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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고원(志賀高原)과 만자온천(万座溫泉)

 

2005년의 여름은 너무 더워서 정신이 없었고, 이사 문제로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아 머릿속은 용량 초과로 가끔씩 터질 듯 했다.
드디어 이사 날짜를 잡고, 그 며칠 전 이삿짐 회사에서 미리 보내준 포장 박스를 받으니 전투가 시작된 느낌이었다.
며칠만 더 참자!  땀 뻘뻘 흘리며 지치지만 악을 쓰며 싸고 싸고 또 싸고... 살림살이가 별로 없다고 생각했지만 오시이레(押し入れ, 붙박이장) 속에서 자꾸 자꾸 나오는 물건들에 눈을 흘기다 보니 이런 것들을 사 들이다가 시간이 훌떡 갔구나 싶다.
이사 당일에는 운반 회사 사람 둘이 와서 미리 다 싸놓은 물건들을 후다닥 더 박스에 넣고 트럭에 실어내가니 서너 시간만에 끝났다.
별로 크지도 않은 트럭이 가볍게 떠나는 것을 보며 저거 보내려고 이 난리를 쳤나... 허탈하다.


시가고원(志賀高原)
 橫手山(2305m)의 정상 아래 S자도로에서 본
표고 약1500m의 쿠마노유(熊の湯)라는 온천과 호타르 온천(ほたる溫泉) 부근.

몇 가지 물건만 남은 횡한 집을 둘러보며 우리도 휴가를 떠나기로 했다.
가긴 가는데 어디로 가나... 이사 때문에 계획이고 숙박 예약이고 뭐고 하나도 잡지 않고 그냥 남은 짐 들고 떠나는 여행.
좀 황당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곳이 늘 그곳에 있지 않던가.  나가노(長野縣)의 어딘가 가 보지 못한 곳을 찾아 가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텐트와 담요, 버너, 코펠이 있으니 음식만 산다면 대충 동네 온천에서 씻고 뭐 그러면서 구경을 할 수 있겠지.
고속도로 휴게실이 있고, 큰 지역 단위로 거의 반드시 쟈스코(JUSCO) 쇼핑센타가 있고, 나가노 지역은 땅만 파면 온천이 나올 곳이니 숙박을 하지 않고도 들어갈 수 있는 동네 사람들을 위한 목욕탕이 분명 있을 터이고, 또한 각 국도변에는 "미치노에키(道の驛)"라고 해서 주차장과 깨끗한 휴게시설이 있으니 잠 잘 곳도 대충은 확보한 셈이다.

 
고린산과 고원


 平床大噴泉

지도를 둘러보다 전에 한 번 겨울에 갔다가 얼음 길에 질겁을 하고 그냥 돌아내려온 시가고원(志賀高原)쪽으로 가기로 했다.
지금은 여름이니 고원의 풍경도 좋을테고, 거길 지나 남쪽으로 조금만 가면 언젠가 TV에서 본, 산꼭대기의 하얀 눈 덮인 노천온천이 일품인 만자온센(万座溫泉)에 갈 수 있다.
고속도로(上信越自動車道 信州中野IC)에서 내려 국도 292번을 타니 이 길을 의도하지 않았지만 다니다보니 참 여러번 지나간 길이다.
멀리 고린산(五輪山, 1620m)과 그 아래의 넓직하고 넉넉해 보이는 고린고원(五輪高原), 뭔가를 재배하는 농가들, 산쪽으로 더 다가가면 하천을 따라 시부 유다나카 온천(澁, 湯田中溫泉鄕)이 보인다.

시가고원이란 도로 표지판을 보고 본격적으로 산길을 구불구불 오르다 보니 점점 시원해진다. 산은 산인가 보다.
이 고원에 걸쳐있는 산들이 笠岳(2076m) 志賀山(2037m) 橫手山(2305m) 들이며 오르다 보면 평편한 부분들이 나와 고원을 이루고 있다.
또한 주변으로 아홉 군데나 되는 스키장들이 있어, 겨울에는 적설량이 3m도 넘는다고 하니 그 겨울에도 산길에 계속 관광 버스와 자동차들이 끊이지 않았던 것 같다.
운전 연습(?)이 끝나고 드디어 고원이구나 했더니 저 앞에서 허연 연기가 마구 오르는 것이 보인다. 여기는 표고 약1500m 정도로 쿠마노유(熊の湯)라는 온천과 호타르 온천(ほたる溫泉)이 있는 곳인데, 이들의 源泉중의 하나인 平床大噴泉이라는 곳이다. 뜨거운 물이 그냥 땅바닥에서 끊이지 않고 솟아오른다는 것이 신기하다. 온천과 스키가 절묘히 만난 곳인 것 같다.


표지석 뒤로 멀리 쿠사츠온천이 보인다


 시원한 시부토오게 근처 능선 길

오르면 오를수록 옷 하나씩 더 꺼내입고 橫手山 정상 부근의 길에서 잠시 내리니 찬 바람에 날라갈 것 같다. 여길 얼른 지나 뜨거운 온천에 들어가 쉬고 싶은 마음이 급해진다. 시가고원은 이 정도로 구경하고 얼른 만자온천을 향해 달리다 보니,
시부토오게(澁峠, 시부 라는 이름의 고개)라는 표지판을 지나 길 옆에 주차 공간이 조그맣게 있고 뭔가 세워져 있다.
호기심에 내려 보니 이 곳이 "일본 국도 최고 지점"이란다.
어어~ 왠지 뿌듯하네. 후지산 오른 기분이랄까. 전에 다른 길을 갔더니 거기는 일본 고속도로 최고 지점이라고 써 있었는데 이번에는 국도라니. 아마 관광 잡지에도 써 있지도 않을 길을 우연히 두 군데나 지나 가다니... 흐뭇하다.
여기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멀리 쿠사츠(草津)온천이 보인다.


시부토오게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맑은 날은 윗 부분의 도로로 달리기가 시원할 것 같지만 이날은 안개만 자꾸 짙어진다.

이 도로는 예전에 시가쿠사츠도로(志賀草津道路)라는 이름으로 유료도로였지만, 1992년 무료로 개방되면서 292번에 편입된, 시부 유다나카 온천(長野縣 澁, 湯田中溫泉鄕)에서 쿠사츠(群馬縣 草津)온천까지의 약 46km의 산악 도로이다.
대략 남북으로 난 길이 높은 산을 넘어가는데, 어느 고개(峠 토오게)에서는 하천의 흐름이 바뀐다. 말 그대로 분수령(分水嶺)인 것이다. 시부 유다나카 온천쪽으로 흐르는 하천은 남에서 북으로 흘러 최종적으로 동해로 들어가고, 쿠사츠쪽으로 흐르는 하천은 북에서 남으로 흘러 결국 태평양으로 빠진다.
일부는 겨울에 통행금지가 될 정도로 눈이 쌓이지만 여름에는 드라이브에 최적이라고 하는데, 이 때는 비가 좀 내려서 그런지 춥다.


만자온천 전경


실내 여탕의 노천탕으로 건너편으로 옆 사진의 분출구가 보인다


카라부키(空吹)라고 하며 산의 갈라진 틈으로 유황 연기가 나온다

능선길의 시원하다 못해 추운 풍경을 잠시 즐기고 다시 구불구불 내려가니 드디어 만자온천(万座溫泉)이다.
오후 6시가 거의 다 되어서 도착하니 좀 망설여진다. 대략 시간적으로 숙박객이 아닌 사람들에게 온천을 개방하는 때가 지난 것 같지만,
어느 호텔에 들어가 이 호텔의 탕에 들어가려고 나고야에서부터 왔다고 하니 빙긋이 웃으며 들어가라고 한다.
새벽부터 뛰쳐나와 길만 열심히 보고 온 우리, 유황 냄새 폴폴 나는 따뜻한 물에 들어가니 아~~ 풀어진다~~
여탕의 노천탕에만 있다가 나오니 다른 곳에도 노천탕이 있다고 한다. 그 TV에서 본 곳이란다. 그러나 거기에는 탕이 세개가 있는데, 입구에 있는 것이 남녀 혼탕이고 안쪽에 있는 것은 남탕뿐이란다. 그리고 혼탕은 위치적으로 실내 남탕의 탈의실 아래쪽에 있어서 위에서 옷 갈아입으며 창문으로 다 내려다 볼 수 있다고. 여자는 실내 여탕과는 다른 탈의실을 이용해야 하니 귀찮기도 한데 도대체 이런 곳에 들어갈 용기있는 아줌마가... 그래도 한 두명 있다고 한다.
에구 에구 ~ 그러나 마냥 여유부릴 때가 아니다. 점점 해 떨어지고 어디선가 잘 걱정을 해야 한다. 대충 땀 빼고 나와 이 동네를 보니 호텔 몇 군데 외에는 마땅한 장소가 없다. 그리고 지형적으로 좀 들어간 곳이어서 그런지 건너편 언덕 가운데서 쒹쒹 올라오는 유황 연기때문에 숨 쉬기가 좀 힘들다. 전부터 TV에서 몇 번인가 보면서 상상만으로 좋아보였던 곳이 잘 곳 없는 우리에게는 그리 넉넉해 보이지 않는다.


노을마저 아쉽게 넘어가는
시부토오게

결국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가 아까의 표지석이 있는 곳까지 가니 저무는 해에 노을도 끝자락이다.
바람은 더 거세지고 겨우 고개를 다시 넘어 쿠마노유(熊の湯)의 호텔 주차장까지 왔다. 더 이상 헤매기에는 춥고 배고파 여기서 쉬기로 했다. 오면서 쟈스코 슈퍼에서 산 닭꼬치를 다시 굽고 뜨끈한 라면 국물을 마시니 온천도 좋지만 역시 뱃속이 따뜻해야 사람은 행복한 것 같다.
여행하면서 처음으로 이렇게 길에서 그냥 잔다는 것이 좀 두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숙박업소에 들어감으로 해서 겪어야 하는 "친절한 불편"을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가볍다.

 

*** 만자온천(万座溫泉)
만자산(万座山 1994m)의 거의 꼭대기인 표고 1800m의 산간에 위치한 온천으로 세계 제일의 좋은 온천 수질을 자랑하며, 하루 용출량이 540만리터를 넘는다. 산성유황천(酸性硫黃泉)에 80도가 넘는 고온으로 万病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특히 당뇨병, 위장병, 신경통, 관절염, 아토피성 피부염 등에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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