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메이지무라(明治村) (2)   과거에서 현재를 찍다

 

 

新潟縣의 上越市에 1908년 경 세워진 高田小熊寫眞館

기타구치(北口)로 들어가 증기 기관차를 보고, 제국호텔현관을 지나 휙 들러보니
산자락 아래에 이런 빨간 지붕이 눈에 뜨였다. 딱 보기에도 귀여운 이 집이 궁금해서 들어가 보니

1층은 평범한 전통 가옥과 같았고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 보니
바닥에는 붉은 카펫이 깔려있고 정면 벽끝에는 흑백 배경 그림이 걸려있으며 그 앞에 의자가 하나 있는데
아~ 이런 사진관이 있다니~
천정의 반은 유리창이며 커텐이 달려있어서 빛 조절을 하는 것 같았다.

이제까지 알던 사진관이라는 곳은 좁은 공간에 겨우 의자 하나 두고 뜨거운 조명으로 찍는 곳인데
여기는 유리창과 커텐의 조절만으로 자연스럽게 빛나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그 당시에 사진 기술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이런 건물을 세웠을지도 모르지만
왜 그런지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있는 내가 카메라를 내려놓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빠르게 많이 찍지 않아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에서
여유있게 부드러운 햇빛을 느끼며 일생의 설레임을 찍었을까 싶다.
빈 의자를 보고 있자니
반복되는 버릇처럼 디지털카메라를 돌려 향하는 나의 무감각을 누군가가 찍어대는 것 같았다.

찬찬히 둘러보다가 왠지 그냥 내려가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에 가족 사진을 찍기로 했다.
찍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예쁘게 치장하지 않아도 흉이 되지 않을 것 같고
늘 있는 우리의 모습이, 웃음 소리가, 움직임이 그대로 드러난 사진이 될 것 같았다.

사실 여기서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이 순간이 마음에 들어 6월에 다시 찾아오게 되었다.

 

왼쪽은 사진관의 1층이고, 오른쪽은 2층이다.
이 당시에는 이런 배경 그림이 있었지만 나중에 예전의 그림으로 바뀌고 의자를 향해서는 오래된 카메라가 서 있다.
그리고 카메라 뒤로는 들어가지 못하도록 줄을 쳤다.
더 이상 이곳에는 현재는 없고 과거만 기다리고 있다.

 

1868년에 세워진 어느 집인데, 이곳에는 이렇게 소위 "불량식품"을 파는 가게로 운영하고 있었다.
이 곳을 보니 왜 그리도 반가운지...  
이빨 썩는다고, 배 아프다고 못 먹게 하던 과자들을 몰래 1원짜리 주르르 들고 와서 사 먹었는데...
이런 과자들은 싸서 좀 우습게 보이는 것도 있겠지만 긴 역사로 과자 업계의 산 증인이 되기도 한다.

왼쪽은 침 흘리는 불량식품(?)

오른쪽은 나고야(名古屋)에서 1901년 경에 지었다는 東松家 住宅
나고야 중심부에 자리잡고 기름 도매업으로 부를 축적한 집안이다.
이 집이 특이한 것이, 3층 건물이기 때문이다. 에도시대도 그렇고 무사 집안 이외에는 3층으로 올릴 수 없었는데,
1867년 이런 법이 교토와 토쿄에서 해제되고, 점차 전국적으로 퍼졌다.
그러나 1919년 목조주택으로는 3층을 지을 수 없다고 다시 금지령이 내려 희귀한 주택이 되었다.
그리고 시내 중심부에서 다닥다닥 붙어 있었기 때문에
정면을 넓게 하는 것은 좀 무리여서 안쪽으로 길게 들어가는 모양이 되었다.

아마도 왼쪽 집이, 위의 집 옆에 있는 1870년에 지었다는 교토의 中井酒造 가게인 것 같다.
두 집이 같이 있어서 내부를 보면서 비교도 하고
당시의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손님접대 음식 견본을 해 놓아서 여러모로 구경거리가 좋았다.

전체적으로 집들이 안쪽으로 긴 모양이어서
현관 입구에는 주인이 앉아 물건을 팔고 계산을 하는 곳과 그 다음에는 손님 접대용 방이 있었다.

위 사진은 교토의 中井酒造 집안에 차려진 음식인데, 무슨 행사가 있을 때 손닙 접대하던 것이라고 한다.
청어스시와 된장국, 콩조림, 두부조림, 무 가지의 소금절임 등이다.
교토에는 절이 많아서 그런지 절에서 하는 음식들이 일반집에도 퍼졌다고.

왼쪽은 나고야의 東松家 住宅에서 본 손님 접대용 음식이다.
여기서도 모양은 다르지만 가운데에 "바라즈시(
ばらずし)" 라고 해서
여러 재료를 식초를 넣고 섞은 밥 위에 얹어 멋을 낸 음식이다.
당시만 해도 이런 초밥들이 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어서 그런가 보다.  

오른쪽은 다른 건물에서 본 당시의 생활상을 나타내는 견본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이런 식사 차림이다.
일반인들은 아마도 세 끼를 다 먹을 수 있으면 그래도 왠만큼 사는 집안이었을 것이다.
좀 잘 차린다고 하면 각자 앞에 작은 상을 주는데,
대부분 이런 나무 상자에 밥그릇과 국그릇, 반찬 그릇, 젓가락을 넣어두고 식사 시에 꺼내 차린 후,
다 끝나면 물을 빈 그릇에 부어서 헹구어 마신 후 그대로 상자에 그릇을 넣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물 쓰기가 좋은 상황이 아니니 매일 설거지를 한다는 것은 사치였다.

이런 내용이 사진의 중앙에 있는 설명판에 있는데 사실 여기서는 물 대신에 茶 라는 말을 썼다.
녹차는 아무래도 고급차여서 일반인이 쉽게 그릇 헹구기에 쓰기는 어렵고, 아마도 보리차 정도였을 것 같다.

일본에서 보리차는 헤이안시대부터 있었다고 하는데 에도시대까지만 해도 고급차여서 귀족이나 무사만 마셨다.
그리고 거리에는 보리차를 파는 임시가게도 있었다고 할 정도였다는데,
메이지 시대가 되면서 일반인도 볶은 보리로 보리차를 해 먹을 수 있었다.

왼쪽은 어느 학교 건물의 한 교실이다. 소학교(초등학교)여서 그런지 의자도 정말 작았다.
그리고우리와 다르다면, 책상의 판이 뚜껑처럼 열려져서 물건을 넣는다.

오른쪽은 또 다른 건물에 있던 전시품 중 시계이다.
익숙한 브랜드인 세이코(Seiko)의 남아있는 제품 중 가장 오래된 것이란다.
1892년 시계공장인 세이코샤(精工舍)를 설립해서 제품을 만들었다고 하니 대충 그 시기일 것 같다.

 왼쪽은 당시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어느 건물에서 본 변기이다.

우리나라의 변소는 어디건 집(방)에서 떨어진 독립된 곳에 있었지만, 일본에서는 좀 왠만큼 산다는 집에서는 건물 한편에 붙어 있다.
복도에서 신발을 벗지 않고 그대로 들어가는 또 하나의 방인 것이다.

나무 마루로 된 곳도 있고, 아예 타타미를 깔아놓은 곳도 있다.
한 가운데에 사각으로 구멍을 파서 나무 틀을 짜고 뚜껑을 덮었으며, 정면으로는 사각의 판자가 좀 가려지게 되어 있었다.

이런 나무 변기가 에도시대가 끝나갈 즈음에
현재 나고야(名古屋市) 근처의 도자기 산지인 세토시(瀨戶市), 토코나메시(常滑市)에서 도기로 구운 것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모양은 사각형으로 굽기에도 힘들었고,
더구나 1891년 이 지역에서 커다란 지진이 일어난 다음에는 현재와 같은 둥그스레한 것으로 바뀌었다.
이런 변기를 일본에서는 和式변기라고 한다. 걸터앉는 것은 洋式변기이고.


오른쪽은 일본의 연예계 용어로 하면, 그라비아아이돌(グラビアアイドル,
gravure idol)을 찍는 사람들이다.

그라비아아이돌은 드라마 등 정통 연기를 하기 보다는
주로 남성 잡지에서 수영복 차림이나, 이런 류의 사진집을 내고, 이미지비디오 등에 종사하는 한 직업군이라고 할 수 있다.
대략 두 분류로 나뉘는데, 섹시하면서 에로틱한 면을 내세우거나,
어린이 같고, 청순하고 귀여운 이미지를 보인다.

이들은 위의 부분 말고도 돈벌이에 나서는데,
어느 정도 자신의 팬이 된 사람들에게 하루 자신의 사진을 마음대로 찍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예전에 TV에서 보니 아주 유명하지도 못하고 커다란 기획사에 소속되지 못한
그라비아아이돌이 홈페이지를 통해서 팬을 모집하고 하루 몇 시간동안 이런 관광지에서 촬영에 응해
한 사람당 몇 만엔의 비용을 받고 최대한 예쁜 포즈를 취해주는 것이다.
이 사진에서도 한 열명쯤 되는 사람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찍고 있었다.


메이지무라에서 건물도 볼거리이지만 배경이 특이해서 그런지 이런 촬영회가 많아 또 다른 구경거리가 되었다.

 

 

메이지무라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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