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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탈하고 아쉬운 야마나카온센(山中溫泉)

 

 


우리의 목표였던 "유바타케"이다. 사진만 좋지 실제로는 배고픈 등에가 먹이를 기다리고 있다.
겨울에는 주위에 눈이 많이 쌓여 탕에 들어갈 맛이 날 것 같다. 등에도 없고...

여름이라 할 수 있는 기간 중 50여일을 장마로 보내고 8월부터 더위가 시작된 작년과는 달리, 올해는 6월부터 아주 가끔 소나기 몇 번 내리고 연일 34-5도의 무더위에 시달리다 보니 멍하니 아무 생각 없다. 그저 지붕의 복사열로 낮이고 밤이고 뜨거운 이 집을 탈출하고 싶다.
휴가 기간을 정하고 어디로 갈까... 어디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일본에서의 여행은, 온천지의 여관이나 호텔에서 묵으면서 그 근처 관광지 구경하기, 아니면 좀 장비를 갖추어서 오토 캠프장을 찾아 묵으면서 근처 구경하고 온천에서 목욕하기. 바다로 간 사람들도 해수욕 후에는 근처 온천에서 씻기도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온천은 모든 여행의 목적지거나 쉼터이다.
우리도 목적지를 정했다. 이시카와현(石川縣)의 야마나카온센(山中溫泉)이다.
지난 2월이던가, "鐵脘DASH"란 방송에서 이 온천의 어느 노천탕을 보여주는데, " 우와~~ 저기저기~~". 눈이 하얗게 덮인 계곡 한쪽으로 더운 열기가 펄펄 오르는 탕이 얼핏 열 개쯤 보이고 혼탕으로 가족이 같이 들어가서 이야기하는 장면을 보니 당장이라도 가고 싶었다.
보아하니 혼탕이어도 커다란 수건을 가슴부터 무릎까지 두르고 들어가는 곳이니 비키니만 입고 왔다갔다 하는 수영장보다야 남들에게 보여줄 것이 덜해 일단 안심. 거기다 이 지역에서 바다(東海, 일본에서는 일본해라고 함)까지 그리 멀지도 않으니 온천과 바다를 두루 즐길 수 있고, 조금 더 간다면 교토(京都)와 비슷하다는 가나자와(金澤, 이시카와현의 현청 소재지)까지 볼 수 있으니 같은 돈 들여서 세 배의 즐거움...
후후후... 너무나 이상적인 완벽한 계획이었다.


계곡으로 내려가는 층계에서 본 유바타케.

그러나 누군가 나의 이런 생각을 엿보고 시샘을 낸 것 같다.
온천 지역에 점심 때쯤 도착해서 먼저 목욕을 할 것인지 아니면 밥을 먹을 것인지 망설이다가, 밥부터 먹고 천천히 들어가 탕에서 땀 좀 빼다가 나와 나무 그늘에서 낮잠도 자면서 지친 몸을 쉬자고 결정했다.
점심 잘 먹고 "하나츠바키(花つばき)"라는 료칸(旅館)에 도착하여 1인당 2,000엔씩이나 하는 요금을 내니 프론트의 여직원이 수건을 건네주면서 탕에 대해서 설명을 해 준다.
大浴湯 따로 있고, 노천탕 또 따로 있고,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은 "유바타케(湯畑, 탕 여러 개가 주욱 이어져있는 것이 밭처럼 보여서)"로 건물 아래 계곡에 있다고.


노천탕. 실내탕이 있고 바깥으로 노천탕.

먼저 노천탕에 들어가니 뭔가 벌레 하나가 내 주위에서 빙빙 돌며 근처에 앉아 나를 노리는 것 같았다. 보기에 파리와 비슷한데... 뭐 그러려니 하고 드디어 유바타케로 간다!!
계곡으로 내려가 탈의실이 있는 건물로 들어가니 모기향이 켜져있고, 입구 탁자에 스프레이 모기약과 물렸을 때 바르는 약이 놓여져 있다. 산이라 모기가 많은가 보다... 친절도 하지. 이렇게 준비를 해 놓고... 이런 생각을 하며 들어간 탈의실에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다 깨닫지 못했다.
두르라고 받은 수건은 단순한 수건이 아니라 가슴을 죄어주는 부분에 스냅이 여러 개 있어서 사이즈에 맞게 걸칠 수 있었다.

참 편리하게 만들었네... 라며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기습을 당했다. 정체를 파악할 여지도 없이 내 주위를 시커먼 열댓마리가 슁슁 날라다니며 달려드는데 아무리 손을 내저어도 떠나지 않는다.
겁도 나고 피하느라 정신도 없고 해서 탈의실 안으로 다시 들어가니 옆에서 그런다. 이건 사람 피 빨아먹는 등에라고. 평일이어서 다른 사람도 없고 며칠 굶어서 더 달려들지도 모른다고. 기가 막히다.
고속도로 요금에 입장료금에 거금을 내고 들어온 유바타케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철수해야 하나... 그럴 수는 없다는 생각에 입구에 있던 스프레이 모기약을 내 주위로 마구 뿌려가며 탕으로 달려 나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증명 사진 찍고 한번은 탕속에 들어가야지.

등에와의 혈투(?)를 마치고 료칸 건물로 올라오니 들어갈 때와는 다르게 은근히 열이 난다. 이토록 등에가 많은데 2,000엔씩 받으면서 겨우 모기약 하나 놓아두었나.
프론트에 와서 지배인 비슷한 아저씨에게 무슨 벌레가 많아 제대로 탕에 들어갈 수 없었다고 이야기 하니, " 허~ 그게 아마 등에인가~~" 하면서 옆에 있는 다른 직원의 얼굴만 쳐다보며 전혀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자기네들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여름이어서 어쩔 수 없다는 듯 표정도 시쿤퉁... 아~~ 이제는 열이 아니라 폭발할 것 같다.

일본에서 살면서, 진심은 아니어도 겉 행동으로는 친절하게 보이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그래도 많이 보아서 그런지, 이런 상황에서 대충 사람들이 어떤 태도로 나와야 할 지 어느 정도 기대를 하게 된다.
우선은 표정을 나 죽여줍쇼라는 듯 하고, 허리를 깊숙이 굽히며 미안하다는 말을 여러 번 하며, 혹여 동네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일부 환불을 해주겠다는 말까지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너무 사람들을 몰랐다. 어차피 우린 한 번 왔다 가는 뜨내기. 더구나 숙박도 하지 않는 뜨내기에게 허리 굽힐 이유가 없다. 장사도 안 되는데 돈 4,000엔만 벌면 그만. 며칠 있으면 잊혀질거야... 정말 그럴까.. 어휴, 내가 사람들에 대한 기대치를 버리고 마음 비우고 살아야 편하지... 
투덜거리며 나오면서 보니 어느 아줌마 다섯명이 숙박을 하러 막 도착하였다. 뛰어가서 이야기 해 주고 싶었다. 이 유바타케에 들어가려고 1인당 1박에 최소 15,000엔 정도(2명일 때는 18,900-23,100엔까지 하는 료칸이다)는 줄텐데 완전히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야마나카온센의 한산한 중심 거리.


대중 목욕탕과 극장.

천천히 지친 몸을 쉬려고 온 온천에서 오자마자 엉뚱한 일로 진을 다 빼고 나니 한심하다. 이곳의 다른 호텔에서 이틀을 묵기로 했는데 뭐 하며 지내지? 온천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곳에서 무슨 낙으로 있나?
동네를 돌아보니 그저 조용한 시골 동네이다. 중심 거리라고 깨끗하게 만든 곳에는 몇몇 칠기 공예(山中漆器라고 해서 전통이 있다고 한다) 가게들이 있고, 예전부터 있던 대중탕이 새롭게 단장되어 있을 뿐 다니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그외 곳곳마다 낡은 료칸과 호텔이 있는데, 과연 장사가 될까 싶다. 물론 우리가 평일에 와서 그렇지만 휴일에 관광객이 좀 온다 해도 적자투성이일 것 같은 축 쳐진 분위기의 온천 마을이다.

 


호텔 현관에서 나카이상들이 체크인 시간에 맞추어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이래저래 실망한 기분으로 묵을 호텔에 들어가니 생각보다 크고 나카이상(仲居樣, 료칸이나 일본식 호텔에서 시중을 들어주는 여성)들도 친절하게 맞아준다.
방도 좀 낡기는 했지만 깨끗하고, 들어가자마자 나카이상이 녹차를 우려내 준다. 설비에 대해 설명을 해 주고, 식사를 몇 시에 하고 싶은지 묻는다.
그리고는 그때까지 편하게 쉬시라며 공손히 인사를 하며 나간다.  이런 것이 보아온, 들어온, 기대치의 일본식 친절이다.
식사는 바다가 가깝기 때문에 게 한 마리와 회 등이 나왔다. 이곳 해안선을 따라 있는 도시들이나 온천지에서는, 게가 많이 잡히는 겨울이면 하여간 모든 숙박업소 선전이 "게 투성이"일 정도로 게가 유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손님들도 당연히 게를 먹고자 찾아온다. 어찌 되었건 우리를 위해 상위로 올라온 게를 고맙게 먹고 산책을 겸해서 동네의 중심가로 나가 보았다.


동네 진쟈 앞의 노점상과 관광객.

7월25일부터 8월24일까지 저녁 7시45분부터 9시45분까지 매일 밤 여름 마츠리를 한다고 한다고 하니 궁금하다.
가게들은 문을 거의 닫았지만 불은 켜놓아 거리가 밝고 중심에 있는 어느 진쟈(神社) 앞에는 노점상들이 들어서 있다. 휴가철이라 찾아온 관광객들이 각 료칸에서 나누어 준 유카타(浴衣)를 입고 서성거리며 구경하기도 하고 언덕 위의 진쟈에 올라가 참배를 한다. 그리고 무슨 공연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가만 보니, 이것도 무라오코시(村起し, 마을을 활성화 해서 발전)의 한 방법인 것 같다. 이 지역에서 보여줄 것, 수입원이 될 수 있는 것은 온천과 칠기 공예가 전부이다.


진쟈 구경.

온천도 성수기가 있고 비수기가 있으며, 칠기가 엄청 팔리는 것도 아니니, 어떻게 해서든지 관광객 한 사람이라도 더 오게끔 마을을 알려야 하고, 온 사람들에게 뭔가 기억에 남을 것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료칸과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장사도 하고 안내도 하고 그러는 것이다. 아마 이 지역은 우리가 당한 "유바타케" 덕분에 그걸 목표로 오는 사람들이 늘었을 것이다. 다른 싼 곳에 묵더라도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니.
그러나 행정 기관까지 나서서 뭔가 행사는 만들어 내도, 각 료칸에서 손님을 대하는 세세한 부분까지는 이래라 저래라 지도를 할 수 없으니 겉만 번지르르한 헛수고를 하는 것 같다

. 진짜 기억에 남는 것은 "어느 한 순간"인데... 그 순간이 언제일지 모르기 때문에 자기가 손님이 되어서 숙박을 해 봐야 안다.


일본식 호텔 방. 복도 입구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튓마루가 있고 세면대, 화장실, 목욕탕이 따로 있다. 그리고 미닫이 문을 열면 이런 방이다. 보이는 미닫이 문을 열고 나가면 발코니이며 여기에도 의자와 작은 탁자, 냉장고가 있다.

이틀 동안 호텔에서 묵으면서 의외로 편하게 잘 먹고 잘 잘 수 있었다. 아침 저녁 꼬박 꼬박 나카이상이 방에 와서 음식을 차려주고 걷어가고, 저녁에는 식사가 끝나면 다른 종업원이 와서 이불을 펴 주고 아침에는 식사 전에 개어서 오시이레(押入れ 붙박이장) 안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복도에서 사람이 왔다갔다 하는 소리나 다른 방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아 더욱 편하게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런 편함이 체크아웃 시간이 다가오면서 좀 마음에 걸리게 되었다. 내 집에서 내가 밥 해먹으면 아무 걱정 없지만, 이런 시중을 받고 딱 정해진 숙박비만 내고 갸야 할 지 아니면 나카이상에게 조금 코코로즈케(心付け, 감사의 표시로 주는 작은 돈이나 선물)를 건네야 할 지, 한다면 얼마나 해야 할 지, 그냥 돈을 손에 쥐어주는 것도 이상하고 그러면 봉투라도 준비해야 하는데...

뭐 이런 여러 가지 생각하다 보니 너무 복잡하다. 워낙이 이런 것이 없다는 일본인데... 주인이 직접 여러 일을 해주는 작은 펜션이나 료칸에서는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좀 큰 호텔에 묵으니 새롭게 생긴 고민거리였다.


종업원이 펴 준 이부자리. 베개와 요 시트는 새 것이었지만 이불은 몇 번 사용한 것이었다. 요 밑에는 쿠션을 깔아 찬 기운을 막는다.


연회장으로, 단체로 온 손님들은 여기서 작은 사각 탁자를 놓고 밥을 먹는다.
 

 


아침 식사.


나카이상이 상을 차려 주었다.


 첫날의 저녁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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