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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흐름이 보이는 곳 시라카베(白壁) 보존 지역 (1)

 

나고야(名古屋)는 토쿄(東京)나 오사카(大阪)보다 도시가 적어서 그런지, 시내의 중심 상가를 몇 번 다니다 보니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찾기가 힘들어 아~~ 심심하다 라는 생각만 들었다. 내 머릿속의 도시 비교 항목은 우선 상가들이니 지루함이 더 할 수 밖에... 뭐 좀 새로운 것이 없나...

이러던 차에 어느 날 우연히 TV뉴스시간에 나고야시의 어느 지역을 소개하는 것을 보았다. 여자 리포터가 호들갑을 떨면서 어느 집과 동네를 돌아다니며 호기심을 나타내면, 베레모를 멋있게 쓴 할아버지가 자세한 설명을 하는데 듣고 있자니,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 언젠가 교토(京都)의 J 아줌마 집에 갔을 때의 기억이 나면서, 자세히 그 집을 보고 오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계속 남아있었는데 이 기회에 풀어 버릴 수 있을 같았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나고야 성의 동쪽(東區의 白壁, 主稅지역)에 위치한 이른 바, 죠오카마치(城下町)로 1610년 경부터 성을 짓기 시작하면서 같이 생긴 마을로, 당시에는 중급의 무사(武士)들 집과 절, 신사, 상점들이 성을 둘러싸고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메이지 시대(明治, 1868-1912)에 들어, 넓고 전통적인 무사들의 집 사이로, 도기(陶器) 관련의 산업이 발달을 하면서 돈을 번 사람들의 서양식 집들이 들어서게 되었고, 그런 집들이 아직까지 남아있어 묘한 분위기의 동네로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현대식 맨션이나 개인주택들이 거의 다 들어서 있지만 그래도 조금씩 예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고 하니 무조건 보고 싶었다.

오오메이소오(櫻明莊). 메이지 말기에 지은 어느 사업가의 집인데 그 후 회원제 고급 클럽으로 사용되다가, 최근에 허물었다고 한다. 이렇게 대문만 남아 있어서 그 앞에서 설명만 들을 수 밖에... 허무...

 

도대체 일본인들은 어떤 집에서 살아왔는지, 1910-20년대에 우리나라는 아직도 우리의 전통만 지키고 있었는데, 일본은 서양의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여 생활에 밀착시켰는지... 교과서적인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니 흥분...

그래서 다음 날, 수요일 아침 일찍 뛰어갔다. 방송에서는 그 베레모의 할아버지가 동네 설명을 해 주는 보란티아(Volunteer의 일본식 발음)로 수요일에만 예약을 받아서 한다고 했지만, 왠지 단체도 아니고 혼자 가는 것이니 쑥스러워서 그냥 가보기로 했다. 지도에서 위치를 확인하고 동네를 찾아가니 좀 헤매기는 했지만

토요타(豊田) 집안의 어느 집으로, 1918년에 이 지역의 무사 집을 본따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이렇게 대문과 일부 담만 남아있고, 안에는 고급 맨션이 세워졌다.

 

처음 도착한 곳이 구 토요타저택(舊 豊田邸宅)으로, 겉에서 보기만 해도 볼거리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요일과 토요일에만 개방을 한다고 하는데, 입장료를 받는 지 어떤 지 잘 몰라 기웃기웃하며 대문 안을 들여다 보니, 마당에서 나뭇잎을 줍고 있던 어떤 할머니가 빙긋 웃으며 들어오라고 한다. 보아하니 서너명의 할머니들이 청소를 하고 있는데, 아마 주 2회의 청소만을 위해 고용된 것 같았다. 그리 힘든 일도 아니니 자기 집 다듬는 정도로 천천히 하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이곳을 유지 관리하는 시(市)에서 제공한 것 같아 괜찮아 보였다.

현관에서부터 여기저기 꼼꼼히 살피면서 사진을 찍고 있으려니 아까 그 할머니가 슬그머니 말을 걸어온다.

1910년대에 지어진 집으로, 그 후 요정(料亭)으로 사용되다가 장사가 안 되어서 문을 닫은 어느 집의 검은 담. 담 밑에는 코마요케(驅除)라고 해서, 그 옛날 말이나 소를 몰고 지나가면 나무로 만든 이런 담에 부딪히지 말라고 철책을 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교토나 다른 곳에 가면 대나무로 만든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검은 색이나 가끔 흰 색을 섞어 만든 담을 일본인들은 차분한 편한 분위기로 느낀다.

 

그러면서 고맙게도 집 전체를 다니며 설명을 해 주는데... 이게 웬 떡.... 이 집 구경을 다 하고 가려고 하니, 구 하루타저택(春田邸宅)이라는 옆 집 구경을 하지 않겠냐고 한다. 어떤 곳일까 또 무작정 따라가 보니 여러모로 흥미로운 집....

다 보고 이제는 진짜 가려고 하니, 어제 TV에서 본 베레모의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오후부터 다른 구(區)의 문화유산답사 모임에서 견학을 오기 때문에 자기가 안내를 하게 되었다면서, 자신은 이 지역의 생애 학습 센타(生涯 學習 center)에서 1년 동안 한 달에 한 번 이 지역에 대해 공부를 하고, 같이 공부한 사람끼리 보란티아를 한다는 것이다. 그냥도 아니고 시에서 보존지구(町竝み保存地區,  나고야에는 전부 네 군데의 지구가 있다)로 지정한 곳이니 자부심도 크고 지키고 싶은 마음도 큰 것 같았다. 이래서 얼떨결에 설명을 들으면서 아까 본 두 집을 포함해서 동네 구경을 하게 되었다.

하루타문화주택(春田文化住宅). 1928년에 세워진 당시의 고급 맨션으로, 사진에 보이는 큰 나무가 있는 곳에 두 집의 현관이 붙어있고, 전기와 수도가 들어온 편리한 집이었다고 한다. 소위 엘리트라는 사람들이 입주를 했는데 당시의 월세가 25엔. 학교 선생님의 월급이 4엔이었다고 하니 엄청 비싼 집이었다.

 

원래는 1905년경에 일반 민가를 이용해서 만든 성당인데 도로확장으로 철거되었다가 1990년 복원되었다고 한다. 안에 들어가 보면 양 옆의 아치형 커다란 창문으로 햇빛이 밝게 들어오고, 바닥은 타타미가 깔려있고 그 위에 긴 의자를 놓았다. 권위 의식을 전혀 느낄 수 없는 편안한 성당이다.

 

이모토 저택. 1927년 도기 관련 사업으로 돈을 벌어, 사업차 찾아오는 외국인의 숙박을 위해 지었다고 한다. 이 서양식 집 옆으로는 아래의 일본식 집과 넚은 정원이 있다. 

 

이 집에는 타타미가 깔린 방이 주욱 있고, 그 앞에는 툇마루가 있으며, 유리창이 달려있다. 그리고 정원 한 편에는 조용히 즐길 수 있는 차실(茶室, 스키야數寄屋라고도 함)이 있다. 운좋게도, 원래 문을 다 닫아놓고 있어서 안을 볼 수가 없는데, 이 날은 방안에 습기를 없애려고 문을 다 열어 바람이 통하게 하고 있었다.

차실은 16세기경, 당시 권력자인 무사들의 금색으로 도배를 한 듯한 호화로운 집과는 반대의 모습을 추구하며

자연스러운 소박한 편안함을 차인(茶人)들에게 안겨주었다. 권력과 격식을 벗어난,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사람들은 감동을 받았고, 이런 모양을 본 따 권력자들이 집을 짓기도 해서 모순이지만, 어느새 작지만(기본 크기가 타타미 4장 반을 깔은 넓이) 우아한 품격을 상징하는 아름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무사들도 이런 차실을 드나들게 되면서 자신의 안전을 위해 고안한 것이 재미있는 입구이다. 사진의 왼쪽에 보이는 것처럼 벽 밑에 판자 미닫이 문을 만들어 손님을 들어오게 했는데, 여기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엉금엉금 기어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우선 몸을 구부린채, 주먹을 쥔 두 손을 방안으로 뻗어 바닥을 짚으며, 머리를 숙이고 무릎을 꿇어서 앉은 채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무지하게 힘든 자세로 들어오기 때문에, 만약 옷깃의 여밈 사이에 칼을 품고 있어도 들어오는 도중에 방바닥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해서 차를 즐길 이유가 있었는지... 뭐 어쨌거나 들어온 손님에게는 주인이 벽쪽으로 앉아서 방 바닥에 마련되어 있는 화로에서 물을 끓여 차를 대접한다. 그리고 다 마시고 나갈 때는 커다란 보통 문으로...

그런데 이 차실은 특이하게도 타타미 이외에 한 가운데가 마루처럼 되어 있다. 베레모의 할아버지는 이런 구조가 조선반도(일본인들은 늘 한반도를 조선반도라고 한다. 뉴스에서 그렇게 말하니 공식 용어가 된 듯 하다. 우리는 왠지 듣기에 거슬리는데... 외교적인 조정이 필요하지 않을까)에서 건너온 것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나는 처음 보았다.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너무 없었고 이제와서 남의 나라 문화를 대하며 우리 것을 돌아보게 되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위의 사진은 돌아오는 길에 본 이 동네의 맨홀뚜껑이다. 네 개가 연달아 있는데, 아마 그 옛날 무사 집안의 행렬인 것 같다. 맨 앞에 병사들이 있고, 장군이 말에 타고 있으며, 뒤로는 부인의 가마가 있고, 더 뒤로는 짐을 든 하인들이 따라가는 그림이다. 동네의 역사를 나타내는 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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