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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교토(京都)의 단풍

 

 
 
아오노코묘지(栗生光明寺)

가을이라고 해도 날씨가 계속 따뜻해서 언제 단풍이 들고 겨울이 될까 싶더니 집 근처 나무들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다. 예쁘게 물들고 떨어질 준비를 하는 나뭇잎들을 보며 그 언제던가...
1998년 11월... 나라(奈良)와 교토의 단풍을 보러, 새벽 전철을 타고 졸면서 가서 밤늦게까지 하나라도 더 보겠다고 헤매고 다니던 기억이 새롭게 여겨진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이 다시 오지 않기 때문에 그런가.. 사람들 뒤를 줄지어 다니며 피곤하게 구경하던 그 시간이 그립고 생각할수록 설레인다.
다시 볼 수 있을까... 나고야에서 교토까지 3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도 선뜻 나서기에는 걸리는 일이 너무 많다.
그러나 다시 한번 교토의 단풍에 기대를 하며 2004년 11월 말 이틀간 나서 보았다.


 
토후쿠지(東福寺)
산중턱에 자리잡은 토후쿠지의 넓은 경내의 한편에 계곡이 있고 그 주위로 단풍나무가 심어져 있다.
어디를 보아도 붉게 불타는 계곡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과 돈을 들여서 가는 여행이라 단풍이 좋은 곳을 찾아가야 하는데 어디가 좋을까. 우선은 책방에서 "京の紅葉紀行"이라는 책을 샀다. 대부분 교토의 절과 진쟈(神社)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사진 한두장씩으로 나와 있으니 책만 보고 가서 성공할 수 있을까 싶다. 그래도 책의 어느 한 구절 "교토의 단풍은 이곳이 극치"라는 말에 "속아서"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토후쿠지(東福寺)이다.

관광객이 많은 토,일요일이 지나 월요일이니 사람들이 덜 하겠지 싶었는데, 토후쿠지로 들어가는 도로가 자동차 주차장이 되어있다. 절 안의 주차장까지 들어가려면 해 떨어져도 안될 것 같아, 어느 도매시장 주차장에 세워놓고 한참을 걸어가니 멀리 절 입구가 보이는데 바글바글하다. 그 사람들 따라 입장료 내고 들어가 어깨 부딪혀가며 정신없이 줄지어 다니다가 나오니 도대체 여기가 어딘가 싶다. 절이라면서 본당(本堂)은 어딘지, 어떤 절인지, 여기 왜 단풍나무가 있는지... 점심도 못 먹고 여기까지 와서 먼지만 먹고 가는구나...

역시 교토구나... 건물이나 정원이나 가게들이나 뭔가 예쁘게 잘 가꾸어 놓았지만, 무지하게 사람이 많아서 천천히 눈과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곳이 절대 아닌, 줄서서 먼지구덩이에서 사진 몆 장 찍고 가야하는 곳. 처음 교토에 와서 받았던 인상이 아직도 변하지 않았구나 라는 실망감... 피로함... 다른 곳을 둘러보기 보다는 그저 쉬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하다.


난젠지(南禪寺)
입구의 三門에서 본당을 바라보며

전날의 피로가 좀 풀리고 나니 예전에 가보았던 난젠지(南禪寺)가 생각이 난다. 단체 관광객들이 아침부터 움직여도 키요미즈테라(淸水寺) 쪽으로 먼저 갈 것 같아 우리는 이곳을 가기로 했다. 아침 8시반에 주차장도 횡하니 비어있고, 경내에도 아침 햇살에 작품 사진을 찍으려는 아저씨들이 조금 있을 뿐이다. 경내를 천천히 다니며 아침 공기에 심호흡도 크게 해 보며 다닐 수 있는 여유.

그냥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붉게 물든 단풍나무들이 구름 사이에서 한 순간 휙 나온 햇빛을 받아 붉은 빛을 힘차게 뿜어낼 때는 숨이 콱 막힌다. 아찔하다. 이제야 처음으로 단풍에 어우러져서 가을을 매듭짓는 것 같다.

사람들이 밀려들기 시작하니 이 감격이 사라지기 전에 난젠지를 떠나야 한다. 그리고 감격이 이어질 만한 곳을 찾아야 하는데... 교토의 동쪽은 올 때마다 사람이 많아 금방 지친다. 그러나 서쪽은, 예전에 갔던 아라시야마 부근은 한가롭다는 느낌이어서, 서쪽의 어딘가에 단풍이 좋은 곳이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하며, 한편으로는 더 이상 책의 정보도 믿을 수 없기에 "교토의 단풍"을 포기한 마음으로 어느 절을 찾아 갔다.


아오노코묘지(栗生光明寺)
이 사진은 다른 사진과는 달리 필름의 선택이나 노출 조절이 잘 되지는 않았지만
보면 볼수록 도리어 이 길의 분위기를 잘 나타낸다.

교토시의 서남쪽, 아오노코묘지(栗生光明寺).
정확히는 교토시가 아닌 교토후 나가오카쿄시(京都府長岡京市)에 있는 절이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니 본당으로 가는 계단 길이 우리가 산 책의 표지에 나온 곳이다.

그리고 이 길 옆으로 난 다른 길을 올려다 보는 순간, ~~ 아~~ 언젠가 이 길을 걸어본 것 같다~~  
옅은 구름이 낀 하늘 아래 시간이 무르익어 나타내는 빛깔로 단풍잎들이 이 길을 조용히 감싸안는 것 같다.
난젠지에서 본 빛을 발하던 단풍과는 달리,
세상의 빛, 세상의 번잡함을 보듬어 안고 고요히 길을 열어주고 있다.

 
아오노코묘지의 본당 옆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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