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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집 마을 아리하라(在原)

 

 

일본 최대의 호수인 비와코(琵琶湖), 이 호수의 북쪽 끝 산간지역 분지에 아리하라(在原)라고 하는 조그만 마을이 있다.  일본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이곳은 일본 전통 초가지붕이 남아있는 마을이라고 한다.  어느해 봄 오랜만에 비와코도 구경할 겸, 근처의 온천도 한번 들러볼 겸해서 이곳을 찾아 나섰다.   이 마을은 눈이 내렸을 때가 좋다지만....


토토로 옆집?


마을입구 스기나무 숲과 감나무


그리고 지장보살


마을 앞은 길다란 분지


마을을 가로지르는 도로

비와코를 지나 산간지역으로 들어가 고개를 하나 넘자 경사진 들판이 나오고, 논밭사이로 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을입구에는 커다란 감나무(=>느티나무인줄 알았으나,  이 곳을 소개해 준 분이 정정해 주었음.)와 지장보살들이 방문자를 검문하고 있다.  동네 외곽에 마련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도로를 따라 쭐래쭐래 마을로 내려갔다.  마을앞 조그만 학교 운동장 한편에는 캠프장이 있어 2~3동의 가족용 텐트가 쳐있다. 

 

해발 385m.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동서로 길게 펼쳐진 비스듬한 분지의 중간쯤에 촌락이 형성되어 있고 약 10여채의 초가집들이 여기저기 서있었다. 구름낀 하늘에 조금은 썰렁했지만 파랗게 새로 솟아난 풀빛사이로 유채꽃이 조금씩 피어있는 초가집 마을풍경은 잔잔했다.

 

 

폭설지대인 이지역의 초가지붕은 우리나라의 둥그런 초가지붕과는 달리 눈으로 지붕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높다랗게 올려 세워져 있다.  관광지가 아닌 실제 농사를 짓고 생활을 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가스통이며, 전봇대며 마당안의 자동차들이 조금 이질적으로 보이기는 했지만 이끼 낀 낡은 초가지붕들이 일본의 전통산간마을의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쿄토부(京都府)  미야마(美山町)로 대표 되는 일본 전통 초가집인 카야부키(茅葺) 지붕의 민가는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그나마 남아있는 초가집도 대부분 함석덮개를 해서 초가지붕이 그대로 보이고 있는 것은 드물다고 한다.   초가지붕의 짚과 처마는 연기의 그을음이 시커멓게 눌어붙어야 썩지 않는다고 하는데, 시골에도 가스와 전기가 보급되면서 더 이상 실내에서 이로리(방한용 화로)를 지피거나 잡목과 짚을 때서 취사를 하지 않게 되었다.  실내에서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자 짚으로 만든 지붕이 쉽게 썩어버렸고, 이 때문에 초가지붕을 함석지붕으로 대체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전통 초가지붕을 유지해나가는 이 마을도 농촌 인구감소는 어쩔 수 없는지 여기저기 허물어져 가는 빈집들이 눈에 띈다.  마을 입구의 아리하라 분교(在原分校)도 1990년에 개축된 2층 건물로 풀장까지 갖추고 있었지만, 현재 학생도 없고 당분간 입학할 아동도 없어 2001년부터 휴교중이라고 한다.


마을인구는 줄어들고 있지만  카메라나 화판을 들고 찾아온 관광객들을 간간이 볼 수 있었다.  전통생활양식 보존지구나 유명 관광지는 아니지만 우리처럼 소문을 듣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 모양이다.  이 때문인지 마을 중심부에는 관광객들의 무단주차나 산나물 채취 등을 금지하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이 경고문을 보면서 한가지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내가 이 마을의 주민이라면 외부관광객이 찾아오는 것에 대해 어떻게 느끼게 될까?  지역활성화를 위해 관광자원과 토산품 개발, 축제 등에 많은 노력과 비용을 쏟아온 일본의 각 지역마을.  우리나라에서도 근래 들어 관광을 통해 지역활성화를 꾀하자는 노력들이 많이 보이고 있다.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이들이 마을의 숙박시설이며 관광서비스며 토산품 구매 등에 많은 돈을 쓰고 간다면 좋겠지만... 

 

이곳 아리하라만 보더라도 굳이 관광객들이 돈을 쓸만한 곳이 있다면 마을의 유일한 음식점인 소바(메밀국수)집 한군데와 카페 한 곳, 그리고 길가의 자동판매기 정도일 뿐이다.  오히려 보통의 주민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구경거리인양 기웃거리는 관광객들의 시선이 오히려 귀찮지 않을까?  더욱이 마을이 난장판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주차장이나 화장실 정도는 마련해 주어야 할 정도로 찾아온다면?  지자체의 자금지원이 있다손 치더라도 보통은 소음과 매연과 귀찮음으로 도로라도 막아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까?

 


농도 진입금지,  산나물 캐지마!


관광객에 대한 주의사항


토산품 판매점 - 지금은 자판기뿐이다.


이끼, 풀 등으로 만든 풍경화 전시장


이 마을의 유일한 식당 - 소바(메밀국수)집


카페도 하나 있다.


문을 닫은 초등학교 - 그래도 수영장에는 물이 가득 차있다.


마을에는 신식 집도 있다.

 

하지만 이것과는 다른 측면의 이야기를 일본 TV에서 본 적이 있다.  2002년 한일 공동 월드컵이 개최되기 전의 일이다.  일본에서 각 참가국에 훈련 캠프를 제공하였는데, 각국의 팀들은 자신들의 전력을 숨기고 훈련에만 열중하기 위해 한적한 장소를 찾아 일본 각지로 흩어졌다.  이중 한곳이 카메룬 팀의 훈련캠프인 나카츠가와무라(中津江村)라는 곳인데, 도쿄나 오사카 등 일본의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큐슈지역의 오이타(大分)현.  유명한 벳부온천이 같은 현에 있다는 것 말고는 알려지지 않은 시골마을이었다. 

 

그러나 커미션 문제로 카메룬 팀이 일본에 오느냐 마느냐 하면서 이 마을은 일본 매스컴의 집중적인 취재를 받게 되었다.  숙박시설 하나 제대로 없는 시골마을에 수백명의 취재진이 몰려들고 연일 TV에 방송되고, 마침내 카메룬 팀이 이곳으로 들어오자 마을주민들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글썽이며 열렬한 환영을 했다. 

 

이 때 이 마을의 촌장이 방송과 인터뷰를 했는데, 그동안 힘들지 않았냐는 기자의 물음에 외국에서 날라 온 편지 한통을 불쑥 내밀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 편지의 겉봉을 보시오. 주소란에 'Nakatsukawa, Japan'이라고만 쓰여 있는데 이렇게 배달되어 왔소. 우리 마을은 일본사람들도 거의 알지 못하는 벽지인데, 이번 일로 나카츠가와라는 마을이름이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온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소.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이오.  우리 자식들과 손자들이 대대로 우리 마을에 대하여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오.”

 


여기도 오죽(검은 대나무)이 자라고 있었다.


버려진 집안에는 담쟁이 덩굴이 자랐다.


초가집 골조 - 도시 젊은이가 들어와 살려고 새로 짓는단다.


도시로 나간 자식들 이야기?

 

 

또 한가지 이야기. 어느 날 밤에 잠을 잊고 보게 된 NHK의 심야 다큐멘터리이다. 제목은 “花お祖母さん(꽃할머니)”.  젊은이들은 모두 도회지로 나가고 노인들만 남은 어느 산간마을의 이야기이다.  그나마 남은 노인들도 세상을 뜨거나 노환으로 도회지의 자식 집으로 내려가는 와중에서도 끝까지 마을을 지키며 살아가는 노인들의 이야기이다. 이 마을로 시집을 와서 60년을 살았다는 혼자 남은 할머니는 자식들이 사는 도시의 병원에 입원을 했다가 조금 기력을 회복하자 다시 이 마을로 올라와서 밭을 일군다.

 

꽃할머니 내외도 점차 밭을 일굴 기력이 떨어져 가면서 집에서 멀리 떨어진 밭부터 꽃나무를 심기 시작한다.  이제는 집 앞의 텃밭 말고는 거의 대부분의 밭이 꽃나무 밭이 되었다.  봄이 되어 꽃이 피자 마을을 지나가던 외지인이 차를 세우고 활짝 핀 벚꽃을 구경하자 주인공 꽃할머니는 여기 꽃들이 더 볼만하다며 소리쳐 이곳 저곳 안내한다.  예전에 자신들이 감자와 옥수수를 심던 밭이다. 

꽃할머니에게 이유를 묻자,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이 마을에 아무도 살지 않을 것이고, 오랫동안 자신들이 살아온 삶의 터전은 덤불과 나무로 덮여버려 사람들은 이곳이 마을이었다는 것도 잊을 것이라며, 그러면 너무 섭섭할 것 같아 지나가던 행인들이 꽃을 보며 잠시 쉬면서, 이곳이 한때 마을이었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꽃나무를 심는다고 했다.


일본 초가집 구경 이야기를 하다가 방향이 조금 빗나간 것 같다.  때가 되면 전원생활을 즐겨보자는 생각이 들면서 그동안 들었던 이런저런 이야기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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