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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당벽화와  호오류지(法隆寺)

 

어릴 때 배웠던 교과서에 담징과 금당벽화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었다. 지금도 같은 내용이 교과서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법륭사의 금당벽화는 일본에 대한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나타내주는 대표적인 모범사례의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물론 일본인들도 금당벽화에 대해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고대문화라는 긍지를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한국에서 건너왔음이 분명한 많은 다른 문화재들과 마찬가지로 법륭사의 금당벽화에 대한 안내문에는 누가 그렸다는 사실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안타깝게도 이 법륭사의 금당벽화는 금당과 함께 불에 타버렸고, 나에게 법륭사는 금당벽화가 있었던 어느 부속건물 정도의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복원된 금당벽화의 일부.

수년전 어느날 한국에서 오는 손님에게 법륭사를 안내해야 할 일이 생겼다. 어떻게 가야할 지 몰라 일본인 직원에게 자료를 부탁하자, 다음날 약도와 함께 꼼꼼히 적은 법륭사에 대한 안내문을 가져왔다. 주된 내용은 일본 최초로 세계문화유산 등록된 세계 最古의 목조건축물인 법륭사를 수리하는 목수의 이야기였다. 대대로 법륭사를 수리하던 집안의 마지막 남은 목수가 천년의 세월을 견뎌온 법륭사를 지은 나무(재목)와 그 건축방법에 대해 이야기한 내용이었다. 금당벽화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어 내심 맘에 안들었지만, 정성들여 쓴 내용이라 끝까지 읽어보니 "아! 그렇군"하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이후 일본을 잘 아는 분과 법륭사를 들러 법륭사에 대해 여러 가지 설명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이분의 이야기도 금당벽화보다는 주로 법륭사를 지은 나무와 법륭사의 건축물이 닛코(日光)의 도쇼구우(東照宮)이나 다른 목조건축물에 비해 훌륭한 점 등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일본의 목조건축물에 대해서 별다른 흥미를 갖지 못해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고 지나갔다.

그후 몇 년이 지나고, 나무와 목조 건축물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우연히 니시오카 츠네카즈(西岡常一, 1908-1995)라는 사람의 "木に學べ"(나무에게서 배우라)라는 제목의 책을 접하게 되었다. 니시오카씨는 법륭사의 棟梁(대장목수)였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이 책을 틈틈이 읽으면서 이전에 들었던 히노키(檜: 노송)라는 이름의 나무와, 일본의 목조건축에 대한 이야기들이 어디서 시작된 이야기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또 奈良(나라)의 법륭사가 일본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곳인지에 대하여 새로이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니시오카씨의 또 다른 책인 "木のいのち 木のこころ (天)"(나무의 생명, 나무의 마음)라는 책을 읽으면서 나라의 법륭사를 다시 한번 가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1300년전의 아스카(飛鳥)시대에 지어졌다는 목조건축물을 확인해 보고, 가는 김에 새로이 재건했다는 藥師社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일본 국도 1번을 열심히 달려 법륭사에 도착했다.


法隆寺의 西院가람 전경으로, 가운데 五重탑과 나란히 있는 2층의 금당이 보인다.  
오른편 아래쪽 하얀 돌길을 따라 東院으로 이어진다. (입장권 그림)

거의 평지수준의 야트막한 언덕을 중심으로 넓은 부지에 여기저기 고색창연한 목조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법륭사. 서기 607년 聖德太子가 최초로 세웠다는 법륭사는 670년 화재로 불타버렸고, 지금의 모습은 672년부터 689년에 재건된 것이라고 한다.  聖德宗의 본산인 법륭사는  현재 약 5만6천평의 넓은 부지에 金堂, 五重塔을 중심으로 하는 西院과 夢殿을 중심으로 하는 東院으로 나누어져 총 19채의 일본 국보 목조건축물이 여기저기 있다.  

法隆寺의 입구 南大門 (일본 국보)

입구의 남대문을 들어서면 西院의 가람이 정면으로 보인다.

커다란 정문(南大門: 일본 국보)을 들어서면 양옆에 깨끗하게 세워진 흙담이 있고, 그 앞으로 五重塔과 金堂 등 주요 문화재들이 서있는 回廊으로 둘러싸인 西院伽藍이 있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가운데 마당에는 아스카시대(飛鳥時代 593-710)의 건축물인 5중탑과 금당이 서 있고, 이를 중심으로 회랑을 따라 한바퀴 돌면서 그 이후인 나라시대(奈良時代 710-794년)와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92년)에 세워진 大講堂과 經藏, 鐘樓, 中門 등의 일본 국보 목조건축물들을 볼 수 있다.

 
오중탑과 금당

1949년 금당벽화와 함께 불타버린 금당은 이후 재건된 것으로 일반인들도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어 창틈으로 복원된 금당벽화를 볼 수 있다. 金堂안에도 들어가 보고 천천히 회랑을 돌면서 고대 목조건축물들을 구경하며, 1,300년의 세월을 버텨온 건축 구조와 이를 가능케한 히노키(檜) 나무의 우수성을 확인코자 했으나 문외한인 우리는 알아볼 수 없었다. 다만 가끔씩 회랑의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 밑부분의 썪은 부분을 정교하게 갈아 끼운 흔적만을 알아 볼 수 있었다. 과연 이 나무기둥이 천년 동안을 이렇게 똑바로 지붕을 버티고 서 있었단 말인가? 그것도 지진과 태풍이 그렇게 심한 나라에서?  


西院가람을 둘러싼 회랑(廻廊)


이런 히노키 나무의 기둥이 1300년을 똑바로 서서 지붕을
떠바치고 서 있었다고 한다.

니시오카씨에 의하면 1300년전 아스카시대에 꽃을 피운 일본 고대건축술은 후대로 내려오면서 점차 장식적인 기교에 치우침으로써 구조적으로 뒤떨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의 대표적인 예가 닛코(日光)의 도쇼구우(東照宮)로,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는 도쇼구우는 구조적인 결함으로 자주 해체수리를 해야하는 건축물이 아닌 공예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폄하하고 있다. 아스카시대의 건축물이 구조적으로 뛰어나다는 것은 구조학적인 평가라기보다는, 사용된 나무의 성격을 하나하나 잘 파악해서 적재적소에 사용했다는 점이라고 한다.

또한 고대건축물에서 주로 사용된 히노키는 1000년이 지난 지금도 낡은 부분을 깎아내려고 대패를 밀면 향기가 풍겨나오고, 꽉 맞추어 짜여진 버팀목을 빼어내면 눌려 휘어졌던 나무판이 탕탕 튀어오른다고 한다. 이 히노키로 세워진 1000년 지난 기둥을 몇번이나 만져보고 두드려 보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알 수 있나.

 
聖德태자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夢殿.(739년; 나라시대)

다시 몇 채의 낡고 커다란 목조건물들을 지나 東院의 夢殿으로 들어갔다.  夢殿은 일본 最古의 위인으로 추앙받는 聖德太子의 사연을 간직한 곳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감동거리는 발견해내질 못했다. 아니 발견할 수 있는 준비가 부족했던 것이다.

니시오카씨는 만일 어느 건축물이나 사적이 단순히 오래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구경하러 간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한다. 그럴 양이면 오히려 수십만년 수백만년 지난 동네 뒷산의 바위를 보는 것이 더 나을 거라고 한다.

夢殿 앞에서 伽藍 위쪽의 어느 목조건물을 둘러보다 보니 2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가이드인 듯한 사람의 강의를 듣고 있었다. 아스카시대의 건축물의 특징이 어떻고 이러한 양식이 그 이후 시대에는 어떻게 변하였고.... 언뜻 보기에도 법륭사 건축물의 역사에 정통한 선생님의 강의였고, 그 앞에 모여 앉아 프린트물을 받아들고 꼼꼼히 적어가며 강의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 이들을 보면서 저렇게 듣고 배우지 않으면 제대로 알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럴만한 정성도 시간도 없었고, 또 내 나라 역사와 문화도 제대로 모르면서 하는 생각도 들고....

어느 건물의 지붕틀. - 복잡하게도 짜맞춰놓았다.

 

천년전 지붕밑에 세워진 신축건물 -- 비둘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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