 吹き拔き)라고 불리는 뻥 뚫린 구조를 만들었다.


오른쪽은 제국호텔 앞의 전경이면서
1912년에 세워진 토쿄의 철교로, 隅田川新大橋 라 한다.
그 당시에는 일본 내에서 철 제품 생산이 부족했기 때문에 미국의 카네기社 제품을 사용하였다고.
全長 180m 중 25m 만 보존되었다.

 왼쪽은 1909년에 세워진 宇治山田郵便局(三重縣 伊勢市).
1871년 우편사업의 규칙이 포고되고, 토쿄에 일본 최초의 우체국이 세워졌다.
그리고 전국에 퍼졌으며 이 곳도 처음에는 작은 건물이었으나 電信電話 사업도 병행하면서 새로 신축한 것이다.

오른쪽은 三重縣 廳舍로 1879년에 완성 되었다.
중앙집권제가 되면서 중앙 정부에서 각 지역으로 知事가 파견되었고,
처음에는 기존 건물을 이용하다가 이런 洋風 건물이 유행처럼 지어졌다.
구조는 木造이지만, 전체적 모양은 서양식이고, 그러나 지붕은 전통 가옥의 모양을 따르고 기와도 얹었으며,
紋章을 중시하는 전통을 따라 정면 지붕 아래 벽에는 금빛의 국화문양도 박아 넣았다.

현관은 예전의 城이나 높은 신분의 사람 집에서나 볼 수 있는 구르마요세(車寄)를 만들었다.
구르마요세는 현관 입구에 돌출부를 만들어 지붕을 씌워 말이나 가마를 탄 사람이 오르고 내리고 할 때 편하게 만든 곳이다.
서양에는 없던 부분이 일본에서 서양식 건물이 생기면서 일본의 전통이 접합된 것이다.
현대의 일본이나 우리나라는 아직도 이런 영향을 받아 대부분의 건물들에 이런 부분이 있다.

 왼쪽은 北里硏究所本館 로
일본에서 세균학의 선구자인 北里柴三郞 이란 학자가 1915년에 세운 의학연구소이다.
목조이고, 여기도 구르마요세는 만들어졌다.

오른쪽은 1911년에 세워진 메이지 정부의 중앙도서관인 內閣文庫 이다.
이 건물은 제대로 세워진 서양식 건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언젠가 읽은 시오노나나미(鹽野七生)라는 작가의 어느 책에서 보니
서양 건물의, 우리가 보기에 1층이라고 여겨지는 부분의 외장재가 2층과 다른데
이는 건물에서 2층부터가 중요 공간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란다.

 왼쪽은 1898년에 세워진 北海道 札幌市 電話交換局 건물이다.
1890년 처음으로 토쿄와 요코하마에서 전화교환업무가 시작되었고,
전국으로 퍼져 여기서도 이런 건물을 세우고 1899년부터 업무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오른쪽은 石川縣 金澤市 에 1907년 세워진 감옥의 정문이다.
이 곳에는 실제 감옥 건물도 보존되고 있고, 이 정문 아래로 지나가는 버스는 메이지무라 안에서 운행하는 버스이다.

 1877 - 1886년 사이에 토쿄에 세워진 어느 유명 인사의 집이다.
목조로 된 2층집이고 지붕은 銅板을 깔았다. 내부에는 예전부터의 가구가 자리잡고 있으며
식당의 테이블에는 당시의 식기가 그럴싸하게 화려한 생활상을 보여주었다.

일본에서 서양식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생활의 모습도 바뀌었는데
초창기에는 서양으로부터의 수입품이 자리잡았지만 점차 일본 국내산으로 공업이 발전하였다.
서양식 식기의 경우, "노리타케(Noritake Co.,Ltd)" 로 잘 알려진 회사가 1904년 日本陶器合名會社로 창업하였다.
이 회사의 본사와 공장은 나고야시에 있다.

1907년 교토 거리에 세워진 日本聖公會 소속의 성요하네교회당(聖ヨハネ敎會堂)이다.
 붉은 벽돌을 주로 사용하여 어딘가 단아한 정갈한 느낌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1층은 일요학교나 유치원으로 사용되는 듯 했고,
실제 본당은 2층인데 나무로 골조를 만든 것이 거의 예술같이 보였다. 창문에는 예쁜 색유리가 화사했지만,
소박한 나무 의자들과 정면에는 달랑 작은 십자가 하나가 놓여있어서
전체적으로 위압감 없이 편안한 신앙처였다.

이 건물도 역시 1890년 교토의 거리에 세워진 성사비에르천주당(聖ザビエル天主堂)이다.
프랑스인 신부의 감독하에 프랑스에서 가져온 설계도를 기초로 일본인들이 지은 건물이다.
안에 들어가 보아도 서양식이란 느낌이다.

이 건물에서는 결혼식이 이루어지는데 이날도 신랑신부가 하객들의 축하 박수를 받으며 정면 문에서 나왔다.
일본인들은 신앙심이 없어도 이런 식의 서양식 결혼식을 동경하는 경우가 많아
아예 메이지무라처럼 현재는 종교적 시설로 사용되지 않는 교회당을 결혼식장으로 대여하는 곳도 있고
호텔이나 결혼식장에서도 정원 한 구석에 따로 작은 교회당을 지어서 이런 분위기를 내게 한다.
물론 주례를 보는 사람은 대개 진짜 신부나 목사보다는 아르바이트.
하지만 드물게는 어느 교회당에서 서양인 진짜 목사가 자신의 교회에서는
이런 결혼식이 가능하다고 TV에서 선전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왼쪽은 1909년에 세워진 귀족대학인 學習院의 長官 숙사이다.
구르마요세가 있는 현관을 중심으로 왼쪽은 실생활을 하는 전통 일본식 건물이고,
오른쪽은 좀 공식적 자리가 필요해서인지 목조이지만 2층의 서양식 건물이다.

서양식이 좋다고 해서 무조건 그대로 불편해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전통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건물을 지어내며 건축 기술이 발달한 것을 보면
일본인을 가리켜 흔한 속된 말로 하는 "모방 원숭이"는 절대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른쪽은 石川縣 金澤市 에 1907년 세워진 감옥이다.

1917년 石川縣 金澤市에 있는 第4高等學校의 무술도장으로 지어진 無聲堂 이란 곳이다.
땀 삐질거리며 건물들을 보러 다니다가 이곳으로 들어왔다.
유도, 검도, 궁도를 할 수 있도록 건물 내부의 반은 이렇게 마루바닥이고, 다른 반쪽은 타타미가 깔려있다.
뒷편의 바깥에는 궁도 표적이 따로 놓여있다.
1882년 柔道가 창시되고, 이제까지의 서양식 체육 교과에 반해서 전통 무술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도 생겨
전국적으로 이런 건물들이 지어졌다.

다른 곳에 비해 좀 어둡고 볼거리가 없는 이곳을 다른 사람들은 그냥 휙 둘러보고 나가는데
작은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들은 아예 신발 벗고 마루로 올라와 아이들을 신나게 뛰게 한다.
다들 좁은 집에서 복작거리고 살고 있으니...
천정이 높고 무지 넓은 천연 마루여서 그런지 너무나 시원하고 아이들은 그 작은 발로 콩닥콩닥 뛰어다니며
자신의 발소리와 웃음 소리의 反響을 즐거워하며
부모들은 그런 모습에 자기 집 마루에서 쉬는 듯한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이 곳은 1887년 세워진 당시의 전형적인 전통 가옥이다.
서양식이진 않지만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또 유명한 사람들이 이 집을 빌려서 살았기 때문에 보존되는 것 같다.
소설가인 모리오가이(森鷗外 1862-1922) 와 나츠메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가 살았다.

내가 간 시점에 전체적인 공사를 하느라고 하얀 막으로 가려져 있었고
겨우 볼 수 있었던 것은 서재의 좁은 튓마루와 가느다란 처마 기둥을 받치는 귀여운 돌뿐이었다.

오른쪽은 이 집의 내부 구조인데, 이걸 보면 현재 우리나라의 집 구조는 우리의 전통 가옥보다 이런 일본식에 가까운 것 같다.
 방 이름이 좀 다르지만 대충 현관을 들어서면 왼쪽에 서재, 오른쪽에 부엌, 가운데를 거실이라 볼 수 있고,
안쪽으로 어른 침실과 아이들 방이 있다. 방에는 押入이라고 쓰여진 수납벽장이 있다.
집 앞뒤로 廊下라고 쓰여진 복도겸 마루가 있고 그 끝에는 집 구석으로 변소가 있다.
뒷편에는 욕실도 있고, 부엌 옆에는 일하는 사람의 방도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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