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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하얀 토가쿠시고원(戶隱高原)

 

해 뜨기 전부터 일어나 시가고원(志賀高原)에서, 서남쪽 방향으로 산을 내려와 야마다(山田)온천을 잠시 구경하고, 다시 떠나 와라비(蕨) 온천에서 좀 쉬고 나니 배는 고프고 이제 뭐 하나~ 계획이 없다. 어디선가 아침을 먹어야 하는데 편의점도 없는 조용한 마을뿐이다.
고속도로쪽으로 계속 길을 내려가니 여기는 오부세시(小布施市)라는 곳으로, 예전에 에도시대 서민들의 그림인 우키요에(浮世繪)의 유명한 화가인 카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齋 1760-1849)의 미술관이 마을의 자랑거리이다.

겨우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를 사서 대충 때우고 지도를 뒤적이다가, 지리적으로 고속도로 건너편에 있는 토가쿠시고원(戶隱高原)이라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예전부터 소바(そば) 이야기가 나오면 몇 번 들었던 産地 이름이어서 낯설지 않고, 여기서부터 가면 점심을 먹을 시간 정도에 도착할 것 같았다.


새장을 달리며.

고속도를 지나 나가노시(長野市)를 가로질러 산쪽으로 다가가니 갑자기 이상한 길이 나왔다.
생각해 보면, 평지에서 고원까지 가려면 어느 정도 산을 올라가야 하는데, 이 길은 너무 심하게 구부러져 있다(이 곳 이름도 七曲, 실제로는 여덟 군데다)
거기다 바닥은 미끄럼 방지로 바둑판 모양으로 파놓아 두툴거리고, 길 위로는 튼튼한 그물이 쳐 있어서 마치 자동차들이 새장 안을 달리는 것 같다. 워낙이 눈이 많은 곳이어서 눈 사태 방지책(スノ-シェッド, snowshade)이라는데, 한 여름에는 새장 분위기가 되고, 한 겨울에는 통행금지만 안된다면, 방지책 위로 눈이 가득 쌓인 것이 보이니 언제 무너질 지도 모른다는 공포 분위기 조성의 길이라 무척이나 신기하다.


말로만 듣던 메밀밭이다

이 길을 다 오르면 갑자기 평지가 된 듯 시원하다. 이 고원은 토가쿠시산(戶隱山, 1,904m) 중턱의 해발 1000-1200m쯤에 있으며, 약 2천년의 역사를 지닌 토가쿠시진쟈(戶隱神社)가 유명하다. 또한 소바는 이곳의 참배객들에게 대접하던 음식으로, 한냉한 기후가 소바를 재배하기에 딱 좋은 곳이라고 하며, 일교차가 커서 안개가 심하니 소바가 안개에 싸인 날이 많아 이곳 소바를 일명 "키리시타소바(霧下そば)"라고 하기도.

고원으로 들어와 길(이곳의 길 이름이 bird line이다)을 따라가니 정말 아무 것도 없다.
처음부터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경치도 유별나게 김탄할 정도도 아니고 온 주위가 다 메밀밭도 아니다. 그저 비슷한 숲들.

지도에 표시된 "토가쿠시 소바 박물관(戶隱そば博物館 とんくるりん)"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보니, 주말도 아니니 더더욱 관광객들이 없고 참 조용한 곳이다. 들어가니 이런저런 메밀로 만든 여러 상품들을 팔고 있는 가게가 있고, 소바를 먹으려면 신발을 벗고 왼쪽의 넓은 마루로 올라가라고 한다. 보아하니 이곳에서는 소바를 직접 만드는 과정을 가르쳐주기도 하기 때문에 여러 설명서가 벽에 붙어있고, 바닥에는 도구가 놓여있다.


초보자를 위한 소바 만드는 법

우리 생각에, 칼국수나 소바나 다 가루에 물 넣고 열심히 반죽해서 얇게 펴서 자르면 그만이지 뭐 대단한 것이 있나 하는데,
일본에서 살다보니 이것도 뭔가 대단한게 있다고 믿어줘야 하는 분위기가 많아,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 지 망설여지기도 한다.
간단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반죽할 때 손 모양은 어떻게 하고, 어느 쪽으로 몇 번 밀고, 힘 조절은 어떻게 하고, 메밀은 어디 産이 좋고, 맷돌에 어떤 식으로 몇 번 갈아 가루를 내야하고, 물은 어때야 하고, 심하면 만드는 도구인 칼, 나무판, 밀대, 나무 그릇 등의 재료마저 따진다.
그래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한참을 열심히 설명하면 아하~ 하며 또 귀담아 잘 들어주어야 한다.
그 섬세함과 꼼꼼함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 가게에서 소바 먹을 자격도 없다고 스스로 느껴야 할 정도로 대중 매체들이 만들어낸 "그 뭔가 대단함"이 있기 때문이다.
맛과 함께 그것을 찾아 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들이 직접 해보고 느끼라고 이런 자리들이 마련되는 것이다.


마구 엉킨 면발을 담은 것이 아니라 말발굽 모양으로 감아서
5-6 타래를 얹는 것으로, 여기서는 이를 "봇치모리(ボッチ盛り)"라고 한다.


산사이소바(山菜そば)

아쉽게도 오늘은 그저 "먹기만 하는 손님"뿐이다.
"자루소바(ざるそば)"와 "산사이소바(山菜そば)"를 주문하니 생각보다 빠르게 가져온다. 여기까지 온 손님에게 금새 반죽해서 주면 좋을 것을... 미리 잘라놓은 소바를 끓여 왔다.
자루소바는 다른 곳과는 다르게 모양이 특이하고, 산사이소바는 별로 山菜가 없어 보이지만, 이대로가 좋았다.
실제 도시에서 산사이 소바를 주문하면, 여러 야채를 삶아서 진공 포장한 제품을 뜯어서 건더기를 조금 얹어주는 정도여서 어디나 야채 맛이 똑같다. 여기는 이름은 모르지만 늘 보던 것과는 달라 진짜 시골에서 먹는 소바같았다.

소바를 먹었으니 메밀밭을 보아야 하는데, 관광 안내서에 나온 밭을 물어보니 좀 시기가 늦어서 별로라나.
안내서 사진에 찍힌대로 새파란 하늘밑에 하얗게 잔뜩 핀 메밀밭을 상상했는데, 구름 낀 날에는 감동도 덜 하나 보다.
담담한 메밀밭, 담담한 소바... 담담한 여행이었다.

 

 
 나무들이 무지하게 큰 토가쿠시진쟈(??神社)

 

*** 소바(そば, 蕎麥)에 대해  
일본에서 흔히 "소바"라고 말하는 것은, 日本農林規格에서 정한 대로 메밀 가루가 30%이상 들어간 국수를 말한다.
시중에서 파는 소바들은 기본적으로 30%이상이고, 대부분은 메밀 가루와 밀가루의 배합이 80 : 20인 "니하치소바(二八蕎麥)"나
10 : 0인 "토와리소바(또는 쥬와리소바라고 읽는다 十割蕎麥)"이다.
그런데 이런 메밀 국수 외에 "소바"란 말이 붙는 음식이 있다. "쥬카소바(中華そば)  야키소바(燒きそば)"이다.
쥬카소바는 국물이 있는 "라면(拉麵)"을 말하고, 야키소바는  라면의 면(麵)에다가 여러 재료를 넣고 볶은 것이다(炒麵). 둘 다 밀가루로 만들어서 메밀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소바란 말이 "메밀 국수"를 가리키기도 하고, 그냥 "국수"를 나타내는 말이 되기도 한다.   

현재와 같이 메밀을 반죽해서 밀대로 얇게 펴서 칼로 자르는 것을 "소바키리(蕎麥切り)"라고 하는데,
이렇게 해 먹는 법은 17세기중기이후 에도(江戶)를 중심으로 급속히 퍼져 日常食으로 정착하였다고 한다. 실제 메밀은 나가노현(長野縣)과 같은 산간 지방에서 많이 재배되었는데, 아마도 대부분의 물자들이 에도로 집중했기 때문에 새로운 음식으로 인기를 얻은 것 같다.

소바를 가리키는 말 중에 "사라시나(更科)"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메밀 종자를 빻으면 제일 처음에 나오는 하얀 배유(胚乳) 부분의 가루로 만든 소바이다. 메밀을 계속 빻고 체에 쳐가면 하얀 색에서 점점 검어지며 메밀 고유의 냄새도 짙어진다. 그래서 양도 적고 색도 하얀 첫 가루가 왠지 고급스럽게 보이고, 나중 것은 헐하게 보여서 그런지 음식점에서 주문표를 보면 하얀 소바는 "사라시나 소바"라 하고, 검은(짙은 회색) 소바는 "이나카소바(田舍, 시골)"라고 한다.
맛이나 영양면에서도 이나카소바가 훨씬 좋지만 괜히 사라시나란 말 때문에 밀려서 가격도 좀 싸다.

사라시나란 말은 이래서 고급 소바의 대명사가 되었는데, 이말은 18세기후반에 만들어졌다.
에도에서 한 사람이 소바 가게를 열었는데 가게 이름을 "사라시나(更科)"라고 한 것이다. 당시 메밀 集産地였던 나가노현(長野縣)의 사라시나군(更級郡, 현재는 更埴市)의 이름에서 "사라(更)"字를 따오고, 이 사람이 장사를 하며 근처에서 자주 드나들어 도움을 받은 집안인 호시나(保科) 가문의 이름 字에서 발음이 같은 "시나(科)"를 가져와 "級"대신 넣어 "사라시나"란 말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가게에서 만든 하얀 소바가 이름만 대면 유명한 집안에 배달도 되었기 때문에 "하얀소바 = 사라시나 = 고급 소바"라고 유행이 되어 여기저기에 사라시나란 간판의 가게가 생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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