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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을 수 없는   교토(京都)의 단풍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시각을 달리 해서 보아라, 생각하거라'라고 인생의 선배들에게 여러 번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 이런 말은 한 귀로 들어서 다른 귀로 흘려 보내거나, 머리 속에서 조금 왔다 갔다 하다가 어느새 잊어버리고 만다.  그런데 이 말을 무언가 문제가 있던 상황은 아니었지만, 오래간만에 실감나게 느낀 때가 있었다.
1998년 카메라를 사 들고 난 후부터, 그 이전에는 평범하게 보이던 것들이 새록새록 다시 보이기 시작하는데, 사진을 안 찍을래야 안 찍을 수가 없었다.   내 주위에 사시사철 펼쳐지는 자연 환경이 어떤 면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었던 것도 있어서 더더욱 카메라를 들이대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나라에서도 본 것일 수도 있지만 아무 생각 없이 대했던 꽃이나 나무들이 여기서는 외국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해서 더 신기하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봄과 여름을 주로 꽃을 찍는데 다 보내고, 가을이 되어 단풍을 한 번 멋있게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때까지 '단풍'에 대한 기억은 한 번도 가서 본 적이 없는 설악산의 단풍과 뉴스에서 들은 장시간의 고속도로 정체현상이 전부였다.   사는 데 바빠서인가... '단풍놀이'는 돈 있고, 시간 많은 사람들의 여유라고 생각했다.

아라시야마의 地藏院.

 

사실 여기서도 바쁘게 일하는 사람을 붙들고 보러 가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는데, 다행히 단풍이 한창인 11월21일 경에 3일 연휴가 있어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녀 보기로 마음먹었다. 소위 유명 관광지를 돌아다녔는데, 교토(京都)의 히가시야마구(東山區)와 서쪽의 아라시야마(嵐山)와 사가노(嵯峨野)지역,  그리고 나라(奈良)의 나라공원이 역시 봄에는 벛꽃과 함께 가을에도 단풍을 잘 가꾸어 놓았다.
3일 동안 단풍에 미쳐서 돌아 다녔지만 마음이 급해서 일까,  초보자라서 그럴까 별로 잘 찍은 사진이 없다.  사진으로 남은 것은 얼마 없지만 우리 머리 속에는 '단풍'에 대한 이미지가 꽉 박혔다. 그 동안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 나뭇잎 하나 하나가 이토록 마지막 힘을 다 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뺏어 버리다니... 보고 있노라면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가을을 위하여 여름이 있었던 것일까. 여기저기 계속 걸어서 다니다가 사가노(嵯峨野)의 常寂光寺라는 절에 해가 지고 어두워지기 시작할 때 들어가게 되었는데, 올려다본 단풍이 그 어둠 속에서도 너무 멋있어서 다음 날 아침 9시경에 다시 찾아왔다. 산기슭에 자리잡은 절 전체가 아침 햇살을 받아서 붉게 물들어 있는데... 장관이었다.

아라시야마의 常寂光寺.

 

 

 

常寂光寺의 입구 부분이 언덕으로 되어있고, 전부 이끼가 끼어 있는데 단풍잎이 조금씩 떨어져 있다.

常寂光寺.

아침에 기를 쓰고   두 시간 반 걸려서 온 보람이 있었다.   겨우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주위를 둘러보니 역시 '할아버지 부대'가 있다.  유명한 곳이라면   반드시 볼 수 있는 할아버지 카메라맨.  사진 찍기에 좋은 자리는 전부 다 차지하고 비켜줄 생각을 하지 않는데, 대단한 정열들이다.

 

 

 

 

常寂光寺의 지붕 기와가 특이하다. 사천왕사의 얼굴 모양이라고나 할까.

사가노의 어느 집 풍경. 아무도 없는지 문을 닫아걸었지만 집 뒤의 단풍이 우리를 반겨준다.

이렇게 3일간   단풍에 미쳐보기는 처음이다.    아마 앞으로 이런 여유를 부리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진을 좀 더  잘 찍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컸지만, 한국에 돌아가면 '우리만의 멋있는 곳'을  꼭 찾아내겠다고  굳은(?) 결심도 했다. 유명한 곳이 아니더라도 동네 뒷산, 집 주위의 나무들을 보면서 신비한 세계 속으로 들어가 만끽하고 싶다.  내 나라에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이나 아름다움을 모르고,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고 나서 그런 것들을 절절히 느끼다니... 무관심이 병이다.
사실 일본의, 교토의 단풍이 정말 최고로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사가노의 한 농가 앞에서 이런 인형을 팔고 있었다. 머리에는 고깔을 쓰고 벼 이삭을 조금 꽂았다.

사가노의 大河內 山莊.   우리가 찍은 사진이 아니라 이 곳의 선전용 엽서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는 아마도 TV선전이나 광고 포스터 때문일 것이다. 단풍나무를 잘 가꾸어 놓은 어느 한 곳을 전통적인 가옥과 더불어 화려하면서도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해 찍은 사진에 다들 반하는 것이다.  사진 그 자체도 질감이 너무 좋아서 실물을 보는 듯, 손에 잡힐 것만 같은 깨끗함이 가을 하늘의 이미지를 느끼게 한다거나 할까.   이런 것들이 일본인들에게 자신의 나라나 전통에 대해서 유별나게 애착과 자만심, 그리고 자존심을 느끼게 하는 지도 모른다.  사실 둘러보면 별 것 없지만, 그들에게는 끝까지 지키고 싶은 생명과도 같은 자연과 문화 유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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