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밖에..

 

holland_back.gif

Home

여 행

생 활

 

말(語)에 대해서(1)

 

일본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들어와서 처음 겪는 어리벙벙한 일은 "말"에 대해서다.

1999년 9월 말, 3년간의 오사카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들어와 그날 저녁 식사를 하면서 오래간만에 TV를 보면서 무척이나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하루전까지 일본어만 듣다가 우리말을 들으니 일단은 얼른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어느 광고는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 기억으로 나중에서야 보니 KT(한국통신) 광고였는데, 화면도 뭘 표현하는지 모르겠고, 말 하나 하나가 처음 들어보고 따라 할 수도, 외울 수도 없는 완전 외국어처럼 들렸다.

워낙 그런 분야가 무척이나 빠르게 변하다 보니 "변화가 느린 일본이란 시골"에서 상경한 나는 한동안 적응이 안되었다.
3년간 오사카에서 한국에 대한 소식은 가끔 어쩌다 보는 신문이 전부였으니, 갑자기 마구 쏟아지는 변화의 정보에 대해 그저 딱 한 생각만 들었다.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

나고야에서 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이런 부적응이 없도록 매일 매일 "컴퓨터는 내 친구"였다.
그래서 이번에 한국에 들어와서는 덜 당혹스럽고 그저 세상 많이 좋아져서 고맙다 라는 생각뿐이다.

그러나 의아한 일이 또 생겼다. 나의 별거없는 국어 실력으로 들어도 갸우뚱 갸우뚱 이상한 말들이 들린다.

어느 가게에서 어떤 물건이 있냐고 직원에게 물으니, 찾아 가지고 오면서 하는 말이 "여기 고객님이 찾으시는 물건이 있으십니다"  
또 누군가는 뭔가에 대해 설명하다가 "~~ 그런 내용이 신문에 나와 있으십니다" 라고 한다.
하여간 문장이 다 기억나지 않으나 주로 "~~ 가(이) 있으십니다" 로 끝나는 말들이 많았다.

왜 이런 말이 쓰여지는 것일까. 고객을 존중해서 일부러 이렇게 말하도록 교육하고 배워서 하는 것 같은데 , 내가 알기로 우리말의 존대법으로는 이렇게 말할 수 없다.
경어라고 하든 높임말이라고 하든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즉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존대법이기 때문이다.

우리말의 경어(敬語)에는 세 종류가 있는데,
공손법(恭遜法, 상대존대법, 상대높임법)은  듣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의 관계에 따라 높임의 등급이 결정되며, 문장의 끝인 정동사(定動詞)에 활용어미를 어떤 것을 붙이느냐에 따라 평서형, 의문형, 청유형, 명령형이 된다.
경의표시의 정도에 따라  아주높임(합쇼체, 명령형 예를 들면 "읽으십시오")  예사높임(하오체, "읽으시오")  예사낮춤(하게체, "읽게")  아주낮춤(해라체, "읽어라")  두루높임(해요체, "읽어요")  두루낮춤(해체, "읽어")로 나누어진다.

존경법(尊敬法,주체존대법, 주체높임법)은  말하는 사람보다 말의 주체가 되는 사람이 높은 경우 서술어에 "-시-"를 넣어 그 주체에게 존경을 표시하는 것이다. "선생님께서 가시다, 들어오시다, 보시다". 그리고 주격조사인 "께서"도 주체존대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겸양법(謙讓法, 객체존대법, 객체높임법)은  말하는 문장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하여 간접으로 경의를 표시하는 것으로, 주체존대법이 대체로 문장의 주어를 높인다고 보면, 객체존대법은 서술어의 대상인 목적어를 높이며 일부 동사에 한정되어 있다.
예를 들어 <보다  묻다  주다>는 <뵙다  여쭙다  드리다>로 표현한다.

대충 이렇게 나누어지는 경어를 보아도 말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따라 다양한 변신을 한다. 결코 "물건"이 "사람"보다 위에 있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 있는 것처럼 표현하는 말, 어쩌면 그 물건과 관계있는 상대를  높인다고 하는 말이, 왠지 일본어를 따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딘가에서 보니 아예 이런 표현을 "정중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일본어의 "테이네이고(丁寧語)"를 우리식으로 해석해서 쓴 것 같다.
우리말로 "여기(에) 있습니다"를 일본어로 "こちらにあります"라고 하는데,
말하는 이가 좀 더 자신을 내리고 정중하게 하면 "こちらにございます"라고 한다.
우리말의 "있습니다"는 두 단어에 다 맞는데도, 일부러 나누어 "있습니다 = あります"  "있으십니다 = ございます"라고 만든 것 같다.
내 추측에, 아마 일본인 고객을 많이 접하는 어떤 업계에서 직원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다가, 일본어 문장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이런 말을 만들어 내었고, 이렇게 사용하는 것이 예의바른 태도라고 입력이 된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업계의 고객서비스 행태를 다른 업계에서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말도 물들어 간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예의바름은, 고객이 마음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은, 남의 나라 말을 흉내낸 것만으로는 절대 채워지지 않는다.
일본인들 중에도 온갖 경어를 다 사용해서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듣고 있자면 화가 나고 약이 바짝바짝 오르는 경우도 있다.
잘못된 유행어를 되집어 보지 않으며, 상대를 향한 진심과 겸양의 태도라는 접시에 담기지 않은 말은 얼른 끝내고 싶은 소음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다.

말에 대해서 (2)  (3)

 

  Home   여 행   생 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