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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어우러진 산쿄창고(山居倉庫)

 


 창고의 뒤편으로 아름드리 느티나무들이 검은 벽채와 어우러져 있다.
 이 나무판자벽은 건물의 흙벽 바깥쪽에 간격을 두고 세워져 서늘한 온도를 유지시킨다.
지금은 여름이지만 가을이 되어 단풍이 들면 누가 쌀창고 옆길이라고 생각할까.
아마도 이 지역 배경의 드라마(특히 추리 소설 드라마)에는 꼭 나왔을 법 하다.

산쿄창고(山居倉庫)는 일본의 토호쿠지방(東北地方, 동북쪽의 靑森縣 岩手縣 秋田縣 宮城縣 福島縣) 중의 한 곳인 야마가타현(山形縣) 사카타시(酒田市)에 있다. 지도상에서 보면, 야마가타현은 동쪽으로는 내륙지방과 붙었고, 서쪽으로는 바다를 접하고 있다.
바다는 우리에게는 "동해"이고 일본인들에게는 "일본해"라고 불리는 곳이다. 그러나 어떤 정식 명칭이 생기기 전에 이 동네 사람들에게 바다는 그냥 "서쪽 바다"에 불과했다(태평양과 접한 곳에 사는 사람들이 보기에 태평양이 "동쪽 바다"인 것처럼)


주욱 늘어선 창고의 앞쪽으로 왼쪽의 입구쪽에 있는 부분은 가게와 갤러리가 되었다.


 


건물의 지붕이 특이하게 얹혀있다. 건물의 천장까지 흙을 발라놓아 저장 기능을 완벽히 하고 그 위에 간격을 두어 기와 지붕을 올렸다. 앞에는 지붕에서 홈통을 연결하여 빗물을 받아두어 화재가 날 경우를 대비한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진짜 두꺼운 창고문이 나온다.


예전의 작업 모습. 우리와 쌀 가마 모양이 다르다.


새로 단장한 가게 안(酒田夢の俱樂)

어찌 되었건, 사카타시는 이 바다를 생활의 터전으로 삼은 항구 도시다.  또한 이 주위가 쇼나이평야(庄內平野, 남북으로 100Km 동서로 40Km를 넘는다)라는 일본에서도 유명한 곡창지대이기 때문에, 평야와 사카타시를 지나는 모가미가와(最上川)라는 하천과 바닷길(西廻り航路)을 이용하여 곡물의 운반과 저장, 전국적으로 행해지는 도매업으로 번성할 수 있었다.

여기에 대표적인 산쿄창고(山居倉庫)가 1893년 酒田米穀取引所付屬倉庫로, 사카타 시내를 지나 最上川로 흘러드는 니이다가와(新井田川)라는 작은 하천 옆에 세워졌다(현재 이 평야의 쌀창고는 65군데)
이 건물은 예전 이 지역 반슈(藩主)였던 사카이 집안(酒井家)에서 지역 유지인 혼마 집안(本間家)의 자금을 빌려 건설하여, 쌀을 "神"이라고 할 정도로 귀히 여기며 경영하였으며,  "도조즈쿠리(土藏造り)"라고 하는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二重의 지붕, 습기 방지의 내부 구조, 건물 뒤로는 느티나무(?竝木)를 심어 여름에는 뜨거운 서쪽 햇볕을, 겨울에는 차가운 바닷 바람을 막아 자연을 이용한 저온 창고 관리(15 - 18도 유지)를 한다.

이후 이 창고는 국가 관리가 되었으며, 100년이 넘은 건물이 그대로 庄內經濟連의 農業倉庫로  이 지역 브랜드인 "쇼나이마이(庄內米)"를 보관하고 있다. 현재 12동의 건물이 붙어있는데, 1985년에 한 동을 사카타시에서 취득하여 쇼나이마이역사자료관(庄內米歷史資料館)으로 개방하고, 2004년에는 또 두 동을 사카타유메노쿠라(酒田夢の俱樂, 가게와 갤러리)라고 하는 관광 시설로 만들었다.

참고로 이 창고를 배경으로
1983-4년 NHK의 아침 연속 TV 소설 드라마로 "오싱(おしん)"이 방영되어, 62.9%라는 최고의 시청률을 올려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드라마라고 한다.

*** 니시마와리코로(西廻り航路)와 酒田
에도시대, 에도(江戶)의 경제력이 커지면서 인구도 늘어나고 식량부족 현상도 일어났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커다란 곡창지대인 쇼나이평야(庄內平野)의 쌀을 에도로 가져와야만 했다. 육로로 높은 산들을 넘어 한 두 가마도 아닌 양을 가져오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바닷길을 열어야 할 필요가 생겼다.
그리하여 1671-2년에 바쿠후의 명을 받은 카와무라즈이켄(河村瑞賢)이란 상인이 酒田를 기점으로 해서 일본 본토를 서쪽 방향으로 도는 해로(海路)를 개척하였다. 주요 도시로 酒田 - 下關 - 大坂 - 下田를 지나 에도에 도착하는 항로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육로로 1년 가까이 걸리던 쌀 운반이 3개월 정도로 짧아졌다.
이 항로의 해운업이 번성해지면서 덩달아 오사카(大坂, 堺)는 에도 보다도 먼저 西일본의 상품들이 들어와 상업 도시로 커질 수 있었다.
이를 두고 당시에 "서쪽의 사카이, 동쪽의 사카타(西の堺、東の酒田)"란 말이 생겼다.

참고로 히가시마와리코로(東廻り航路)도 있다. 이것도 위의 상인이 개척한 것으로, 酒田 더 북쪽의 항구에서 시작하여 츠가루해협(津輕海峽)을 지나 태평양으로 나와 에도를 향하는 항로이다. 이 또한 북쪽 지방으로부터 곡물을 걷어들이기 위해서였다.

*** 도조즈쿠리(土藏造り, 또는 누리야즈쿠리塗家造り)
도조(土藏)는 창고를 의미한다.
기본적인 가옥과는 달리, 나무로 만든 집 뼈대에 모두 흙을 바르고 표면에는 하얀 싯쿠이(
漆?, 석회石灰)를 발라 防火 防水 성능을 높인 건물이다. 이런 방법이 일반 가옥에도 사용된 것은 에도(江戶)시대 1716-1735년(享保年間) 사이의 바쿠후(幕府)에서 이전의 대화재를 겪으며 일반인에게 장려를 하였다.
가옥들이 주욱 늘어선 상점가 등에서는 한 번 불이 나면 순식간에 다른 목조 건물들로 불이 옯겨붙기 때문에 나름의 방화대책(예로, 우다츠)을 갖추었는데, 그 중에서도 도조즈쿠리는 불이 나도 왠간해서는 부분만 타며, 기와 지붕도 집 본체와 분리되어 올려져 있기 때문에 큰 손실을 막을 수 있다. 또한 집의 벽 자체 두께가 12-18Cm 정도로 실제 창고(15-24Cm)보다는 얇지만 상품들을 두고 파는 데는 온도 조절이 좋다. 그래서 이런 방식은 1923년 관동대지진(關東大震災)이 일어나기 전까지 널리 보급되었다.

지금까지도 이런 건물이 남아있는 지역은 "도조즈쿠리 마치나미(藏造り町竝み)"라고 해서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


 가게와 갤러리 사이의 공간


운하로 쓰이는 니이다가와(新井田川)의 남쪽에 창고가 서 있다.
오른쪽 물길을 따라 가면 더 큰 강인 모가미가와(最上川)와 만나고 다시 흘러 바다로 나간다.

느티나무 사이로 창고와 그 외 부속 건물이 보이고,
물가에는 배를 대고 쌀 가마를 내리기 쉽게 선착장을 만들었다.

 
 1893년부터 1959년까지 있었던  이 산쿄바시(山居橋)를 시대 흐름에 따라 그 유용성이 떨어져 헐어버렸는데
이 곳이 관광지로 주목을 받고 재정비 되면서 1993년 다시 세웠다.
이 다리를 건너 북쪽 주택가로 가면 이곳에 주요 구경거리가 있다.


 강 건너 북쪽 주택가

 

*** 쇼나이마이역사자료관(庄?米?史資料館)


당시의 農家 재현 모습인데, 남자는 도마(土間, 흙을 다져서 만든 바닥)에서 뭔가 일을 한다. 바로 옆이 마루.
 


여자는 이로리(??裏)가 있는 마루에서 아이를 보고. 마루라고 해도 가족들이 모여 일을 하고 밥을 먹고 하는 장소인데, 실제는 가마니가 깔려있다. 농가에까지 타타미가 깔리는 것은 메이지 시대 지나서라고.

농가의 구조에는 지역마다 차이를 보이는데, 이런 형태는 "히로마가타(?間型)"라고 한다.
집의 입구인 문을 들어오면 도마(土間)가 있고, 한쪽에 부뚜막이 있으며, 문이 안 달린 위의 사진과 같은 마루(?間)가 나타난다.
가운데에는 이로리(??裏)가 있어서 늘 불씨를 보존할 수 있고, 취사도 가능하며, 이로리 위에서는 식품을 건조시킬 수도 있고,
또한 이 집안의 유일한 난방 설비이다. 이곳에서 식사하고, 손님을 맞고, 농업 작업도 하며 가족이 모이는 생활의 중심이 되는 다목적 공간이 된다. 이 마루 옆으로 두 개 정도의 방이 있어서 한 곳(?間)에서 잠을 잔다.

위의 사진은, 이 창고에 가을이 되어 수확을 한 쌀 가마니들이 배에 실려 들어오면 "온나쵸모치(女丁持)"라고 불리는 힘센 여자들이 하역 작업을 하는 장면이다. 진짜 사진과 실제 마네킹을 만들어 놓고 그 힘이 어느 정도나 세었는지 보여주는데, 이들이 짊어진 가마니가 다섯 개까지가 최고였다고 한다. 한 가마에 대략 60Kg이니 300Kg을 멘 것이다.
여자들의 키는 대략 160Cm도 되지 않고, 못 먹던 시절에 어디서 그런 힘들이 나왔는지.. 싶다.  

쌀의 무게를 재는 단위는, 1쇼(升)는 1.5kg정도,  1토(斗)는 15kg 정도, 1코쿠(石)는 10斗로 150kg정도이다.
1타와라(俵, 가마니)에는 4斗가 들어가니 60Kg정도이다.
현재는 가마니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30Kg의 종이 봉투에 넣어 2개를 1타와라 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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