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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酒로 유명한 교토시(京都市) 후시미(伏見)

 

날씨가 쌩 하고 코 베어갈 듯 추운 어느 11월,
교토시 후시미구(京都市 伏見區)에 있는 " 겟케칸 오쿠라 기념관(月桂冠 大倉 記念館) "을 찾았다.
일본에서 TV를 볼 때마다 눈에 띄이는 술(淸酒) 광고가 있는데, 겟케칸과 키자쿠라(黃櫻) 라는 이름의 술들이다.
재미난 내용에 한 두 병 사 마셔 보다가, 일본의 술맛에 빠져들고,
술이 어떻게 만들어지나 궁금해서 드디어는 이런 기념관까지 찾아 오게 된 것이다.

 

교토시에서 후시미(伏見)란 곳은,
예전부터 북쪽에서부터 서남쪽으로 카모가와(鴨川)와 카츠라가와(桂川)가 흐르며 만나고,
남쪽으로는 동북쪽의 비와코(琵琶湖)에서 나온 우지가와(宇治川)가 서쪽으로 흘러 이 세 줄기의 강이 합쳐지는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한다.
(합쳐진 강은 서쪽의 오사카(大阪)를 지나 바다로 나가는 요도가와(淀川)가 되었다)  

 

이렇듯, 같은 교토시라고 해도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물이 풍부한 곳이어서 그런지, 예전에는 후시미 라고 발음해도 한자는 " 伏水 " 라고
쓰여지기도 한 곳이다. 물 자체도 복 받은 곳이지만,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성분에 있어서도 철분이 거의 없기 때문에,
술을 만드는 효모균과 철분이 반응을 일으키면 술 색깔이 투명하게 나오지 않는데 이 또한 운이 좋은 것이다.
(그래서 술을 만드는 용기들에는 철 제품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곳이 酒造業으로 번성할 수 있었던 계기는, 토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가 만년에 머물 곳으로 후시미죠(伏見城)를 세우게 하면서이다. 대략 1592년에서 1594년 정도에 완성되고, 1600년에 전쟁으로 불타고, 다시 1601년에 재건되었다가, 1623년 이 성의 중요 역할이
오사카죠(大阪城)로 옮겨가 결국 廢城이 되어 부서졌다. 그렇지만, 워낙이 뱃길의 중심에 있는 곳이라, 이 성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더 모여들고 숙박업도 번성하며, 술 제조업이 발전하였고, 토요토미히데요시 이후에도 상업항만도시로서 정비가 되어 계속 발전할 수 있었다.

 

여기에 1637년, 번성하는 후시미로 다른 지역에서 흘러 들어온 오쿠라지에몬(大倉治右衛門)이라는 사람이 술 제조업을 시작하였다.
그렇게 면면히 가업을 이어갔고, 1905년 11대의 자손이 " 겟케칸(月桂冠) " 이라는 술 명칭을 만들며, 大倉酒造硏究所도 세워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인기를 모을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0년부터 보존자료나 주조용구들을 정리하기 시작하여,
1982년 술 저장 창고를 月桂冠大倉記念館 으로 바꾸어서 일반에게 공개하였다.
1985년에는 주조용구 6120점이 京都市指定有形民俗文化財 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더하고 있다.

오쿠라 기념관이 있는 거리의 모습으로 보이는 건물들이 다 기념관이다.


아마도 전에는 가운데의 검은 건물이 앞쪽으로 술을 파는 가게가 되고, 뒷편으로 공장과 창고들이었는데 점점 사세가 커 가면서
주변으로 넓어진 것이 아닌가 싶다. 하여간 이 거리는 깔끔 그 자체로, 술이라고 하면 뭔가 지저분한 생각도 드는데,
여기서는 정말 청주의 " 淸 " 자가 어울리는 곳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 날은 왠지 아줌마 관광객이 많았다. 술이 좋아 온 것인지, 그냥 술의 역사를 보고 싶어 온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밖에 내어 놓은 술을 발효 시키던 커다란 통 앞에서 너무 기뻐하며 기념 사진을 찍는다.

술을 만들던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실의 용구들.
뒷편의 그림들을 보면, 일본이라는 나라가 우리나라보다는 남쪽에 있어서 덥고 습한 날씨가 많아서 그런지, 공장 내부도 열기가 심하니
이런 그림에 나오는 작업인들의 옷차림새가 참 시원해(?) 보인다.

이 사진은 술을 만드는 쌀을 보통 밥하는 쌀에 비교해서 어느 정도 표면을 깎아내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대표적인 쌀을 적었는데,
왼쪽의 그림부터 일반 밥을 위한 유명한 쌀에는, 코시히카리(
コシヒカリ 1956년 育成, 新潟縣),  히토메보레(ひとめぼれ 1991년 育成,
宮城縣),  사사니시키(ササニシキ 1963년 育成, 宮城縣),  니혼바레(日本晴 1963년, 滋賀縣産이 유명) 를 들 수 있다.


그 다음 普通酒에는 니혼바레를 사용하였고,
그 다음의 긴죠슈(吟釀酒)에는 야마다니시키(山田錦 1936년 育成, 兵庫縣) 와 고햐쿠만고쿠(五百萬石 1956년 育成,
新潟縣) 가 사용된다.
마지막 최고의 술인 다이긴죠(大吟釀)에는 야마다니시키이다.

오른쪽의 사진은 야마다니시키의 현미를 60% 정도 깎은 것과 40% 정도 깎은 것을 보여준다. 거의 반 토막으로 빚는 술이니 비쌀 수 밖에...

이렇게 술에 등급이 생기게 된 것은 1920년대부터 개발을 착수해서, 1930년대에 정미 기술이 발달하고, 1970년대부터는 온도관리 기술이
진보하여, 서서히 일반 시장으로 유통이 되고 본격적으로는 1980년대부터다.


그러니 위의 쌀 육성년도와 비교해서 보면, 70년대 이전까지는 보통 주조 공장 근처의 쌀을 이용해서 만들다가 품종이 다양해지면서
일부 품종이 술에 적합하다고 소문이 나고 집중적으로 사용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니 지금처럼 아주 대단하게 보이는, 세세히 술 향기가 어쩌구 맛이 어쩌구 하며 따지는 취향은 2 -30년의 역사일 뿐이다.

육성 연도가 제일 오래 된 야마다니시키(山田錦)는,
메이지 시대 이후 근대적인 품종개량기술이 도입되면서 효고현에서 사카마이(酒米, 술 만들기에 적합한 쌀) 개발에 집중한 결과이다.
1923년 효고현립농사시험장(
兵庫縣立農事試驗場)에서 어떤 두 품종을 교배해서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이 縣의 남동부에 있는 요카와쵸(吉川町)를 중심으로 재배가 되고 있다.


일본의 다른 곳에서 재배를 하고 싶어도 지역차가 있기 때문에 왠간해서는 이곳처럼 최상의 품질을 기대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야마다니시키가 술에 적합한 최상의 품종이란 것을 세상에 알린 곳은
효고현 고베(神戶) 근처에서 1659년부터 주조업을 해 온 " 키쿠마사무네(菊正宗) " 란 회사다.


1891년부터 이 지역에서 계약재배를 해 왔는데 아마도 야마다니시키의 母係에 해당하는 야마다호(山田穗)라는 품종이
이전부터 재배되어 왔고, 새 품종이 나오면서 독점권을 가지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위에 말한 주조업의 발전과 더불어 소문 소문에 효고현産 야마다니시키는 전국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왼쪽의 사진은, 1910년 고안되어서 實用新案의 등록을 한  " 컵이 붙은 작은 병(コップ付き小ビン) " 으로 당시의 기차역에서

판매한 제품이다. 이로 인해 전국적으로 겟케칸 이라는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토의 일부 주조회사에 불과했을 텐데.  

오른쪽의 이름이 쓰여진 술통들은 코모타르(菰樽, 菰冠)라고 불리는 것들이다.


코모타르 라는 말이 생긴 연유를 찾아보면,
에도시대(江戶 1600, 1603 - 1867)에, 에도에 비교해서 카미가타(上方)라고 불리는 오사카와 교토 부근 지역에서

에도로 술 운반을 많이 하였다. 처음에는 육상으로, 말의 등 양쪽에  二斗樽(36리터, 대략 높이 50cm, 직경50cm, 45Kg)라 불리는

나무 술통 두 개를 실어서 하다가, 중기 이후에는 해상운반이 주류가 되어 더 큰 四斗樽(72리터, 높이60cm, 직경60cm, 85Kg)로 하였다.


그런데 유명 술 산지인 나다(灘, 兵庫縣 神戶市),  이타미(伊丹, 兵庫縣 伊丹市),  후시미(伏見, 京都市)의 술통들은
" 코모카부리(菰冠
り) " 라고 해서 지푸라기로 얇은 가마니를 만들어 술통 표면을 덮어 씌웠다.
운반중에 깨지는 것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지만, 다른 술 가게와 구별이 쉽도록 상표를 쓰거나 불로 지졌다.

그래서 이런 코모카부리 를 한 술통은 뭔가 다른 귀한 술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서

나중에는 음식점등에서 아예 가게 앞에 이 술통들을 장식 삼아 놓고 가게의 인지도를 높였다.

 

사실 현재에는 이런 불편한 포장을 하지 않고 간편하게 병이나 캔, 팩을 사용하면 되는데, 아직도 이런 모양이 선호되는 때가 있다.
일본에서 예전부터 신성한 일을 치룰 때는 神에게 술을 바쳤는데, 당시의 포장 방법이 이런 것이었으니 그 습관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다.
일단 신에게 바치고 뚜껑을 열어 참석자들에게 그 술을 돌리는데, 뚜껑 따기를 좀 거창하게 한다.
" 카가미아키(鏡開き) " 라고 해서 미리 원반의 뚜껑을 본체에서 떼어 놓아 살짝 덮여진 상태로 해 놓고,

주최자가 紅白의 리본을 달은 나무 망치로 힘차게 뚜껑을 내려치면 반으로 갈라지면서 호탕하게 술이 사방으로 튄다.
이 상황 자체가 새로운 출발을 할 때 소원 성취, 건강 행복 등을 기원하는 것이다.  

 

주조 회사에서는 신년이 되면 코모타르를 진쟈(神社)에 헌납하여 자기네 제품 이미지도 높이고, 카가미아키에 사용되면 더불어

소원성취하기를 의도한다.  그리고 일반용으로 판매를 하여 신축가옥의 완성일이나 창립기념일, 결혼 피로연 등에서 사용된다.

왼쪽의 사진에서 둥그렇게  걸려진 것은, 스기타마(杉玉) 또는 사카바야시(酒林) 라고 불린다.
삼나무의 잎을 잘라 만드는데, 주조 공장이나 가게에서 새로운 술이 만들어졌을 때, 이를 만들어 처마 밑에 달아 사람들에게 알린다.
처음에는 녹색을 띄지만 점차 말라서 이런 색깔이 나오면, 이런 시간의 경과만큼 새로운 술도 더욱 좋게 숙성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원래는 酒神에게 감사를 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스기타마의 뒷편 벽 문 위에 있는 것은 카미다나(神棚)라고 한다.
神道의 神을 믿는 각 집이나 사무실 등에 설치되는데, 주로 남쪽이나 동쪽을 바라보고 이렇게 천장 가까운 높은 곳에 모셔진다.
주로 이세진구(伊勢神宮)나 우지가미(氏神,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믿고 모시는 神)의 신위를 놓는다.
神이라는 영역까지 높이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의 제사 때나 볼 수 있는 조상의 신위를 늘상 모시는 것과 비슷하다.

사당이 집안으로 들어왔다고나 할까...


신위 주위로 사카키(
さかき)라는 나무의 잎을 꽂아두고 한 달에 두 번 갈며, 기본적인 공양물로는 쌀, 소금, 물, 술 이다.
그리고 카미다나 앞에서는 " 두 번 절하고, 두 번 박수 치고, 한 번 절(二禮二拍手一禮) " 로 배례한다.  

오른쪽의 사진은 기념관 가운데 마당에 있는 우물이다. 술맛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금줄이 쳐져 있다.

여기는 오쿠라 기념관에서 나와 근처에 있는 다른 주조 회사의 전시관을 찾았다.
" 키자쿠라(黃櫻) " 란 술을 만드는 회사로, 1791년 창업한 松本酒造 회사의 分家로 나와 1925년에 창업하였다.

 

보면 대개 그만 그만한 규모로 술을 만들어 왔지만,
세상의 흐름을 잘 타서 특히나 TV광고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인지도가 달라지고, 회사도 커진다.
이 회사는 1955년 " 캇파(河童
かっぱ) " 를 CM캐릭터로 등장시키면서 지금까지도 캇파란 말을 들으면 키자쿠라가 생각나게 만들고 있다.

 

캇파는 원래 일본의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하천변에 살면서 근처의 사람이나 동물에게 해를 끼치는 요괴이다.
아이만한 키에 등에는 거북이의 껍질 같은 것이 있고, 머리 위에는 물을 넣을 수 있는 접시가 있단다.
아무리 봐도 별로 귀엽지 않은 생김새인데, 당시의 유명한 만화가인 시미즈 콘(淸水崑 1912-1974)이 " 週刊朝日 " 에 연재중인
"
かっぱ天國(1953-1958) " 에서 귀여운 모습에 사람보다도 더 순수함을 지닌 대상으로 그려 인기를 모았다.
그래서 이것을 이 회사에서 술과 엮어서 광고를 내어 성공하였다.


캇파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할 수 없지만, 인간 세상에 동화된 이상 남녀 캇파로 사람의 행태를 그대로 그려 내었다.  
왼쪽의 사진은 이 회사에서 만드는 여러 술들이다.
이 편에는 비싸지 않고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제품들이고, 그 옆으로 갈수록 가격도 오르고
제대로 술맛을 즐기는 사람들을 위한 댓병들이 술들이 줄지어 있다.

오쿠라 기념관에서 키자쿠라 회사 전시관으로 가는 길목에 있던 건물이다.
주위의 보통 집들과는 좀 다르고, 그 앞에는 코모타르도 있고 해서 술을 파는 가게인가 싶어서 들어가니 한 쪽 벽에 이런 진열대가 있고,
다른 쪽에는 사람들이 앉아서 좀 뭔가를 먹는 것 같았다.


이 때는 대충 이렇게 구경만 하고 나왔는데, 나중에 보니 이 곳은 " 후시미유메코보(伏見夢工房) " 라는 회사이다.
이는 후시미 지역이 " 중심시가지활성화법(1998년) " 에 의해 적용 지역으로 결정 되면서,
상점가와 주조회사 들이 참여해서 2002년 발족시킨 곳이다.


일본의 상권이 점점 교외로 나가고, 시내 중심부는 빈 상점이 늘어가며 공동화가 되기 때문에
국가 보조를 받으며 어떻게든 살려내야 하는 것이 이런 회사의 의무이다.
주민이든 관광객이든 발길이 끊이지 않게 여러 행사들을 기획하고, 거리의 모습을 바꾸고, 교육도 시키고...
편하게 휙 갔다가 오는 관광지에는 남모르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머리 싸매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는 버드나무 뒷편에 오쿠라 기념관이 있는, 하천의 건너편이다.
오른쪽의 지도를 보면 굵고 파란 부분이 본래 강인 우지가와(宇治川)이고,
가느다랗고 파란 부분은 후시미죠(伏見城)을 지을 때 성 외곽에 일부러 만든 방어용 하천이다.


이 하천의 한편에, 지도에서 보면 알아보기 쉽지 않지만 빨간색 글씨가 있는 곳이 이 사진을 찍은 곳이다.
참고로, 후시미죠는 지도 윗편의 초록색 부분과 철도선이 지나가는 가운데에 있다.

여기는 딱 보기에 어느 집 벽면에서 물이 나오는 것 같지만, 예전부터 유명한 " 시라기쿠스이(白菊水) " 라는 샘물이 솟는 곳이다.

예전부터 어느 주조회사가 이 물로 술을 만들었다는데...  그래도 왠지 집 옆에 이렇게 있는 것은 좀...

 

오른쪽은 京阪本線의 후시미모모야마역(伏見桃山驛)이 있는 건널목이다. 열차가 오기 때문에 빨간 신호등이 켜지고 차단기가 내려져 있다. 제대로 된 2차선 도로가 안 되는 길에, 집들도 다다닥 붙어있는데 또 철길이라니 ?   좀 황당한 곳이었다.

후시미모모야마역에 두 대의 열차가 들어와 있는 장면을 운 좋게 찍었다.
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이런 곳이 일본에 또 있을까 싶다. 플랫포옴이 대부분 집들의 외벽에 붙어있을 정도로 간격이 엄청 좁다.  
낮에는 확실하게 시끄럽지만 밤에는 열차가 다니지 않으니 그나마 잠을 청하고 쉴 수가 있겠다.

후시미모모야마역 근처에 있는
" 소혼케 스루가야 후시미 혼포(總本家駿河屋伏見本鋪) " 라는 가게로, 현재의 요캉(羊羹 양갱)을 만들어 낸 곳이다.

요캉은, 요캉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과자가 만들어진 시점에는, 팥에다가 밀가루나 갈분(葛粉)을 섞어서 찐 무시요캉(蒸羊羹)이었다.

지금까지도 이와 비슷한 제품이 나오는데, 우이로(ういろう)라고 불리는 나고야(名古屋市)에서 유명한 떡과 같은 과자가 있다.

그런데 이와 다르게 팥 끓인 물에다 한천을 넣어 굳혀서 만들어낸 과자는, 무시요캉보다 보기에도 반지르르 윤기가 흐르고

입안에서도 탄력있게 씹히니 시대의 흐름을 타고 " 새로운 요캉, 진짜 요캉 " 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1461년 이곳 교토 후시미에서 과자 가게를 시작한 스루가야에서 1589년 무시요캉을 개량한 " 후시미요캉(伏見羊羹) "을 만들어,

토요토미히데요시가 주최한 茶 모임에서 칭찬을 받았다. 이후 며칠을 보존할 수 있도록 한천과 설탕이 들어간 제품 개발을 시작하여

1658년경에 일반 시판을 하였다고 한다.

 

사실 당시 대부분의 과자에 들어가던 감미료는, 아마즈라(甘葛)라는 식물을 끓여서 졸여낸 것으로, 설탕이나 꿀은 서민은 구경도 힘든

귀한 단맛이었다.  제대로 설탕을 사용하게 된 것이, 1613년 지금의 오키나와인 류큐(琉球)왕국을 지배하면서부터 공급받았으니,

17세기 중반까지 수입 설탕이 들어간 요캉은 권력자의 茶 모임에서나 귀중하게 맛 볼 수 있었다.

 

이 때 만들어진 요캉을 일명 " 네리요캉(煉羊羹) " 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 연양갱 "과 같다.  煉 은 팥을 끓이는 과정의 정도를 말한다.

이 외에 " 미즈요캉(水羊羹) " 이라는 것이 1861년 에도의 다른 과자가게에서 만들어졌다.  네리요캉보다 한천을 덜 넣어서 표면에 물기가

많아지니 붙여진 이름이다. 덜 탄력있고 촉촉한 느낌이 좋아서 여름에 차게 식혀서 먹으면 더 시원하다.

 

오른쪽 사진의 큰 요캉이  " 고다이후시미요캉(古代伏見羊羹) " 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것이고,

작은 것은 " 미니바리에(美似芭里繪) " 라는 이름의  세 가지 맛이 섞인 셋트 중의 하나이다.

 

생각해 보면, 오사카에서 살 때, 한국으로 선물을 보낼 때면 근처의 백화점에서 꼭 이 요캉을 사서 보냈다.  당시에는 가게 이름도 모르고,

요캉의 역사도 모르고, 그저 보기에 한 셋트가 예뻐 보여서 샀다. 나 먹자고 사는건 왠지 비싸서 머뭇거렸는데... 그런 요캉을 우연히 여기서 만나니 이 또한 추억이 될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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