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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고야 성(名古屋城) (2)

 


니노마루 정원의 일부와 챠야.

파란 하늘이 상쾌한 날, 물이 가득한 소토보리(外堀)를 보면서 나고야 성을 정문이 아닌, 동문(東門)으로 들어갔다. 정문 쪽이 아니다 보니 사람들도 거의 안 보이고 한산... 오른쪽으로 잔디가 햇빛에 반짝이는 넓은 정원이 보인다. 말로만 듣던 니노마루(二之丸) 정원이다.

예전에는 여러 건물들이 들어 서 있어 반슈(藩主)의 숙사로 쓰이거나 정무를 보는 곳이었는데, 소실된 이후 이렇게 정원만 예쁘게 가꾸어져 있다. 깔끔한 정원을 돌아보다가 둥근 창문이 있는 한 작은 집을 보게 되었다. 기웃기웃 들여다 보니 챠야(茶屋)이다. 건물의 반은 정식 챠시츠(茶室)로 타타미가 깔린 방이고, 다른 한 편에는 탁자와 붉은 천(毛せん)을 깔은 엔다이(緣臺)라는 의자,


신발을 벗어놓는 섬돌과 챠시츠가 보인다.

그리고 커다랗고 빨간 우산(양산)이 펼쳐져 있다. 대개는 밖에다 이렇게 펼쳐놓고 햇빛을 피하며 차를 즐기지만, 아무래도 더운 여름 한낮에는 안에다 해 놓는 것도 시원해 보인다. 어찌 되었건 머리가 따갑도록 내리쬐는 햇빛을 받다가, 이 집의 처마 그늘로 들어오니 등이 서늘해지며 땀이 식는다. 혼자서 이렇게 쉬는 것이, 안에 사람들이 많이 있다면 챠야 주인에게 덜 미안할 터인데...

이래저래 쉬는 김에 더 편히 쉬자는 생각으로 안으로 들어가 엔다이에 앉았다. 두리번거리며 무엇을 주문할까 망설이는데, 주인 아줌마가 맛챠


챠야 내부.

(抹茶, 말린 녹차 잎을 작은 맷돌에 갈아 곱게 만든 가루를 뜨거운 물에 타서 거품을 낸 차)를 하겠냐고 묻는다. 사실 이런 전통 찻집에서는 커피나 쥬스류를 팔지 않으니 당연히 맛챠를 주문해야 한다.

일본에서 챠도(茶道) 혹은 챠노유(茶の湯)라는 것은, 아즈치모모야마시대(安土桃山時代 1568-1600)의 茶人인 센노리큐(千利休 1521-91)가 그 틀을 확립한 것으로, 챠왕(茶碗, 주발)에 녹차 가루인 맛챠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운 후 대나무로 만든 챠센(茶せん, 가느다란 대나무살로 만든 일종의 거품기)으로 거품을 낸 차를 손님에게 정중하게 대접하는 일련의 의식과도 같은 절차이다.

물론 당시에 이 사람 외에 이런 식으로 맛챠를 즐긴 사람들이 각 지에 있었다. 원래 맛챠를 즐기는 방식은 중국의 宋나라에서 시작되었다가 그 이후 전통이 이어지지 못했지만, 전래된 맛챠가 일본에서는 선승(禪僧)과 귀족들의 문화로 자리잡아 왔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5세기 후반부터 급속히 권력있는 무사들과 고급 상인들 사이에 우아한 취미의 하나로 퍼지게 되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센챠(煎茶)라고 해서 그냥 녹차잎을 우려낸 차를 마셨다.

이런 와중에 센노리큐의 이름이 더욱 알려진 이유는, 이런 禪과 같은 儀式의 차를 즐기기 위해 특별한 장소를, 禪寺를 본따서 스키야(すきや, 草庵風茶屋)라는 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스키야라고 불려진 곳에는 깔끔한 정원과 다른 부속 건물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건물이 있었다. 차를 대접하고 마시는 챠야(茶屋)이다. 이 차야가 아주 작고 소박하게 서민풍으로 지어져 있으면서도 그 안에 들어가 차를 마시면 어딘가 심오한 세계를 느끼게 했기 때문에, 당시 화려한 집을 권력의 상징으로 자랑하던 무사(武士) 권력자들에게 챠도와 함께 인기가 있었다.

이런 이유로 오다노부나가(織田信長 1534-82)와 토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 1536-98)의 비호 아래 센노리큐가 大成한 챠도(茶道)와 스키야라는 건축 방식이 권력자들 사이로 퍼지게 되었다.

현재 내가 들어 온 챠야(원래 이런 맛챠를 대접하는 곳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녹차를 마시면서 간단하게 무언가 먹을 수 있는 곳에도 챠야라고 간판을 붙였기 때문에 가끔 혼동된다)에도 이 전통대로 지어진 챠시츠(茶室)가 있고, 맛챠를 대접하고(팔고) 있는 것이다.

벽에 붙은 종이를 보니 맛챠가 소비세 5%를 붙여서 525엔이라고 쓰여있다. 비싸기도 하지. 잠시 후 맛챠와 와가시를 가져왔다. 그 가격에는 와가시가 포함된 것이었다. 사실 교토(京都)나 나라(奈良)의 관광지에 있는 챠야에 들어가면 대개 5-600엔에 맛챠와 와가시를 즐길 수 있으니, 이 정도가 전국 공통 가격인 것 같다.

맛챠와 와가시가 같이 나오면 대개 사람들은 어느 것을 먼저 먹을까...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분명 망설이게 된다. 물론 내키는 대로 맛있게 먹고 마시면 되지만, 그래도 왠지 궁금해진다. 언젠가 기회가 있어서, 함께 자리한 일본인들을 유심히 보니 먼저 와가시를 요지(楊枝)로 조금씩 베어서 다 먹었다.

그리고 나서 챠왕(茶碗)의 한쪽 옆을 오른손으로 잡고 왼손은 밑에 댄 후 살짝 시계 방향으로 45도 정도 돌린 다음에 맛챠를 서너 모금에 다 마셨다. 이 챠도의 법도에 따르면 꼭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한다. 만약 와가시 한 번 맛챠 한 번... 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이런 형식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생각해 보면 맛챠가 워낙이 쓰니, 먼저 단 맛의 와가시를 먹어두는 것이 얼굴에 인상 안쓰고 편안하게 우아한 표정으로 맛챠를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와가시와 거품이 곱게 난 맛챠. 와가시를 먹을 때는 대나무로 깎은 이런 요지를 사용한다.

내 앞에 놓여진 와가시와 맛챠를 별 생각없이 다 먹고, 내부를 둘러보다가 그냥 돈 내고 나오기가 어색해서, 챠도에 대해 주인 아줌마에게 물어보았다. 실제 주인이라기 보다는 전문적으로 차도를 배워 고용된 사람으로 자기도 심심했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와가시의 모양을 유심히 보았냐고 묻는다. 팥으로 만든 네리모노(練り物)로 약간 분홍색의 사각형...

뭐 대충 이 정도로 대답을 했더니 다시 새 것을 보여주었다. 챠도에서는 계절마다 때때마다 그 분위기에 맞는 와가시를 선택해서 즐기는데,

내가 찾아간 '오늘'은 어제까지 태풍으로 비가 내리다가 맑게 개인 날이기 때문에, 윗 부분에 우산이 접힌 모양을 나타냈다고 한다. 다시 보니 그렇다. 선이 몇 개 그어진 것이 우산살이고 좀 빨갛게 보이는 부분은 우산의 꼭지. 그래서 이 와가시의 제목이 "아메아가리(雨上り, 비 그침)"란다.

어찌 생각하면 머리 복잡하게 뭐 그런 것까지 생각하며 대접하고, 먹느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차를 대접하고, 마신다'는 것이 단순히 몇 가지의 동작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자연의 신비함 속에 잠시 머물고 있는 작은 '나'를 되새겨 보는 영원 속의 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면, 잠시 '나의 번잡한 마음'을 내려놓고, 미처 깨닫지 못했던 주위 대상들의 가치를 신선하고 새롭게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 같다.


혼마루고텐의 복원 예상도이다. 멀리 천수각이 보인다.
건물의 오른쪽에 있는 입구가 "현관"이다. 그리고 그 옆으로 주욱 쇼지(창호지를 바른 문)가 있고, 문 안쪽으로는 나무판을 깔은 복도이다. 복도를 따라 방들이 이어져 있다. 중요 인물만이 이 현관으로 드나들고, 다른 이들은 쇼지 밑의 두서너 계단을 올라 문을 열고 복도로 들어간다. 아니면 건물 뒷 부분에 있는 캇테구치(勝手口)로 들어간다. 쇼지 옆에는 비나 눈이 올 때 창호지가 젖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무 판자로 만든 '아마도(雨戶)'문을 덧달았다.

차야에서 잠시 쉬고, 천수각(天守閣)을 보러 우치보리(內堀)의 다리를 건너 혼마루(本丸) 구역으로 들어가니 어째 썰렁하다. 천수각 홀로 멋있게 서 있지만 그 외 다른 건물들이 없어서 그런가...

천수각 앞으로 건물의 초석(礎石)들만 깔려있으니 심심... 천수각만 구경하고 정문 쪽으로 나오다 보니, 가게 옆으로 '니시노마루전시관(西之丸展示館)'이란 곳이 보였다. 입구에 '자유롭게 들어 오세요'라고 쓰여있으니 들어가 봐야지.

안은 좀 창고같은 분위기로, 1615년 혼마루에 세워졌던 혼마루고텐(本丸御殿, 대궐)이 1945년 소실되었기 때문에 새롭게 복원을 하려고 그 준비를 하는 곳이라고 한다. 특히 그림 모사(模寫)를 하고 있단다. 건물 전체는 소실되었지만, 공습을 받기 전에 이동 가능한 부분들을 안전한 곳으로 옯겼는데, 그 1047점이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혼마루고텐의 모형도 일부로 현관 부분.

그리고 미리 건물 내부도 사진으로 남겼다고 한다. 그래서 1992년부터 대궐 여러 군데에 쓰여진 그림들을 먼저 모사를 시작하였다. 보아하니 건물을 짓는 시간보다 세밀하게 모사하는 것이 더 시간이 많이 들어서 그런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이 나고야 성에서 중요한 부분은 천수각이 아니라 혼마루고텐인데, 복원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드니 여지껏 미루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다가 성이 세워진 400주년을 기념하는 2010년까지 어떻게든 지어보려고 사람들에게 기부금을 받아 준비하고 있다. 금액에 따라 건물에 사용되는 재료 중에서 눈에 안 뜨이는 부분에 기부하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 준다고 하니 솔깃하게 들리는 이야기이다.  이런 대궐에 살아보지는 못해도 이름이라도 어딘가 박힌다면 여기 저기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혼마루고텐은 원래 교토(京都)의 니죠성(二條城 1602-3년에 세워짐)과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쇼인즈쿠리(書院造り)건축 방식의 건물이라고 한다.

건축 방식은 시대에 따라 바뀌었는데,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 1336-1573) 전에는 귀족이나 실력자들의 집을 짓는 방식을 신덴즈쿠리(寢殿造り)라 하였다. 즉, 커다란 건물 안에 마루를 깔고, 여러 기둥과 기둥 사이로 용도에 맞는 공간을 고정된 벽이 아닌 병풍이나 천으로 칸을 나누어 사용하였다. 그리고 중요 인물이 앉거나 자는 부분은 의자나, 돗자리를 깔은 높이가 낮은 평상 같은 것을 사용하였다. 또 건물의 내부와 외부를 나누는 부분은 위아래로 들어올렸다 내릴 수 있는 창호지를 바른 두꺼운 나무 문을 달아 놓았다. 이렇게 전반적으로 유동성이 있는 공간과 타테구(建具, 공간을 나누는 물건들)가 일본의 기후 환경에 맞게 발전되어 갔다.

그러다가 무로마치시대에 들어가면서 공간과 공간을 나누던 병풍이나 천 대신, 화려하게 그림이 그려진 후스마(ふすま, 나무로 틀을 짜서 양면에 두꺼운 종이를 바른 일종의 미닫이 문)를 사용해서 확실하게 고정된 공간(방)을 나누게 되었다. 물론 후스마를 다 열거나 떼어 내면 하나의 공간이 되기도 하지만... 그리고 이전에 공간 한쪽에만 있던 돗자리 평상과도 같을 것을 응용해서 방 전체에 타타미를 깔았다.

방들이 많이 생기면서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방에는 한 편에 토코노마(床の間)와 츠케쇼인(付書院)를 만들었으며, 중요 인물이 드나드는 현관(玄關)도 대단하게 장식하여 집주인의 권력을 과시하게 되었다. 그리고 집의 내부와 외부를 나누는 경계로는 쇼지(障子, 햇빛이 잘 들도록 하얀 창호지를 바른 얇은 미닫이 문)를 사용하였다.

이렇게 발전된 건축 방식을 쇼인즈쿠리라고 하며, 현재 일본의 전통 형식 가옥의 기본이 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그 옛날처럼 화려하게 집안을 장식하지 않는데, 이는 권력자들이 챠도(茶道)를 즐기면서 스키야(すきや)풍의 소박하고 깔끔한 내부 장식도 선호하여 그런 풍으로 집의 한 부분을 짓기도 한 전통이 그대로 이어져서 그런 것이다. 결국 현재 지어지는 일본의 전통 집, 외국인들이 보는 '일본풍' 집안 장식은 이런 역사를 가지고 발달했다.


죠라쿠텐 중에서 가장 중심 방인 죠단노마(上段の間)의 복원 예상도이다. 쇼군이 거처하는 곳으로, 방 바닥은 타타미인데, 쇼군이 앉는 곳에는 한 단을 더 높여 놓았다. 후스마와 천장에는 여러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데, 거의 금박을 다 발라 놓아서 번쩍인다.

이런 쇼인즈쿠리의 대표가 되는 혼마루고텐을 다시 복원한다니 기대가 된다.

전시관 안에서 그림들을 모사하는 장면을 비디오로 보여주고 있어서 한참을 들여다 보고 있자니 입이 절로 벌어진다. 모사하기 위해 걸리는 시간, 여러 절차들도 대단하고, 모사해 놓은 작품도 실물과 어쩜 그리 똑 같은지... 그리고 그런 금박을 붙인 화려한 그림들이 방의 천장과 후스마 전체에 그려져 있었다니... 나 같으면 눈이 부시고 정신없어서 그런 방에서는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을 것 같다.

이렇게 누릴 수 있는 권력이 대단한 것인가 보다. 원래 혼마루고텐은 반슈의 숙사와 정무를 보는 곳으로 지어졌는데,


위의 그림은 복원된 후스마의 그림이고, 아래는 실제 후스마이다. 자세히 보면 표범의  털 하나 하나 똑 같이 그렸다. 표범이나 호랑이는 武將의 용맹을 나타내는 것이어서 많이 그려졌다. 그림이 없는 부분은 금박을 발랐다.

얼마 후 한 편에 가장 화려한 죠라쿠텐(上洛殿)이라는 건물을 증축해서 당시 제일의 실력자인 쇼군(將軍)이 이 곳에 들를 때에만 사용하도록 하였다. 반슈는 니노마루(二之丸)의 건물로 이사하고...

언제고 화려하게 복원될 혼마루고텐은 역사적인 의미나 장식 등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많이 받겠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건물의 세세한 부분까지 예전의 모습 그대로 복원할 수 있는 기술이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크게 번성하지는 않아도 한 부분 한 부분을 확실하게 책임질 수 있는 쇼쿠닌(織人, 전문적인 기술이 숙련된 장인)들이 대대로 이어져 내려왔기 때문에, 재료들은 새로운 것이어도 그 기술은 그 몇 백년 전의 정신 그대로 발휘되어 빛을 발할 것이다.

 

 

*** 참고로 건축 방식에 따른 중요 건축물을 들어 보면,

신덴즈쿠리(寢殿造り)는 교토(京都)의 천황 거처인 고쇼(御所)의 시신덴(紫辰殿)

초기 쇼인즈쿠리(書院造り)는 교토의 긴카쿠지(銀閣寺) 내에 있는 토큐도(東求堂)

그 이후로 교토 니죠성(二條城)의 니노마루고텐(二之丸御殿)

그리고 1615-1623년간에 세워진 스키야풍(すきや風) 쇼인즈쿠리(書院造り)의 걸작품은 교토의 카츠라리큐(桂離宮)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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