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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 아줌마의 나들이 야마토코오리야마(大和郡山 市)

 

2006년 가을, N 아줌마가 친구분들과 같이 오사카(大坂)의 동남쪽에 있는 나라현(奈良縣),
그 북부에 위치한 야마토코오리야마(大和郡山市)시에 나들이를 가셨다.
인구 9만명 정도에 우리나라 서울의 강남구 만한 크기의 작은 市로, 우리도 근처까지는 가 보았지만,
유명한 나라시(奈良市)와 법륭사 사이에 끼여있는 위치여서 그리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주변 도로만 스쳐갈 뿐...
아줌마가 보내주신 사진을 보니 작지만 예전부터의 전통 가옥들이 잘 보존된 조용한 느낌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줌마가 먼저 찾은 곳은, 코오리야마 城이다. 정확히 하면 성이 있던 자리라고 할까..

역사적으로 보면 1580년 정도부터 시작해 城主가 여러 명 바뀌면서 城으로서의 모양새를 갖추었는데,
메이지 시대에 들어 에도시대의 제도를 파괴하면서 이 성도 1870년 부숴졌다.
현재는 전부터 있던 돌축대(石垣)와 성 주변에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파 놓은 水路(外堀), 흙으로 쌓은 성벽(土居)이 남아있고,
1980년 복원한 성의 정문(追手門), 주위의 망루(東隅樓, 多聞樓)가 있다.

그리고는 대부분의 성터가 두 군데의 고등학교로 나뉘어 사용되기 때문에 그리 볼거리가 많은 곳은 아니다.
그러나 1880년부터 심은 굵은 벚나무들이 성 주위를 감싸고 있어 日本櫻名所百選에도 뽑힐 정도로 벚꽃 구경은 좋다고 한다.


위의 건물은 1908년 나라현 최초로 지어진 현립도서관으로 원래는 나라공원 안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970년 이 자리로 이축되어 시민회관으로 사용되는 곳이다.
목조 2층인데 외관은 전통 양식(入母屋造, 千鳥破風, 平屋建, 切妻造의 翼部)으로 지었으면서
내부는 서양식으로 되어 있어서 나라현 내에서는 보기드문 近代和風 건축이라고 한다.

 

 

 

 

성 내부로 들어오는 정문인 追手門
어느 성이나 이런 문은 정말 참 튼튼하게 크게도 지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처음 보면, 뭔가 자잘한 것만 있을 것 같은 "일본"이 다시 보인다.

 

 

 

 망루인 多聞樓.

 흙으로 쌓은 담인데 이 앞의 도로는 성터 가운데를 지나가고 있다고.

 

 

 

 

城이 있는 곳의 근처 마을들은 죠카마치(城下町)라고 불리는데,
이곳에도 전통 주택들이 보존되어 그 옛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을은 대략 주민들을 직업별로 모여살게 하여 구분되어지기도 하였다.

여기에 보이는 집은 어떤 장사를 하였을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도 손질을 잘 하고 있으니
그 후손들이 참 대단하다.
얼핏 보아서 2층 집으로 보이지만 실제 2층은 다락방과 "츠시(つし)"라고 불리는 창고가 겸해 있다고 한다.
통풍이 잘 되게 창문을 크게 하고 비가 들이치지 못하게 처마도 길게 뽑았다.

 

 

 

손질을 못하고 그냥 놔둔 기와에는 풀이 자라고 이끼가 핀다.

 지붕마다 굴뚝 역할을 하는 곳이 있다. 집안에서 불을 때면 천장 높이 난 바람 구멍으로 올라가니 주위가 시커멓다.

 

 

 

 

 

 

 

 

 

 

 

이어진 두 사진은 간장을 만드는 오래된 가게의 모습이다.

 

어느 길 모퉁이의 집인데, 아래층은 그런대로 옛모습인데 윗층만 벽면에 타일을 붙이고 창문도 현대식으로 갈았다. 왜?

 

 

 

 

이곳은 "혼케 키쿠야(本家菊屋)"라는 와가시(和菓子) 가게이다.

아줌마 말에 의하면, 오사카에도 이 가게가 있는데, 이곳의 모나카(最中)가 맛이 있어서 시내에 갈 때면 들러서 꼭 샀다고 한다.
또한 전에 우리가 살던 동네의 전철역인 綠地公園역의 구내 상가에도 이 가게가 있는데 기억하느냐고..

생각해 보니 이사를 하고 동네 구경하며 들어간 이 가게에서 처음 모나카를 발견하고 먹고 싶었는데
그 가격에 입만 쩝쩝 다시고 나온 기억이 있다. 1개에 200엔이 넘는데 도저히 손이 떨려서 살 수가 없었다.
이후 그저 한 두 번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기 위해서 사 본 적은 있어도 나 먹자고는 영...
 
그런데 우리가 오사카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아줌마가 이 모나카를 한 상자 보내주셨다.
너무 감격해서 잘 먹고 그 상자는 잘 보관을 하여 사진까지 찍어두었다.
그런 가게의 본점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아줌마도 이번에 처음 알고 놀랐다고.

사실 오사카에 있는 가게들은 이곳에서 독립했기 때문에 이름만 같이 쓸 뿐 이제는 연관이 없다고 한다지만...
1589년부터 이곳에서 이런 가게가 시작되었다는 뿌리는 지울 수가 없는 것 같다.
가게는 정말 보기에도 낡았고 무너질 것 같지만 그래서 더 시니세(老?, 오랜된 가게)란 연륜을 나타낸다.

 

 

 

 

 

이 거리는 예전에 염색을 하던 가게들이 있던 곳으로 길 가운데 폭 1미터 정도의 수로가 있다.
이 수로는 城의 외곽에 있는 수로(外堀)와 이어지고 그 옛날 여기서 염색된 천이나 실을 씻었다고.

아줌마가 거리를 다니면서 놀랍다고 한 것이 너무나 깨끗하게 청소를 잘 했다는 사실이었다.
현대식 간판도 잘 보이지 않고 경관보존지구(景觀保存地區)답게 대부분 깔끔하게 가꾸어 놓았단다.
그러나 어쩌면 이것이 답답한 현실인지도 모른다. 예전에야 이런저런 산업으로 번성했겠지만
지금은 작은 지자체 도시로서 별다른 산업없이 과연 자급자족이 될까 싶다.

 

 

 

아마도 경관보존지구 지정 이전에 예전의 집을 유지할 여력이 없었는지 창고만 남기고 부숴 버린 집터이다. 옛 것을 유지하는 것은 정말 대단한 비용과 자부심이 필요하다.

 이 건물은 메이지 시대에 전통 주택을 부수고 서양풍으로 지은 것이란다. 좀 다른 집들과 어울리지 않지만 지금은 소아과로 사용된다.

 

 

 

 

 

 두 사진의 건물은 에도시대부터 1956년의 매춘방지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번성하던 유곽(遊郭)이란다.
근처에 이런 곳이 많았지만 주택가로 변모하면서 점점 사라져갔다.

 

 

 

 

 

왼쪽의 사진은 城터에 있는 천수각 자리의 돌축대이다.

 

 

오른쪽은 하수도 맨홀 뚜껑이다. 어항속의 금붕어 모양인데 이 도시가 금붕어 양식에 있어서 일본에서 유명한 곳이기 때문이란다.
1700년대에 높으신 분(?)께서 이 곳에 오게 되었고, 신하 중에 한 사람이 관상용으로 가져온 것을 지역 사람들이 신기하게 여겨
금붕어 사육이 유행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양식업은 이루어지며,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고 싶어서일까,
매년 "금붕어 건져올리기 선수권 대회(全國金魚すくい選手權大會)" 를 열고 있다.

 

 

금붕어 건지기는 대개 어디선가 동네 마츠리가 열리면 반드시
노천 장사가 열리고 한 두 군데 꼭 있다. 한 번에 200엔이던가?를 주면 작은 플라스틱 그릇과 "포이"라는 도구를 주며 "마음껏 담으세요" 란다.
그런데 정말 말만 좋지, 이 포이는 둘레는 플라스틱이지만 가운데 하얀 부분이 그냥 얇은 종이이니 물에 들어가면 젖어서 찍어지기 일보직전인데 요리저리 빠져가는 금붕어를 몇 번 건드리면 금새 다 찢어진다.

 

금붕어 건져올리기

건지는 도구인 "포이"

 

이러니 어디 마음대로 담을 수 있나.. "사기다" 라면서 돌어설 수 밖에.
재주 없는 사람에게는 "사기" 인 이것이 "선수권 대회"가 된다니 과연 진짜 잘 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한 사람이 3분간 포이 하나로
30 마리 이상을 건져야만 1, 2등을 하니 神技이다. 초보자는 그저 금붕어 좇을 생각만 하며 이리 저리 포이를 마구 움직이는데,

神技의 비결은
포이를 처음에 물에 다 담가서 적신다. 부분적으로 적셔지면 그 곳부터 찢어진다.
포이를 물에 담글 때는 약 30 도 경사로 살며시 물의 저항을 덜 받게 넣는다.
물속에서는 평행이동을 한다.
금붕어를 건질 때는 머리부터 포이에 닿게 한다. 마구 움직이는 꼬리부터 닿으면 찢어진다.
건져 올리면서는 아예 꼬리가 포이 위에 올라오지 않을 정도로 한다. 그 만큼 수면에 가까이 그릇을 대고 재빠르게
머리와 몸통 부분에만 포이를 들이댄다.
포이를 들어올릴 때는 역시 경사지게 하여 거의 금붕어가 순식간에 물에서 그릇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모양새가 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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